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기도-느헤미야의 첫 번째 반응

조회 수 2438 추천 수 0 2010.06.30 10:25:35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하는 자들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원칙은 느헤미야의 세대나 오늘날이나 변함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의 소식을 듣고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그의 반응은 바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일상적으로 기도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기도하는 생활에 익숙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의 기도는 백성을 향한 부르심의 소명을 얻기 위한 첫 번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부르심을 얻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주 앞에 나갑니다. 어떤 이들은 부르심을 위해 신학교를 향하고, 어떤 이들은 훌륭한 목사님이나 교회를 찾아 나섭니다. 또 어떤 이들은 훌륭한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으며, 어떤 이들은 직접 사역의 현장 속으로 뛰어들어갑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역의 장래는 결코 밝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에는 주님을 위한 열심히 있을지는 몰라도 주님으로부터 오는 소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명이 없는 사역은 결코 오래가지 않습니다. 이 소명은 기도를 통해 주어질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기도하는 모습들을 보십시오.

 

1. 그는 말들을 듣고 앉아서 울었습니다.

 

그는 마음 중심에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울음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그는 아직 소명을 받은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향해 있었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곧 자신의 아픔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느헤미야의 마음에 점차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무엇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앉아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환경이 절망적이듯이 지금 느헤미야 자신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무엇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처지를 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으로부터의 부르심이 있기 전 우리의 내면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변화는 바로 혼들을 향한 뜨거운 마음과 자신의 처지를 바로 깨닫는 것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혼들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놓여져 있는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결코 그들은 가만 두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장차 당하게 될 상황들을 생각한다면 그곳으로 향하는 것을 결코 방치해 두려 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와 가까운 이웃이거나 또한 우리가 사랑하고 있는 자들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더욱 절박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향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소명을 받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더욱 중요합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처지를 절망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곧 주님의 절대적인 도우심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명을 받기 위해 가장 먼저 발견해야 하는 사실은 바로 자신의 처지가 결코 사람들을 죽음으로부터 건져낼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주저앉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주님의 도우심이 아니고는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

 

2. 그는 여러 날 동안 애곡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의 문제를 두고 단순히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서 슬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두었습니다. 비록 당장에 어떠한 것도 행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지만 그는 여러 날 동안 이 문제를 두고 슬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본 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는 진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행복해지는 것을 보게 될 때까지 이 슬픔은 계속될 것입니다.

 

소명은 결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일회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에 부담을 가지고 언제나 그들에 대하여 주목하고 그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로마로 향하고자 했었던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언제나 로마에 마음을 두고 있었습니다(롬1:11). 하지만 그는 그 일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의 인도를 구했고, 결국 그의 마지막 사역을 로마에서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서신서를 비롯한 많은 일꾼들을 양육하고 다른 지역으로 파송하는 일까지도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도 역시 오랜 시간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인내를 가지고 주님의 부르심을 기다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온전한 사역을 기대한다면 반드시 기다릴 수 있어야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인내가 더욱 분명한 소명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인내는 결코 기다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어져 가는 혼들을 생각하며 그들로 인해 슬퍼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속적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주님은 분명하게 부르실 것입니다.

 

3.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했습니다.

 

금식은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행동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세상으로부터의 양식을 뒤로하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으로 살겠다는 의지에 대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간절함은 바로 금식함으로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장면에서 가장 돋보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절박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이라고 기꺼이 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된 자입니다. 그의 금식의 행위는 단순히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온전히 주께 드리고자 하는 의지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명을 받는 자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헌신의 각오가 없는 부르심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이후로 그는 많은 싸움을 겪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헌신의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자라면 그는 어려움 앞에 굴복하고 결국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지 못한 채 물러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느헤미야는 부르심을 입고 성전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어려움들을 이겨내야만 했습니다. 만일 그가 주님의 일들을 위한 헌신이 없었다면 그는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는 금식을 통하여 자신의 이러한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들을 겪었습니다(고후11:23-27).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한 헌신의 자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면 죽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결박당하는 것뿐 아니라 죽는 것까지도 각오하고 있노라”(행21:13) 헌신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목숨을 내놓는 것입니다. 부르심을 입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자세가 있어야만 합니다. 느헤미야의 금식은 바로 헌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 주께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제 느헤미야에게는 부르심을 입기 위한 모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주님께서 자신에게 소명을 주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일을 위해 그는 마냥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것은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고, 성전을 재건하는 일들을 함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도록 간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일들이 자신들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주님의 일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일을 주님께 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일들이 주님께 순종함을 통해서 온전히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주님께서 자신들을 인도해 주시기를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주님께 헌신하는 일들이 자신들의 노력으로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결코 기도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방법을 따라서 행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라면 그러한 어리석은 방법을 따라서 순종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구하고 또한 주님께서 그의 길들을 인도해 주시기를 구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온전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간청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가 현재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뜻 안에서 행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부르심이 있기 위해서 주님께 간청하는 모습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의 인도를 구하십시오. 그렇다면 반드시 주님께서 우리의 사역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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