내가 어찌 너를...(호세아11:8,9)

조회 수 1980 추천 수 0 2010.06.07 15:04:25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어 주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넘겨주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만들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매 내 마음의 돌이킴이 한꺼번에 불같이 타오르는도다. 내가 내 맹렬한 분노를 집행하지 아니하며 돌아와서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 나는 네 한가운데 있는 거룩한 자이니 내가 그 도시로 들어가지 아니하리라.』(호세아11:8,9)

 

지금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셨고, 그들이 용서받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심판하시려고 계획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결코 순간적인 것이 아니며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된 삶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죄를 보시지도 못하시는 주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한꺼번에 짊어지신 예수님조차도 보시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기도 하셨던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이유로 죄에 대하여 전혀 감각이 없는 삶을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죄를 미워하시는 분입니다. 그 까닭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을 보내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 즉 뜻을 알고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노라하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면 그는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그를 사랑하였으나...

 

『내가 또 에브라임의 팔을 잡고 그들에게 길 가는 것을 가르쳤으나 그들은 내가 자기들을 고치는 줄을 알지 못하였느니라.』(3)

 

하나님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증거로 죄악의 상징인 이집트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신 일을 말씀하고 계십니다(1). 또한 그들이 어린 아이와 같은 역사를 거듭하는 동안 팔을 붙잡아 일으키고 걸을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3), 사랑의 띠로 이끄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바알과 새긴 우상들에게 분향하고, 그들이 하나님에 의해 일어서게 된 것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지속적으로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해갈수록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동일한 사랑으로 함께 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악이 커갈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은 더해만 가고 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의 상태에 있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사랑에 대한 반응...

 

『내 백성이 몸을 기울이고 나를 떠나서 뒤로 물러가나니 내 종들이 그들을 불러서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로 향하게 하였을지라도 그분을 높이려 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7)

 

하나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뒤로 물러나며 하나님을 높이려 하는 자가 하나도 없는 모습으로 서 있었던 것입니다(7).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로부터 탈출하였고 하나님의 손에 의해 안전한 삶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죄를 짓기 위한 계획만을 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6).

 

우리의 삶 가운데도 이러한 일들을 얼마나 많이 발견할 수 있는지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만 오히려 죄악 된 일을 계획하고 자신의 의지와 생각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려 드는 일들이 우리 가운데 너무도 많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우리는 현재 하나님의 은혜로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아직도 죄를 생각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을 도저히 용서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급기야는 아시리아의 손에 그들을 맡기시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5). 하나님의 결정은 결코 독단적이거나 권위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죄에 대한 심판을 약속하신 주님께서는 그의 공의로우심을 위해서 이러한 결정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미워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죄를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그 까닭에 주님은 계속해서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을 때 하나님이 나를 싫어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편입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 할지라도 여전히 사람들의 편에 서서 일하고 계십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그들 가운데 있는 죄 때문입니다. 죄가 그들과 함께 있는 한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죄 가운데 있는 우리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죄는 미워하시며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불같이 타오르는 사랑...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어 주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넘겨 주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만들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매 내 마음의 돌이킴이 한꺼번에 불같이 타오르는도다.』(8)

 

하나님은 에브라임과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아드마와 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멸망당한 성을 가리키는데(신29:23), 하나님은 그들과 같이 멸망하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이 한꺼번에 불같이 타오른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고 계시지만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도 불같이...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을 말하라고 한다면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느 곳, 어느 때이든지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죄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사망의 늪으로부터 나오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하십니다.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죄에서 건지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때로는 천사들을 보내셨으며, 지금은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죄로부터 탈출하도록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다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지에 대하여 의심해 봐야 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녀라면 은혜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으며, 주님이 우리를 위해 어떠한 대가를 치르셨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불 같이 사랑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자들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그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새같이 떨며 아시리아 땅에서 나와 비둘기같이 떨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두리라. 주가 말하노라.』(11)

 

사랑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그들을 흩으시고는 마치 어미 사자가 새끼를 부르는 것 같이 소리를 내시고, 흩어진 자들은 또 다시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10). 그리고 돌아오는 그들이 비록 떨리는 마음으로 다가오지만 주님은 그들의 집에서 안식을 누리도록 하십니다. 결국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다시 주님께 돌아오는 자에게는 안식을 줄 것을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언제든지 기회는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죄 가운데 살았다 할지라도, 또한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다 할지라도, 돌아오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비록 죄로 인하여 징계를 받았지만 여전히 주님은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언제나 당당한 자였지만 막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자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는 비열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범죄 한 후에 즉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울며 회개하였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더 이상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그가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삼년 반을 예수님의 뒤를 따라다닌 제자였지만 예수님을 판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알고 돈을 갖다 주었지만 받지 않자 그는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자살을 한 이유는 바로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그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가룟 유다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기회는 있습니다. 이 기회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좌절해서 가룟 유다와 같이 자살을 했다면 어떠한 결과가 나올까요? 아마도 복음 전파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며...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의 집은 속임수로 나를 에워쌌으나 유다는 여전히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며 성도들과 함께 신실하도다.』(12)

 

에브라임과 이스라엘은 거짓과 속임수로 에워쌌습니다. 에워쌌다는 말은 하나님 중심으로 모였다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 중심으로 모이기는 했지만 거짓과 속임수로 모여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척 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유다는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며 성도들과 함께 신실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동일한 하나님을 두고 에브라임과 이스라엘은 거짓과 속임수로, 유다는 진실함으로 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두 가지 속성의 교회가 존재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한다고 말하지만 거짓과 속임수로 성도를 미혹하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비록 연약해 보여도 진실함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악 간에 분별하실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교회를 온전히 보전하기 위해서 거짓과 속임수를 버리고 오직 진실함으로 행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모든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이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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