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의 죽음(수24:29-31)

조회 수 2529 추천 수 0 2010.06.06 23:15:22

『이 일들 후에 주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사람들이 그를 그의 상속의 경계 안에 있는 딤낫세라에 묻었으니 딤낫세라는 에브라임 산에 있으며 가아스 산 북쪽에 있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모든 날 동안과 여호수아보다 더 오래 산 장로들 곧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모든 날 동안 주를 섬겼더라』 (여호수아 24:29-31)

 

여호수아는 그 이름이 말해주듯이 '구원자' 즉 예수님과 같은 뜻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까닭에 여호수아를 통해서 예수님의 모습을 알고, 또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미 24장까지 오는 동안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임해야 할 자세를 수 없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가 임종하기 직전에 남긴 말 한마디 한마디는 그의 인생을 담고 있는 것이기에 더욱 의미 있게 받아들일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된 자로서 과연 임종 직전에 여호수아와 같은 유언을 남길 수 있을까? 과연 하나님 앞과 모든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인생을 드러내고 이처럼 살라고 권면할 수 있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여호수아를 통하여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발견하는 지혜를 얻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돌아 봄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유사들을 부르고 아브라함의 아버지였던 데라가 다른 신들을 섬겼던 시대로부터의 역사를 시작하여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애굽에서 광야, 그리고 가나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열거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셨던 역사를 소개합니다.(1-13)

 

모든 것에는 역사가 있습니다. 이 역사는 결코 민족과 국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교회, 가정, 심지어 한 인생에 있어서도 역사는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역사는 언제나 과정보다 결과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수 없이 많은 민족과 나라들이 세워졌고, 또한 사라져 갔습니다.

 

여호수아는 개인과 민족의 역사를 세워감에 있어서 결코 후회가 없는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는 삶의 목표였던 가나안에 이르렀고, 민족의 숙원인 애굽으로부터 벗어나 이제 그들이 정착할 땅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역사는 결코 많은 이들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를 통해 보듯 믿음 있는 한 사람의 자세가 역사를 바로잡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사에 있어서도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증거들은 많습니다. 바울 한사람의 헌신적인 삶이 로마를 복음화 시킬 수 있었고, 위클리프의 성경을 향한 열정이 성경을 대중화시킬 수 있었고, 루터의 교회의 타락에 대한 도전이 개혁에 대한 절반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시대에 존재하고 있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전하며, 순교자의 자세를 가지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전도자는 결코 많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적당한 타협과 순리를 따르는 모양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전형적인 모습니다. 그 까닭에 자신들의 은사를 망각하고 다른 이들의 성장모델을 흉내 내어 교회 안에 적용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는 개인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온전한 믿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다면 결단코 하나님께서 우리의 편이 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자신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니라.』(히 11:6)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목표가 개인에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특별한 상황에 처해 있는 나라와 민족, 그리고 이 시대를 사는 모든 백성들을 향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무기로 삼고 이 민족과 이 시대에 영혼들을 향한 구령열정을 가지지 않는다면 이는 곧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미 성령이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복음 전하는 일을 당연시했다는 사실을 염두 해 두시기 바랍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후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신앙의 결단

 

『만일 주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혹은 너희가 지금 거하는 땅의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이 날 택하라. 그러나 나와 내 집으로 말하건대 우리는 주를 섬기겠노라, 하니 』(15)

 

여호수아는 임종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결단을 요구합니다. 여호와를 섬기든지 아니면 이방신을 섬기든지 하나만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중간상태일 수 없습니다. 이미 주님은 요한을 통하여 미지근한 신앙을 경계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므로 내가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리라.』(계 3:15,16)

 

오늘날도 사단은 교묘한 방법으로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모든 교회는 하나다"라는 명분으로 교회연합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모든 교회는 그들의 교회에 주어진 사명에 따라 이 시대에 온전한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가 펼치고 있는 교회연합운동은 이미 혼합주의로 가자는 것입니다. 가톨릭을 비롯한 정교회, 성공회 등 이미 복음에서 벗어난 우상숭배 집단과 연합을 꾀함으로서 이미 순수한 교회이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미 이단적인 교회마저도 교세가 크다는 이유로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가나안의 종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까닭은 그들의 혼합주의적인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가나안 종교의 후예인 가톨릭이 기독교회로 행세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그들의 이러한 혼합주의적인 성격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그들의 종교 안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합니다. 이제는 수많은 교회들이 그들의 의식을 따르며, 그들의 절기와 행사를 흉내 내고 있습니다. 어느덧 교회는 계급을 이룬 종교단체로 변해가고 있고, 이제는 사회봉사 단체가 되어지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은 복음의 핵심을 버리고 철학과 사상으로 물들여 지고 있으며, 거짓된 신학이 성경을 압도해 버린 지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음을 앞두고 신앙의 결단을 촉구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바로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결코 집단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훌륭한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할지라도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실이 없다면 그는 이미 그리스도인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내 집' 곧 그의 가정도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고 말합니다.

 

이제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분명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사단의 각종 유혹을 뒤로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적당하게 시대의 흐름에 묻혀서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부디 구원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지혜로운 결단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좁아 찾는 자가 적기 때문이라』(마 7:13,14)

 

여호수아의 죽음

 

여호수아는 110세의 나이에 임종을 맞이합니다.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의 나이는 90세였습니다. 즉 그는 약 20년간에 걸쳐 가나안 정복과 땅을 분배하는 일을 한 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을 가져다 준 지도자로서 예수님의 모형이 된 지도자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승리하고,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의 뒤를 따를 때 혼란스럽고 방황했던 광야생활을 청산하고 아름다운 삶을 지속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죽음은 사실상 좀 더 깊은 의미를 안겨다 줍니다. 그가 살아 있을 때에는 그의 명령을 받아 살면 되지만 이제는 그들 자신이 여호수아의 말을 기억하고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어찌 보면 새로운 의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그들이 소유한 안식을 지켜야 할 사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서 우리의 영혼에 안식을 위하여 모든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로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이스라엘 백성과 동일한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잊고 자기 방식대로 살아간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으로 인하여 수많은 고통을 당했듯이 우리의 영혼은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시대 속에서 여호수아를 통해 얻었던 영적 전쟁을 치루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결단코 시대의 요구에 흔들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복되고 생명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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