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정복한 성읍들(수12:1-6)

조회 수 2850 추천 수 0 2010.06.06 23:06:01
『이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해가 돋는 요르단 저편 땅 곧 아르논 강에서부터 헤르몬 산까지의 땅과 동쪽의 모든 평야에서 왕들을 쳐서 그들의 땅을 소유하니 그 왕들은 이러하니라.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이라. 그가 아르논 강둑에 있는 아로엘과 강의 중간과 길르앗의 절반에서부터 암몬 자손의 경계인 압복 강까지 다스렸으며 또 동쪽의 긴네롯 바다에 이르는 평야에서부터 평야의 바다 곧 동쪽의 염해와 벧여시못으로 가는 길까지와 남쪽에서부터 아스돗비스가 밑에까지 다스렸더라. 또 거인들 가운데 남은 자들에 속한 자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하던 바산 왕 옥의 지경이라. 그가 그술 족속과 마아가 족속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헤르몬 산과 살가와 온 바산에서 통치하였으며 또 헤스본 왕 시혼의 경계인 길르앗 절반을 다스렸더라. 주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들을 치고 주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족속과 갓 족속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소유로 주었더라.』(여호수아 12:1-6)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들의 움직임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율법은 이미 폐지되었다는 단순한 논리로 구약 성경에 담겨 있는 삶에 대한 지혜조차 무시하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선포하면서 마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구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논리로 사람들을 현혹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명백하게도 구원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지만 하나님께 속한 자는 그분의 자녀답게 살아야 할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사는 동안 영적 싸움을 지속해야하며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며, 세상에서의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소망을 가지고 준비해야 할 것에 대한 교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분의 씨가 그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요, 죄를 지을 수도 없나니 그 까닭은 그가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이라. 이로써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누구든지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니라.』(요일 3:9,10)

 

현대인들은 죄에 대해서 매우 관용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종 영화나 드라마 또는 언론 매체에 이르기까지 범죄를 정당화시키는 모습을 흔치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살인, 강도를 일삼는 근육질의 남성이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둔갑하고 있고, 가정 파괴와 불륜으로 결론지어질 법한 행위가 정당화되고 있으며, 동성애자의 사랑이야기가 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하게 하고, 마약, 매춘 등을 이제 언론의 단골 메뉴가 되었을 정도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파렴치한 스캔들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그를 8년 동안이나 대통령직을 수행토록 하는 모습만 보더라도 현대인들의 죄에 대한 무감각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의 문제에 매우 민감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러한 문제는 매우 심각해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안에도 이미 많은 죄들이 숨어들어 왔지만 알지 못하고 행하는 자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함에 있어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믿음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죄에 대하여는 단호하게 잘라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이들과 동일한 과정을 걸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으로 행하는 여정을 떠났듯이 동일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듯이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껏 누리기까지의 과정도 순탄치 만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것이며, 이를 피하려 든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한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만난 대적들은 영적으로 많은 교훈을 가져다줍니다. 그 대적들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데 있어서 만날 대적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앞에 대적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오는지를 살펴봅시다.

 

모세의 대적들

 

모세 지휘 하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동편에서 정복한 두 왕이 있었는데 그들은 각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첫째는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가기 위해 그 땅을 통과하기를 요청했을 때 오히려 대적했던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일로 완전히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시혼이 이스라엘이 자기의 지경을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자기 백성을 함께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와서 야하스에 이르러 이스라엘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이 칼날로 그를 치고 아르논에서부터 얍복에 이르기까지 그의 땅을 소유하여 암몬 자손에게까지 이르니 이는 암몬 자손의 경계가 강하였음이더라.』(민 21:23,24)

 

세상 사람들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습니다. 그 앞을 가로막는 자들이 언제나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적하여 우리로 하여금 전쟁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이 과정은 겪지 않을 수 없는 과정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 앞을 가로막는 대적에 대하여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싸워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약해 있는 것은 이러한 싸움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의 승리가 보장되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막고 있는 세상의 모든 대적들에 대하여 담대하게 싸워 이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바산왕 '옥'입니다.

