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 함락(수6:12-21)

조회 수 2308 추천 수 0 2010.06.06 22:59:36

우리는 이미 가나안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준비해 두셨다는 사실과 믿음이라는 무기로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의 방황을 마치고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넜고, 건넌 후에는 할례와 유월절 의식을 통해 신앙의 회복을 고백했으며, 가나안 정복을 향한 모든 준비를 준비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을 정복해 가는 데 있어서 첫 번째 관문을 '여리고'라는 막강한 성이었습니다. 당시 가나안 전 지역을 통틀어 가장 막강한 성이었던 여리고를 공략한다는 것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40년의 광야 생활을 통해 지칠 대로 지쳐 있고, 체계적인 군사 훈련을 받지도 못한 그들이 눈앞에 서 있는 웅대한 성 앞에서 주눅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곳을 거치지 않고는 가나안을 정복할 수 없는 딱한 처지에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부딪히지 않을 수 없는 커다란 영적 싸움을 치러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절대 양보할 수 없고,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를 앞에 두고 좌절하거나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여리고를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의 심정처럼 도저히 해결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커다란 문제 앞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여리고, 즉 커다란 문제의 해결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승리의 비결은 확신 있는 순종

 

하나님은 싸움을 치르는데 있어서 그 방법을 제시해 주십니다. 그러나 이 방법을 제시해 주시기에 앞서 확신을 갖도록 하시는 일을 알 수 있습니다.

 

"주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것의 왕과 강한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나니"(2)

 

확신이 없는 싸움은 승리를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더욱이 연약한 육신을 가진 자들이 대적의 강한 모습 앞에서 싸운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승리에 대한 확신은 전쟁을 치르는 자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실제로 확신이 없는 전쟁은 가능성조차 없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오랜 동안 전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실상은 누구도 승리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싸움을 치르는데 있어서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믿음의 확신이 없는 자는 모험을 하지 않습니다. 매사에 주저하고 믿음 없이 행하며, 결단을 미루려고 합니다. 사단은 이 일들을 즐기며, 방황을 거듭하다가 포기하는 것을 즐깁니다. 주님은 언제나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계십니다. 자신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소개하고 계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요 14:6)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분명한 확신 속에서 시작되어야만 합니다.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속에서 시작하게 된다면 반드시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분명한 확신 속에서라야 만이 참된 순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순종의 결과는 확신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은 확신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 까닭에 터무니없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거대한 성 여리고를 무너뜨리기 위해 성 주위를 돌라고 하는 명령이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명령은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노아에게도 하나님은 터무니없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육체의 끝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이는 땅이 그들로 인해 폭력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라. 보라,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고펠나무로 방주를 짓고 방주 안에 방들을 만들며 역청으로 그것의 안팎을 칠할지니라."(창 6:13,14)

 

거대한 배를 만들고 있는 노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매우 따가웠을 법이었지만, 노아는 이 백성이 반드시 멸망당할 것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순종함으로서 결국 그의 가족들만 구원 얻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노아가 주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에 따라 행하였더라."(창 7:5)

 

사사시대 때의 기드온도 역시 동일한 도전을 받아야 했습니다. 10만 명이 넘는 미디안과 아말렉 연합군을 300명으로 싸우라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온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이 확신을 바탕으로 그들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기드온이 그 꿈과 해석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군대로 돌아와서 이르되, 일어나라. 주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하고"(삿 7:15)

 

300명의 용사가 가진 무기는 횃불과 항아리, 그리고 나팔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전쟁에서 크게 필요치 않은 물건들로 전쟁을 치르라는 명령은 터무니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전쟁에 임한 기드온의 군사들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전쟁의 승리 비결이 외적인 환경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확신 있는 순종이야말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참된 비결임을 발견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감당하기 힘든 영적 전쟁을 치러 가야 합니다. 이 전쟁은 결코 육신적인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 전쟁을 위해서 직장을 잃게 될 수도 있으며, 사회로부터 격리 당할 수도 있고, 육신적인 물질, 명예, 권세 등에 막대한 타격을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천국에 대한 분명한 소망과 그리스도께서 구원해 주실 것이란 분명한 확신 속에 있다면 더 이상 세상에서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과 아쉬움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여호수아나 노아, 기드온이 상식에서 벗어났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듯이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다 할지라도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을 결코 망설임 없이 행할 것입니다. 이 일이야말로 천국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하리라.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그 집이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그 까닭은 그것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라.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하리라.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집이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4-27)

 

지혜로운 자는 말씀 안에 사는 자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미련하다고 말한다 할지라도 오히려 감사하며 순종의 생애를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믿음의 선진들이 행했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해했다면 결코 구원의 역사는 우리 가운데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지혜는 이 세상 통치자들 중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8)

 

예수님은 순종에 있어서 최고의 모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앞에 "조금 멀리 나아가사 얼굴을 대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오 내 아버지여,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시며 그 뜻을 하나님께 맡기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 때 모든 사람들은 구원에 대한 모든 계획이 끝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자기가 있던 곳으로 가고, 백성들도 자신의 처소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서 사단은 예수님 앞에 무너졌고 하늘 문은 열렸으며 온 백성을 향한 구원의 계획이 완성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구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습니다. 매우 미련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러한 단순하면서도 미련해 보이는 일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미련한 방법을 쓰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분은 하나님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주께서 도시를 너희에게 주셨느니라."(16)

