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빌닷의 가르침

조회 수 1367 추천 수 0 2012.03.12 12:06:54

빌닷은 조상들의 가르침, 즉 전통에 매우 충실한 자였습니다. 특히 그의 가르침 중에 사람들에게 가장 잘 인용되어지는 것이 있는데 이는 “비록 네 시작은 작을지라도 네 마지막 끝은 심히 크게 되리라”(8:7)는 말입니다. 이 가르침은 성경 안에서 매우 유용하게 인용되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욥에게 있어서 이 가르침은 결코 지혜로운 것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1) 잘 못된 비유

 

빌닷의 가르침은 욥의 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시작은 작을지라도 끝은 심히 크게 되리라”는 말은 듣는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큰 오해를 가져 올 수 있는 말입니다. 빌닷이 말하려 하는 것이 과거에 욥이 누렸던 복이 작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현재 고난이 아직 미약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욥에게 있어서는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빌닷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진리라는 것은 말의 옳고 그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에게 얼마나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사실상 빌닷의 가르침은 성경 안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의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장차 받을 복에 대한 말씀을 생각나게 하며,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던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많은 일들을 맡기시겠다는 약속(마25:21,23)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소망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의 삶을 살게 된다면 주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입혀 주신다는 소망을 갖게 하는데도 매우 유익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 중에 있는 자에게, 특히 아무런 소망이 없는 자에게 미래를 말하는 것은 오히려 더욱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말입니다. 지금 욥에게 필요한 친구는 자신의 아픔을 같이 고통스러워하고, 울어줄 수 있는 친구입니다. 그러나 빌닷은 오히려 친구를 책망하듯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좋은 친구, 혹은 좋은 선생이 될 수는 없습니다.

 

2) 기복신앙

 

빌닷과 기복신앙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매우 심각한 기복신앙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일단 그는 욥의 신앙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욥의 고난은 결국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기 때문에 온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욥의 다른 친구들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빌닷은 매우 적극적입니다. 그는 창대해지는 것, 즉 심히 크게 성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복주의는 종교인들에게 흔히 볼 수 잇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성장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생명의 씨가 심겨졌다면 당연히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물질과 명예, 권세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내면에서 자라는 믿음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음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육신적으로 얼마나 많은 복을 누리고 사는가에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평가하려 합니다. 욥의 친구들에게는 욥의 처한 상황이 매우 불행해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다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눈이 오직 욥에게 향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삼상16:7). 기복신앙은 믿음이 성장하는데 있어서 최대의 적이라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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