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지파가 분배받은 땅(여호수아 15:63)

조회 수 2511 추천 수 0 2010.06.06 23:08:42

예루살렘 거주민들인 여부스 족속으로 말하건대 유다 자손이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이 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니라.』(여호수아 15:63)

 

유다 지파가 기업으로 얻게 된 땅은 실제적으로 가나안의 요충지라고 할 만한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많은 농산물을 생산해 낼 수 있는 땅이었으며, 수많은 민족들이 집단을 이루고 살았던 안정적인 곳이었습니다. 사실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곳에 들어옴으로 인하여 가나안의 토박이들은 혼란을 겪게 되었고, 결국에는 주인의 자리를 내주고 멸족을 당하거나 종의 자리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영적 삶에 있어서도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 육신은 아무 문제없이 세상을 안정적이고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막상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의 우리의 삶은 그야말로 혼돈의 연속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있는 죄, 즉 육신의 소욕이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거스르기 때문이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갈 5:17)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의 생활이 평안해 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막상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의 삶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물질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기도 하며, 때로는 건강을 잃기도 하는 어려움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갑자기 멀어져 가며, 자신은 어느 순간에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사실은 우리의 소속을 분명하게 바꾸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전에는 세상을 떠도는 나그네의 신분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시민권을 취득한 자들입니다.

 

『이는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이기 때문이라. 우리가 또한 거기로부터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사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신의 영광스런 몸과 같게 하시리라.』(빌 3:20,21)

 

그 까닭에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핍박을 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의 화해를 시도하기 위해서 구제와 봉사 등으로 가까이 가려 하지만 세상의 속성상 그들의 기준 아래 선행의 기준을 두어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리도록 요구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관여함으로서 복음의 본질을 벗어나 이익집단이 되어가고, 명예나 권세를 추구하던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과 같은 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베드로나 요한, 바울과 같은 사도 혹은 복음전도자들이 당시 백성들 사이에 영향력 있는 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타협함이 없이 순수한 복음을 전하며, 오히려 핍박받는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따르려는 자들은 반드시 희생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유다 지파의 남은 전쟁

 

『예루살렘 거주민들인 여부스 족속으로 말하건대 유다 자손이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이 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니라.』(63)

 

유다 지파에게 있어서도 결코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비록 땅을 분배받았으나 여부스 족속이 여전히 예루살렘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그 까닭에 그들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족속으로 남게 됩니다.

 

『너희는 이 땅의 거주민들과 동맹을 맺지 말고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어찌하여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느냐? 그러므로 또한 내가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되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삿 2:2,3)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은 자신들에게 가시와 올무가 되고 말았습니다. 기브온 족속들은 유다 지파의 곁에 남아서 분쟁과 우상 숭배의 원인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믿음 상태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 사는 성도들이 죄의 요소를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믿음의 삶을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간다면 그것은 영혼을 찌르는 가시와, 우리의 영혼을 더 이상 성장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올무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와의 싸움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우리의 삶에 경건한 삶을 위협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과감히 끊어야만 합니다. 물론 이것이 우리의 의지나 생각으로부터가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힘으로 가능합니다.

 

『오직 속되고 늙은 부녀들이 꾸며낸 이야기들을 거부하고 도리어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훈련하라. 이는 육체의 훈련은 유익이 적으나 경건은 모든 일에 유익하며 현재의 생명과 앞으로 올 생명의 약속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니라.』(딤전 4:7,8)

 

우리가 위의 성경 구절만을 생각하고 경건이 육신적인 훈련을 통해서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자칫 율법적인 신앙을 가지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미 많은 거짓교사나 거짓 전도자들이 이러한 방법을 써봤지만 복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뿐이었습니다. 초대교회에도 많은 거짓 진리를 가르치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후메네오와 빌레도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경건의 삶을 무너뜨리는 무기는 바로 부활신앙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너는 속되고 헛된 말장난들을 피하라. 그것들은 점점 더 경건치 아니함으로 나아가느니라. 그들의 말은 궤양이 파먹는 것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잘못하였으나 곧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말하여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뒤집어엎었느니라.』(딤후 2:16-18)

 

