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돌이키라(에스겔 33 : 11)

조회 수 1677 추천 수 0 2010.06.07 15:22:41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라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사악한 자의 죽는 것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그 사악한 자가 돌이켜 자기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오 이스라엘 집아 너희는 돌이키라 너희는 돌이켜 너희의 악한 길들에서 떠나라 어찌하여 너희가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에스겔 33 : 11)

회개의 의미는 "마음의 방향을 바꾼다"는 의미이지만 죄로부터 돌이킴과 더불어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의미로서 "뉘우치다, 개심하다, 돌아오다" 등의 의미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을 부르시고(창12:1-3) 한 민족을 이루게 하셔서 그들 백성에게 복 주시고,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끊임없이 우상 숭배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회개와 배도를 거듭하는 악순환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그들을 부르고 계셨고(렘3:22) 선지자들은 백성들에게 경고함으로 (시7:12) 돌아오기를 고대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이 들려지고, 구원 얻는 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다시 율법과 유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종들을 보내어서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복음으로 돌아오는 길만이 우리의 영혼이 사는 길임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죄인임을 인정하라

율법주의나 형식에 매여있는 자들은 생명 없는 죽은 종교에 매여 지내는 것이 자신을 살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열심을 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합니다.(롬10:2,3) 그러나 그들에게 구원이 없다는 사실은 명백한 것입니다. 구원이 있기 위해서는 껍질을 벗어 던지고, 자신들의 죄를 자복 하고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마3:6, 막1:5) 만일 죄의식으로만 느껴지는 회개라면 그 회개는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침례는 죽음을 의미하는데 우리가 죄를 자복함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의 사역

침례 요한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한 선지자로서 행한 사역은 침례를 베푸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사역은 여기에서 멈추었습니다. 결국 그는 죄를 인정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임을 자각하게 하는 사역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사역은 그림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입니다.(히9:27) 그리고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요한은 모든 이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도 구원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율법과 대언자들은 요한의 때까지요 그 이후로는 하나님의 왕국이 선포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밀고 들어가느니라"(눅16:16)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이 왔으니 너희는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1:14,15)

세례(침례)요한이 증거 했던 것은 분명히 모든 인생은 죽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증거하고 있는 내용은 죽음 뒤에 있는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곧 살리심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요구하는 것은 "회개"입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회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것과는 구별된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자기의 의를 세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라고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참선하고, 유교에서는 조상을 잘 모시고, 카톨릭은 미사를 잘 드리며, 무당은 넉넉한 재물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그들이 죽음으로부터 살아났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세상에서 좀 더 평화롭게 죽는 방법만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의 회개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거기에는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은 우리를 다시 살리시고, 영원히 죽지 않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위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이 구원의 자리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이 초청에 자신을 죽이고 영화로운 자리에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예수님께서 능력 있는 일들을 가장 많이 행하신 도시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꾸짖기 시작하시니라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세다야...."(마11:20,21)

"너희는 ....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었다고 생각하느냐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그와 같이 망하리라"(눅13:2-5)

사람들의 관심은 언제나 표적에 있습니다. 고라신과 벳세다에서 예수님께서 많은 능력을 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바 회개는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요나의 전도를 듣고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하였는데 요나보다 더 큰 이 되신 예수님(마12:40)의 전도를 듣고도 회개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화가 있을 것을 말씀하시면서 책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표적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탄은 성령운동이라는 일환으로 표적운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들이 예수님을 또 다시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탄은 오늘도 각종 표적을 나타냄으로 우리를 속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 앞에 굴복하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엎드려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돌아오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나아 오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이에 일어나서 자기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그가 아직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달려가서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니"(눅15:20)

탕자가 아버지의 품을 떠나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올 때에 아버지의 집에서 종노릇이라도 해야겠다고 결심한 그의 생각과는 달리 아버지는 이미 그를 용서하였고 아들에게로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잔치를 베푸는, 그리고 반지를 끼워주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도 전에 이미 용서를 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 아들이 아버지의 집에 거할 수 있는 방법은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많은 물질과 친구들, 그리고 그의 육신을 즐겁게 하는 쾌락의 삶은 그를 아버지로부터 멀어지게 했던 것입니다. 결국 탕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오기 전부터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이미 우리를 위하여 잔치를 베푸시고 반지, 즉 성령으로 인쳐주신 것입니다. "너는 나의 자녀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전 인류가 의인이며(롬3:24-25, 5:1-2, 히10:10)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죄와 상관없이 (히9:28) 있는 그대로 오시기를 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십시오.

있는 그대로 돌아오라

"나 곧 나는 내 자신을 위하여 네 범죄들을 지워버리는 자니 네 죄들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43:25)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 주시고 구원이 있으리라고 말했던 사람들은 가식이나 꾸밈을 가지고 온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왔고,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던 것입니다. 탕자, 삭개오, 간음하던 여인(요8:1-11), 옥합을 가져 온 여인(눅7:37)등과 심지어 소경 바디매오는 거지에 소경으로 천한 모습 그대로 다가왔고, 가나안 여인은 자신을 개 취급 할 것을 알면서도 신분을 드러내고 나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가셨고, 이 사실을 모르는 영혼들에게 '이제 죄를 다 사해 놓았으니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도다 또한 그분을 통하여 우리가 믿음으로 이 은혜 안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이 은혜 안에 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기뻐하느니라"(롬5:1,2)

이제 우리의 과제가 있다면 은혜가운데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돌이키지 아니하고 은혜의 삶을 거부한다면 이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들은 새로운 삶으로 인도 받을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의 삶입니다.(행2:38) 성령은 우리에게 지속적인 회개, 즉 자백하기를 요구할 것입니다. 우리의 잘 못됨을 인정하도록 요구함으로 우리를 거룩한 삶, 경건의 삶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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