 

"주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와 함께한 백성이 너무 많으므로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족속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이 나를 대적하고 자기를 치켜세우며 말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염려하노라."(삿7:2)

 

하나님께서 전쟁하시는 방법은 언제나 부족한 속에서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전쟁의 성패가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동일한 방법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은 세상에서 성공적인 생애를 살아가기에는 부족해 보이는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더욱이 비 진리, 거짓, 부도덕함 등과 타협할 수 없으며,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보다는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하는 그들로서는 어찌 보면 미련한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이고 명령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행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에서 부족한 것들을 어떻게 채워 나갈 것인가? 그것은 우리를 위해 싸우고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중요한 비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함께 흔들고 넘치게 하여 사람들이 너희 품에 안겨 주리라. 너희가 잴 때 쓰는 그 척도로 너희가 다시 평가를 받으리라."(눅 6:38)

 

만일 우리가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계속한다면 하나님은 또 다른 이웃들을 보내셔서 더욱 많은 것들로 공급해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라'는 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아무도 나누어주는 것만을 가지고 지혜롭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얻는 결과는 가난과 궁핍함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께서 임하고 계신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그 결과는 넘치는 복과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여리고 성을 돌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은 우둔하기 짝이 없는 모습입니다. 힘없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 싸우지도 않고 배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백성 가운데 하나님이 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반드시 여리고 성은 무너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골리앗 앞에 서 있는 다윗의 모습은 나약하기 짝이 없는 소년이었습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 갑옷조차 입을 수 없는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도저히 싸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싸움에는 하나님이 계셨고 이 싸움을 승리케 하시도록 했던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골리앗은 이 어린 소년 앞에 고꾸라졌고 그 자신이 차고 있던 칼에 의해 목이 잘려졌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의 영적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요? 예외 없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사는 동안 수없이 많은 영적 싸움을 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연약한 모습 앞에 세상은 너무도 거대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과의 싸움에서 또다시 미련한 방법으로 전쟁을 치루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바울은 미련하리만큼 복음을 전했습니다. 수없이 매 맞고, 감옥에 갇히고, 풍랑을 만나면서도 복음 전하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고후 11:23-30). 결국 그는 믿음으로 승리했고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확장되어 갔습니다. 오늘날 주님의 명령은 바로 복음 전하는 데 있습니다(마 28:18-20).

이 방법은 비록 미련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이 일에는 놀라운 승리가 계속 될 것입니다. 부디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사시기 위해 이 싸움을 지속하시기를 바랍니다.

 

새벽을 깨우라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매......"(12)

 

"일곱째 날에 그들이 날이 샐 무렵에 일찍 일어나 같은 방식으로 도시를 일곱 번 에워싸더니 그들이 도시를 일곱 번 에워싼 것은 그 날뿐이었더라."(15)

 

한국의 교회는 비교적 초기부터 새벽 기도회가 정착되어서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오히려 새벽 기도회를 하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는 교회로 인식되어 교회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미국의 교회가 한인 교회를 제외하고 대부분 새벽 기도회를 하지 않는 것을 생각한다면 한국의 교회는 훌륭한 제도 하나를 가진 셈입니다. 그러나 만일 새벽 기도회가 하나의 의식과 형식으로만 인식되어 '남들이 하니 나도 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새벽은 시간적으로 볼 때 동트기 전후를 말합니다. 그러나 더욱 엄격히 구분한다면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함으로서 하루를 경건하게 보내고자 하는 모습, 즉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이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첫 번째의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벨도 양의 첫 새끼를 드림으로 믿음을 보였고,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한 주간의 첫날을 예배함으로써 모든 날들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했으며, 물질에 있어서도 쓰기 전에 먼저 1/10을 주님께 드림으로 모든 소유가 주님의 것임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되고자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만이 승리를 보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7일 동안 새벽을 깨움으로서 여리고를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든 순간 자신들도 역시 순종함으로 일하겠다는 믿음이 숨어 있습니다. 새벽은 우리에게 있어서 단순히 시간적 의미를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시작되는 모든 것에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을 기대하십시오. 우리가 눈을 뜨고 난 뒤 첫 호흡, 아침 식사를 대할 때 첫 숟갈, 문을 나선 뒤 첫 걸음, 직장에서의 첫 업무, 학교에서의 첫 수업 이 모든 것이 오늘날 우리의 진정한 새벽입니다. 이 새벽을 주님과 시작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거대한 영적 여리고인 세상을 무너뜨리고 승리하는 생애를 살게 될 것입니다. 준비하는 그리스도인만이 승리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신앙으로 성공적인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여리고의 함락을 통하여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확신이 있는 순종, 미련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는 믿음이 동반된 복음 전파, 그리고 깨어 있는 자세를 통하여 오는 이 시대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애를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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