경건의 삶의 기초와 훈련의 방법은 육신적인 훈련을 통하여 완성되어져 가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기초로 순종의 삶을 통하여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부디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죄와 상관하지 아니하고, 경건의 삶을 살기 위해 진리로 무장하며, 순종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분배받은 땅의 경계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땅의 경계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염해, 즉 사해가 있고, 서쪽으로는 대해, 즉 지중해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이스라엘 백성과 끊임없는 원수지간을 유지했던 에돔 족속이 자리 잡고 있었고, 북쪽으로는 예루살렘을 가까이 두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들은 각기 영적으로도 의미를 지닌 지역입니다. 염해(사해)는 죽음, 대해(지중해)는 세상, 에돔 족속은 끊임없이 괴롭히는 원수,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은 복잡한 환경 속에 처하게 됩니다. 끊임없는 죄의 유혹과 죽음의 위협들, 또한 세상을 등질 수 없는 상태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북편 즉 예루살렘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북편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종종 설명하고 계신데 이는 곧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는 네가 네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내가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의 별들 위로 내 왕좌를 높이리라. 또 내가 북쪽의 옆면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내가 구름들이 있는 높은 곳 위로 올라가서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이 되리라, 하였음이라.』(사 14:13,14)

 

『좋은 날씨가 북쪽에서 나오나니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욥 37:22)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뻣뻣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이는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나 남쪽에서 나오지 아니하며 오직 하나님께서 재판장이 되시기 때문이니 그분께서 이 사람을 낮추시고 저 사람을 높이시느니라.』(시 75:5-7)

 

위의 말씀을 가지고 많은 성경학자들은 하나님이 북쪽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문자적으로나 실제로 하나님이 북쪽에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북쪽에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국 사망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세상에서 각종 유혹과 환난 속을 살아가지만 마음을 하나님께 향했을 때 승리하는 삶은 보장된 것입니다.

 

유다 자손의 땅이 동, 서, 남쪽으로 사해와 대해와 에돔 족속의 위험 속에 있듯이 그리스도 안에 사는 모든 자들은 사망과 세상과 원수의 위험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자손들이 언제나 예루살렘을 그들의 수도로 삼고 성전을 세우고, 그곳을 향해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셨듯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모든 위협을 뒤로하고 하나님을 향해 경배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결코 실패하는 인생을 살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우리의 눈을 믿음의 눈으로 고정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소개되지 않은 성 베들레헴

 

유다 지파에게 분배 된 땅 안에는 많은 성들이 있었습니다. 에돔에 경계한 성읍이 38개, 평지에 있는 성읍이 15개, 구분 없이 소개된 성읍이 25개, 산지에 있는 성읍이 38개, 광야의 성읍이 6개에 이릅니다. 이성을 모두 합하면 122개의 성에 이릅니다. 이 성에 숫자적인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성경학자들도 많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 많은 성 중에서 유다 지파의 땅에 속해 있는 베들레헴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베들레헴이 매우 작은 성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네가 유다의 수천 중에서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의 치리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아오리니 그의 나아감은 옛적부터 있었으며 영원부터 있었느니라.』(미 5:2 ; 마 2:6)

 

그 작은 성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나셨습니다. 우리의 눈은 언제나 크고 넓은 것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 까닭에 큰 교회당, 많은 성도, 물질 등이 신앙과 좋은 교회의 기준이 되곤 합니다. 또한 그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며, 정의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1000만이 넘는 그리스도인의 숫자를 자랑하는 이 땅에 과연 사랑과 정의가 살아 숨 쉬고 있습니까? 실제로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힘은 얼마 되지 않는 순수한 그리스도인에 의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사회의 전면에 나와서 백성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비록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지만 분봉왕이 종교 지도자들의 말을 듣고 통치를 할 만큼 그들의 역할은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이방인이며, 로마의 총독이었던 빌라도마저 죄가 없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군중을 이용하여 사단의 노리개가 되었던 것입니다.

복음의 명맥은 결국 예수님을 사랑한 몇 명의 제자와 여인들에 의해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동일한 현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인 행세를 하고 다니지만 실제로는 많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서 구원을 향한 문이 넓지 않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유다 지파의 수많은 성중에서도 베들레헴이 눈에 띄지 않았듯이 구원의 길이 우리의 눈앞에 거대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좁아 찾는 자가 적기 때문이라.』(마7:13,14)

 

그렇다고 낙심할 일은 아닙니다. 여전히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며, 우리가 세상을 따르지 아니하고, 진리의 말씀 듣기를 게을리 하지 아니하며, 세상으로부터 오는 시험을 이기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간다면 여전히 천국은 우리의 것입니다. 인내하는 삶을 통하여 반드시 생명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행하다가 지치지 만지니 이는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면 정하신 때에 거둘 것임이라.』(갈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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