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성(수20:1-6)

조회 수 3157 추천 수 0 2010.06.06 23:12:00

『또 주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내가 모세의 손으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지정하여 알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사람을 죽인 자로 하여금 거기로 도망하게 하라. 이 도피성들은 피의 원수를 갚는 자로부터 너희를 지켜 줄 피난처니라. 이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도망하는 자는 그 도시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도시 장로들의 귀에 자기 사정을 밝히 말할 것이요, 그들은 도시 안으로 그를 받아들이고 처소를 주어 자기들 가운데 거하게 하고 피의 원수를 갚는 자가 그를 따라 온다 할지라도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어 주지 말지니 이는 그가 전에 자기 이웃을 미워하지 아니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자기 이웃을 죽였음이라.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나 혹은 그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시에 거하다가 그 뒤에 자기의 본 도시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그 도시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여호수아 20:1-6)

 

도피성에 관한 언급은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일러주신 바 있습니다. 땅을 분배받지 못하는 레위인들을 위하여 성읍을 지어 주도록 명령하시면서 48개의 성읍을 짓도록 하셨는데 그 중에 6개의 성이 바로 도피성이었던 것입니다.

 

『너희가 레위사람들에게 줄 도시들 중에서 여섯 도시는 사람을 죽인 자를 위해 도피성으로 지정하여 그로 하여금 거기로 도피하게 할 것이요, 또 너희는 그 도시들 외에 마흔 두 개의 도시를 더 줄지니라.』(민35:6)

 

각 성읍이 세워지는 도시의 이름은 납달리 지파에 속한 게데스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세겜 유다 지파에 속한 헤브론 르우벤 지파에 속한 베셀 갓 지파에 속한 길르앗 라못 므낫세 지파에 속한 골란 위의 지역들은 가나안 전역에 골고루 분포되어 누구나(유대인, 이방인) 찾아 올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도피성을 준비하셨습니다. 부디 도피성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발견함으로서 우리의 신앙이 더욱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죄인만이 들어올 수 있는 도피성

 

하나님은 아무런 원한이나 감정도 없으면서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위해 복수를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 도피성을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성을 만든 더욱 큰 이유는 구원에 대한 말씀을 하시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죄인이 아닌 자는 도피성에 찾아 올 이유가 없습니다. 오직 죄인만이 그곳에 와서 자신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걸할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위한 조건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 믿음은 결코 조건이나 환경을 요구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믿음을 쉽게 얻을 수 없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인 아닌 자가 결코 도피성에 올 이유가 없듯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자가 결코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문제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온전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필요하나니 내가 의로운 자를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하시니라.』(눅5:31-32)

 

우리는 사도바울과 같은 이들의 고백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믿음의 후손들이 가장 본받고 싶어 하는 믿음의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심지어 적그리스도의 대명사인 교황조차도 바오로(바울)라는 이름을 가지고 싶어 할 정도로 그는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백을 들어본다면 매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그의 서신중에 비교적 후기에 쓰여 진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을 통하여 고백하기를 자신은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신실하도다 이 말이여,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하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함이로다.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니라.』(딤전1:15)

 

바울의 이러한 자세는 최고의 전도자로 만들었고, 그의 평생에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 하는 생애를 누리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한 결코 죄와 상관하지 않고 살수는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이라는 신분은 얻었지만 나의 본질은 죄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산다면 언제나 겸손하며, 은혜의 감격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고백이 있는 그리스도인

 

진정한 간증, 혹은 고백이란 어떤 것일까? 오늘날 간증자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성공담, 혹은 출세담을 소개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안정시켜 주며,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 전부인 것처럼 소개합니다. 그러나 도피성을 들어가는 자가 고백하는 것은 자기에게 있었던 일(죄의 실상)을 낱낱이 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기를 꺼려합니다. 그 까닭에 교회 안에서도 오랜 세월동안을 같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성도들의 생활과 신앙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어찌 보면 이러한 생활은 성경과 매우 배치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들의 생활 도구들을 서로 나누어 쓸 정도로 매우 공개된 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 까닭에 교회 안의 구제활동도 활발하게 진행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교회 안에서의 구제는 뒤로하고, 사회에 기부금 형태로 지원하는 모습과 비교해 본다면 비교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지내며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자기 소유와 재산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대로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며 또 날마다 한 마음이 되어 성전에 거하고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며 빵을 나누면서 단일한 마음으로 즐겁게 자기들의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온 백성에게 호감을 얻으니 주께서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을 날마다 교회에 더하시니라.』(행2:44-47)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는 일이 결코 자존심을 상하거나,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놓는 길이며, 우리의 영혼이 사는 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러한 고백을 주저하고 있다면 주님은 결코 우리와 함께 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말하면 스스로를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는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말하면 그분은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요, 또한 그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8-10)

 

죄의 고백을 통하여 도피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죄의 고백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는 성에 이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보호받는 도피성

 

도피성의 지도자들은 살인한 죄인들을 성안으로 받아들이고, 그가 있을 곳을 마련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복수하는 자가 그곳까지 따라와 그를 내어 달라고 하더라도 결코 내어 주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즉 도피성 안에서는 죄인의 생명이 철저하게 보호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도피성이 얼마나 동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앞에 오는 자를 영접하시고 결코 내어 쫓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6:37)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요10:28)

 

우리가 세상에서 생명을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뿐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세상은 결코 우리를 빼앗아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능히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할 것임이니라.』(롬8:38-39)

 

세상에서 우리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고 그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제사장의 죽음과 사면

 

죄인이 도피성 안에 갇혀 있는 기간은 대제사장이 죽는 기간까지입니다. 만일 그가 대제사장이 죽기 이전에 성을 빠져나가게 되면 그의 생명은 더 이상 보호받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못하고 이탈하게 된다면 그의 생명은 더 이상 생명을 보호받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는 단번 속죄에 집착한 나머지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논리로 비록 신앙생활을 하다가 타락했다 하더라도 구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사망의 위험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죄인의 삶의 완전한 해결은 대제사장이 죽음으로서 완성되었습니다. 그의 죄의 고백을 듣고, 보호해 주던 대제사장의 죽음과 더불어 그의 모든 죄와 허물은 없어진 것입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도피성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유인에 되어 죽음으로부터 지켜진 생명에 대한 감사를 하며 하루하루를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한 기쁨과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더불어 죽어지는 삶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결코 참된 만족과 안식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있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갈2:20)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서 우리의 생명이 멸망으로부터 영원히 보호받으며 매일의 삶이 기쁨과 감사, 그리고 참된 안식이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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