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를 부수라 (삿 7:15-23)

조회 수 2634 추천 수 0 2010.06.07 13:42:04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의 지도력 아래 가나안으로 들어간 이후 사울이 왕이 되기 전까지의 시대를 기록한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 기록된 사사 시대는 여호수아부터 사무엘에 이르기까지로 볼 수 있겠지만 여호수아나 사무엘은 역사의 전환점에서 특별하게 구분해 두고 그 중간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것이 사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특히 사사기는 하나님의 직접 통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사기의 전반적인 내용은 불순종(우상 숭배)=전쟁, 순종=평화라는 기본적인 공식 아래 지속적으로 순종과 불순종을 거듭하면서 전쟁과 평화의 악순환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사건은 하나님의 통치 방법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하나님이 오늘날 그의 자녀들을 세상으로부터 어떻게 다스리는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농사꾼 기드온

 

"주의 천사가 아비에셀 자손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밑에 앉으니라 마침 그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족속에게 숨기기 위하여 포도즙 틀에서 밀을 타작하더니 주의 천사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강한 용사여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삿 6:11,12)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는 사람이 특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모든 분야에 전문성을 요구하는 시대에는 더욱 전문적인 사역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사역을 위한 기본적 자질을 가진 자라야 소명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성경은 이러한 생각에 대해 여지없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 요한, 야고보가 평범한 어부였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사사 시대에도 예외는 없습니다. 기드온은 평범한 농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르심을 받았고 평범한 그에게 '큰 용사'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차별이 없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 강한 자나 약한 자, 인종, 직업, 학력에 관계없이 부르십니다. 심지어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향하던 사울(바울)을 부르신 것처럼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선한 자나 악한 자의 구분도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필요를 따라 소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드온이 밀을 타작할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났고, 모세가 양을 칠 때 부르심을 받았으며, 베드로가 고기를 잡고 있을 때 예수님이 부르셨고, 요한은 그물을 깁고 있을 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바울조차도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볼 때 악했지만 그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듯이 부르심은 평범한 일상의 삶 속에서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사역자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신학(대학)교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훌륭한 신학을 공부했더라도 소명을 받지 못한 자는 올바른 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만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라

 

"기드온이 그분께 이르되 오 내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내 가족은 므낫세 중에서 가난하며 또한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매"(사사기 6:15)

 

현대인들은 사역자가 되기 위한 무수히 많은 자질들에 관하여 말하지만 단 한가지의 덕목이 있다면 '겸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즉시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마 4:18-22). 모세 역시 과거에 왕자의 신분은 뒤로한 채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자신의 능력 없음을 하나님께 호소하였고, 다윗도 사무엘이 사울 대신 왕을 세우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을 치고 있었던 겸손한 자였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으로부터 그의 백성들을 건져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자신이 전혀 이 일을 감당할 자격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을 말함으로 그의 겸손함을 드러내 줍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매우 잘못된 가르침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노만 빈센트 빌' 목사로부터 파생된 '적극적 사고방식'입니다. 목사는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세상에 대하여 소극적이고 자신감 없이, 심지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존심마저 잃어버려 가는 자들을 위해 글을 쓰고, 상담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신앙의 성숙과 관계없이 철학과 신념으로 자리 잡고서 모든 이들에게 '나는 할 수 있다'라는 구호를 외치게 함으로서 예수님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신앙의 본질과 출발점은 '나는 할 수 없습니다.'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해 가면서 '내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 4:13)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겸손은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가장 기초적인 덕목입니다. 만일 우리 안에 있는 자아(육신)가 살아 있다면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참된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입니다(롬 6:4).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이라는 호칭은 겸손함을 가진 자에게 라야 만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염두 해 두고, 진정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온유와 겸손으로 무장해 가시기 바랍니다.

