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사1:1)

조회 수 850 추천 수 0 2014.03.15 15:15:00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사1:1)


각 시대마다 선지자는 많았지만 부르심을 입은 선지자는 많지 않습니다. 그 까닭에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활동했으며, 그 일들로 인하여 백성들을 혼란에 빠지고 결국에는 하나님을 떠나거나 오히려 대적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구약성경 안에서 보여주는 선지자들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초대교회 이후로 오늘날까지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거짓 전도자나 거짓 교사들을 통해서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 시대에도 주님의 부르심(소명)을 입고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이들이 있지만, 오히려 거짓 진리로 속이는 자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주님의 부르심을 입은 매우 모범적인 선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를 통해 주님의 일을 맡은 자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대적 사명자 이사야


이사야가 활동했던 시기는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에 이르기까지 약 60년(B.C 740-680년경)에 걸친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부르심을 받고 활동했던 기간은 웃시야 왕이 죽은 이후로 추정되기 때문에 약 50년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기는 유다의 역사에 있어서 전쟁과 평화가 함께했던 시기였습니다. 웃시야와 요담의 시대는 평화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평화의 시대는 백성의 풍요로움을 더하게 되고, 이것은 결국 또 다른 타락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 시기동안 백성들은 우상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으며, 도덕적으로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하나님의 개입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주변국들을 일으켜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전쟁을 준비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하스 때에는 수리아-에브라임 연합군과 싸움을 준비해야했고(왕하 16:5),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을 막아내야만 했습니다(왕하 18:13). 이러한 시기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그들에게 경고와 소망을 담은 말씀을 유다 백성에게 전하기 위해 이사야를 사용하셨습니다.


평화의 시기에 백성들의 타락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이사야는 선지자로서 그들의 타락으로 인하여 오게 될 재앙들을 경고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귀를 막고 선지자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롱을 당하고, 마치 어리석은 자로 취급을 받습니다. 시대적 사명자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가 특별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매우 적극적으로 응답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주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말씀하셨을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하였습니다(사6:8). 그는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주저함이 없었으며, 오히려 자신이 주님의 일에 쓰여지기를 고대한 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가 주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고, 부르심이 있었을 때 즉시 응답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이사야는 격변의 시대를 살고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이사야의 가정


이사야에게는 언제나 “아모스의 아들”이라고 소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이사야의 아버지였던 아모스가 어떠한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성경 안에서 찾아 볼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가 선지자였던 이사야의 아버지로 기록된 것으로 볼 때, 그도 역시 선지자였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가 왕족으로서 웃시야 왕의 아버지였던 아마샤와 형제였고, 그러므로 웃시야와는 사촌관계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추정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이사야는 각종 자료들을 얻는 과정에서 왕에게 다가가거나(사7:3), 제사장과 같은 이들에게 쉽게 접촉하는 것(사8:2)으로 봐서 훌륭한 가문이거나 아니면 이사야 자신이 고위직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에서는 그의 아내와 자녀들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는데(사8:3), 어떤 이들은 그의 아내가 여선지자였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것도 역시 성경 안에서 근거가 없으며, 다만 그녀와의 사이에서 두 명의 자녀들 두었는데, 큰 아들은 “남은 자들이 돌아올 것이다”라는 뜻을 가진 스알야숩(사7:3)이며, 작은 아들은 “파멸이 임박했다“는 뜻을 가진 마헬살랄하스바스(사8:3)입니다.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유다의 미래와 관련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흐름에서 생각해 보면 평화의 시대를 보내고 있는 남왕국 유다에 곧 파멸이 임박하게 될 것이며, 멸망 이후에 고난의 시간을 보낸 후 남은 자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 올 것에 대하여 그의 아들들을 통해서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가정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았을 때 믿음의 가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왕 앞에서나 제사장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정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내와 더불어 자녀들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온 가족은 하나님의 일들을 위해서 수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 가운데 누군가 주님의 부르심이 있게 된다면 온 가족이 그 일을 위해 수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가족가운데 누군가 수고하는 일을 거부하게 된다면 서로가 불편할 뿐 아니라 원수가 되기도 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거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하게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부르심은 이사야가 받았지만, 그 일을 행함에 있어서 온 가족이 함께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소명을 얻은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만 합니다.


민족을 향한 메시지를 전하는 이사야


이사야의 예언은 주로 남 왕국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예언의 과정에서 주변국들에 대한 예언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앗수르와 바벨론, 그리고 사마리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습니다(13-27장, 34장). 그 까닭에 어떤 이들은 처음 소개되고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는 말씀이 1-12장까지만 적용되어야 하며, 나머지는 포괄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상황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변국들의 상황을 바르게 알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사야서에 대한 처음의 소개는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유다 민족이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하여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민족을 위해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선지자로서 가장 바랐던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순교를 각오해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사야는 그의 가정을 비추어 볼 때 매우 안정적인 삶을 살 수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오히려 주님의 부르심을 기다렸고, 주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여 유다 백성에게 앞으로 닥칠 일들을 대언하여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만일 자신의 안위를 위해 그가 선지자로서의 길을 택했다면 하나님은 결코 그를 사용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들을 위해 수고하겠다는 이사야의 마음이 유다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통로가 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결론


주님께 쓰임을 받았던 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신을 온전히 드렸던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때때로 특별한 사람들을 사용하시기도 하셨는데, 그들도 하나님의 특별한 훈련의 시간들을 통해서 사용하셨습니다. 가령 모세와 같은 이들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훈련하신 후에 그를 불러 사용하셨습니다. 다윗의 경우에도 사울의 품을 떠나 광야에서 훈련을 거친 후에 왕으로 세우셔서 그분의 일을 대신 하도록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경우에도 예수님을 부인한 후 닭 울음소리와 함께 통곡하며 회개한 이후에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의 부르심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거룩한 삶을 사며, 주님의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주님의 일에 쓰임을 받기 원한다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경건한 삶을 위해 힘쓰며, 주님의 부르심을 기다릴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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