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가장 엄숙하고도 두려운 선언 앞에 서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위로보다 경고가 앞서고, 약속보다 책임이 먼저 드러나는 본문입니다. 그러나 이 경고의 말씀은 차가운 심판의 언어가 아니라, 오래 참으시며 기다리셨던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에서 흘러나온 말씀임을 우리는 놓쳐서는 안 됩니다. 지혜를 거절한 자의 비극은 하나님의 침묵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거절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하나님은 먼저 부르셨습니다. 지혜는 숨지 않았고, 말씀은 감추어지지 않았습니다. 앞선 본문에서 지혜는 거리에서, 광장에서, 성문 어귀에서 외쳤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듣기 싫어했다는 데 있습니다. 듣기 싫어했다는 말은 몰랐다는 뜻이 아닙니다. 알면서도 외면했고, 깨달으면서도 거절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손을 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도움과 초청의 몸짓입니다. 하나님은 팔짱을 끼고 심판하신 분이 아니라, 먼저 손을 내미신 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손을 외면했습니다. 이것이 지혜를 거절하는 태도의 본질입니다. 반항이 아니라 무관심이며, 공격이 아니라 무시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기보다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고 여기는 마음, 이것이 지혜를 거절하는 가장 깊은 죄입니다.
본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너희가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여기서 ‘멸시’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단순히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찮게 여겼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경고를 과장이라 생각하며, 회개의 기회를 미루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반복해서 말씀하셨고, 여러 통로로 경고하셨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무서운 전환이 일어납니다.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즐거워하며 조롱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문학적 표현으로, 하나님의 경고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었기에, 그 결과 앞에서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되었음을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지혜를 거절한 자의 비극은 하나님이 잔인해지셔서가 아니라, 선택의 결과가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재앙을 보내기 전에 충분히 경고하셨고, 돌이킬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끝내 듣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억지로 인간의 선택을 뒤집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심판의 본질입니다. 심판은 갑작스러운 분노가 아니라, 오래된 거절의 열매입니다.
본문은 그 재앙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너희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 재앙이 폭풍같이 임하리니.” 여기에는 속도와 통제 불가능성이 강조됩니다. 지혜를 거절한 삶은 처음에는 안정되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인생은 기초가 없는 집과 같아서,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광풍과 폭풍은 예고 없이 몰아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형성된 조건 위에 갑자기 드러나는 결과입니다.
그리고 가장 비극적인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이 말씀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기도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회개할 수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이는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을 수단으로 찾는 태도의 허무함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평소에는 말씀을 거절하다가, 재앙의 순간에만 하나님을 찾는 신앙은 관계가 아니라 거래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이는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였습니다. 지혜를 미워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신앙이 부담이 되었고, 말씀은 간섭처럼 느껴졌습니다. 결국 그 선택은 고독과 두려움으로 되돌아옵니다.
본문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고, 그 자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순종시키지 않으시지만, 선택의 결과를 제거해 주시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자유의 엄숙함입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의 열매를 먹는 것, 이것이 지혜를 거절한 자의 비극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 32절에서 성경은 이유를 다시 한번 밝힙니다.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느니라.” 비극의 원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길을 제시하셨고, 인간은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아직 돌이킬 수 있을 때 들으라는 하나님의 마지막 호소입니다.
이 설교를 듣는 우리는 아직 은혜의 시간 안에 있습니다. 지혜가 오늘도 외치고 있고,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경고의 말씀을 남의 이야기로 듣지 말고, 내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외침으로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듣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지금 돌이키는 자는 살게 됩니다.
이 시간 이후로 우리의 고백이 이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더 늦기 전에 듣게 하옵소서. 재앙 속에서 부르짖기 전에, 평안할 때 주의 음성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그 고백 위에 하나님께서 지혜의 길을 다시 열어 주시고, 두려움 대신 평안을, 멸망 대신 생명을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