 

깨어 있으라

 

"이에 그가 백성을 인도하여 물로 내려가매 주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는 개가 핥는 것같이 자기 혀로 물을 핥는 자를 따로 세우고 또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손에 입을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나머지 모든 백성은 무릎을 꿇고 믈을 마시니라 주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핥아 마신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족속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다른 백성은 다 각각 자기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더라" (삿 7:5-7)

 

하나님은 미디안과 아말렉 연합군 135,000명을 대적하기 위해서 군사를 모으도록 하십니다. 기드온이 사람을 불러 모으자 32,000명의 사람이 왔고, 그 가운데 두려워 떠는 자 22,000명을 되돌려 보내고 10,000명만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많다 하여 물가에서 물을 마시게 하여 300명만을 가지고 전쟁을 치루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셨는데 그들을 선발했던 기준은 물을 마시는 방법이었습니다. 그 차이는 무릎을 꿇고 핥게 되면 주변의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지만, 손으로 떠서 먹게 되면 주변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언제나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자는 전쟁을 능히 이겨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은 결코 숫자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기드온의 군사가 135,000명의 연합군을 이기기 위해서는 32,000명의 군대를 가지고도 턱없이 부족한데 하나님은 그 중에서 300명만을 선발해서 전쟁에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적은 숫자를 통해 많은 대적들을 이기시겠다는 단순한 진리를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적은 수가 아니라 깨어 있는 자의 수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담판에서 의인 10명만 있으면 멸망치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50명의 숫자를 요구했지만 최종적으로는 10명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숫자는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양보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의인' 즉 하나님을 기억하고 깨어 있는 자라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동일한 법칙이 적용됩니다. 성도들의 수가 적은 것이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숫자가 많다고 해도 자랑일 수 없습니다. 교회는 숫자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깨어 있는 성도가 많은가 하는 것이 교회의 건강 상태를 가늠하는 척도입니다. 숫자가 비록 적은 교회라도 온 성도가 깨어 있다면 사단의 세력을 능히 이기며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성도들이 있더라도 깨어 있지 못한다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멸망 받을 것은 뻔한 사실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혼탁한 세대에 교회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다른 복음, 거짓 진리에 속아서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항상 경계하는 자세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항아리를 부수라

 

"기드온과 그와 함께한 백명이 중간 경점이 시작되는 때에 진영 밖에 이른즉 그들이 새로 파수꾼을 세우더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있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세 무리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등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고 불면서 외치되 주의 칼이라 기드온의 칼이라 하고 각 사람이 자기 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사방에서 에워싸매 그 온 군대가 달려가고 부르짖으며 도망하더니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주께서 그 온 군대에서 각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동료를 칼로 치게 하시므로 군대가 도망하여 스레랏의 벳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과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 나와 함께 모여 미디안 족속을 쫓았더라(삿 7:19-23)

 

기드온은 300명의 용사에게 항아리 속에 들어가 제 2경(밤 10시 - 새벽 2시)즈음에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들고 나팔을 들어 불며 외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여기서 항아리는 우리 육신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항아리 안에는 횃불과 나팔이 준비되어 있는데 항아리가 깨어졌을 때 횃불이 비추고 나팔을 울릴 수 있듯이 우리의 자아(육신)가 깨어졌을 때 비로소 빛을 비추며 복음이 증거 될 수 있습니다. 항아리가 깨어지지 않고는 결코 빛과 나팔이 드러날 수 없듯이 빛 되신 복음(말씀)이 우리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으나 육신을 사랑하면 이 복음은 결코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영적 전쟁의 승리 비결은 육신이 깨어지는 데 있습니다. 또한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가 135,000명의 연합군을 물리친 것이 그들의 적진에서 칼과 창을 휘두르고 치열한 전투를 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 오직 횃불과 나팔을 가지고 메뚜기 같이 많은 군대가 스스로 무너진 것처럼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들과 동일한 방법으로 치열하게 싸우듯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내면에 함께 하는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전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전하는 데 진정한 승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고 서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을지니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정사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을 대적하는 것임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버티어내고 모든 일을 행한 뒤에 서기 위함이라"(엡 6:11-13)

 

기드온의 싸움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권세와의 싸움을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방법을 제시해 주는 모범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과 싸워 나갈 때 수적으로나 능력으로 도저히 승리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무기는 복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육신의 껍질을 깨뜨리고 복음을 세상에 선포함으로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디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한 우리의 내면을 세상에 드러냄으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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