 

그는 신장이 장대하여 침대의 크기만도 9규빗(약 4m)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60여 성 읍을 거느릴 정도로 매우 막강한 통치자였습니다.

 

『그 때에 우리가 그의 모든 도시를 빼앗았으니 그들에게서 빼앗지 아니한 도시가 하나도 없었더라. 그 도시들이 예순 개니 아르곱 온 지방 곧 바산에 있는 옥의 왕국에 속한 도시들이라...... 이는 거인들의 남은 자들 가운데 남아 있는 자가 오직 바산 왕 옥뿐이었음이라. 보라, 그의 침상은 쇠 침상이라. 그 침상이 암몬 자손의 랍바스에 있지 아니하냐? 그것을 사람의 큐빗으로 재면 그 길이가 구 큐빗이요, 넓이가 사 큐빗이니라.』(신 3:4, 11)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과정에서 만나는 대적은 그리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그는 거대하며 막강한 힘으로 그 길을 막기 위해 서 있습니다. 사단은 누구보다 우리의 약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까닭에 그는 막강한 힘으로 우리를 압도하려 하고 있습니다.

 

막강한 대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많은 피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희생을 치루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거대한 대적과의 싸움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싸움을 친히 지휘하시고 싸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위의 두 싸움에서 보았듯이 모세의 싸움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싸움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싸움을 치루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길에 가로막는 대적들과 두렵게 하는 모든 것들을 능히 이겨내고 승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수아의 대적들

 

모세가 요단 동편에서 두 왕을 상대로 전쟁을 했지만 여호수아는 기록된 성 읍만 31개가 될 정도로 많은 대적들과 싸움을 치렀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의 싸움보다는 오히려 되고 나서 치러야 할 싸움이 더욱 많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주의라고 주장하는 많은 교회들의 실수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많은 시간들을 보내지만, 구원받은 이후의 삶에 있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구원받은 이후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렇습니다.

 

먼저 구원받은 이후에는 싸워야 할 대상이 많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각 각 정복한 성 읍의 숫자만큼이나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구원받기 전보다 더욱 많은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 까닭은 구원받기 전에는 믿음을 얻기 위한 싸움이지만, 구원 후에는 내 안에 있는 육신의 생각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이 싸움의 대상은 그리 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성격이 워낙 다양해서 잠시라도 깨어 있지 않으면 실패할 수 있습니다.

 

이 싸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아간다면 결코 이 복잡한 싸움에서 우리가 넘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 위해 모이기에 힘써야 하겠고, 가정에서도 온 가족이 성경 읽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며, 심지어 직장, 학교, 사업 터 등지에서도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지 않도록 생활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대적들은 연합해서 다가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우리를 넘어뜨리려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자를 든다면 욥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당대에 의인이었습니다. 사단은 그를 넘어뜨리기 위해 조금씩 그를 시험했던 것이 아니라 일시에 자녀, 종, 가축 등을 죽이고 심지어 아내까지 그의 곁을 저주하고 떠나게 만드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러한 일들을 흔치 않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경건하게 사는 자가 어느 날 갑자기 불행한 일들이 겹쳐서 당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 데 어떤 이는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서 그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는 것을 볼 수 있고, 어떤 이는 결국 넘어져서 믿음으로부터 멀어지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 닥치는 시험은 대체로 겹쳐서 즉 사단이 그 힘을 모아서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다가옵니다. 물론 반드시 이러한 경우를 만나지는 않지만 사단의 속성이 바로 이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된 자들은 이러한 공격이 다가 오더라도 결코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말씀을 굳게 잡고 믿음으로 싸워 가는 성도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와 여호수아가 점령한 성을 나열한 12장의 내용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치러야 할 전쟁에 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영적 전쟁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직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성도라면 모세의 전쟁을 통해 구원의 복음을 받아 영접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바라며, 또한 구원받은 성도라면 여호수아의 전쟁을 통하여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지혜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부디 바라기는 영적 싸움에서 실패하는 일없이 승리하는 생애를 살아가실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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