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여인 라합(수2:15-21)

조회 수 2068 추천 수 0 2010.06.06 22:56:27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래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민족들을 모두 대적자들이었고 전쟁과 화해를 번갈아 가면서 역사를 만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과 대적의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이방인들이 종종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을 들 수 있다면 라합이라는 여자입니다. 라합은 결코 믿기 힘든 가운데 믿음을 보였던 한 여자로만 보기에는 부족합니다. 라합은 오늘날 이방인 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길을 제시해 주는 믿음의 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합이 여리고의 멸망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비록 천한 창녀의 신분이었지만 멸망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았고 그 방법을 실행함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도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칼과 창도 없이 견고하게 보이기만 했던 여리고 성이 무너지듯 이 세상은 민족간의 전쟁과 각종 기근, 질병을 통하지 않더라도 멸망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 멸망당할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를 라합을 통해 얻고 우리가 이미 구원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다면 다가올 멸망에 무방비한 상태로 서 있는 세상의 영혼들에게도 구원에 대비하도록 준비시켜 주는 일도 서슴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고 계셨음을 알고 있는 라합

"두 사람이 눕기 전에 그녀가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그 사람들에게 말하되, 주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너희로 말미암아 두려움이 우리에게 임하였고 또 이 땅의 모든 거주민이 너희로 인하여 기력을 잃었나니 이는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르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진멸한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수 2;8-10)

라합이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들 맞기 전에 이미 이스라엘의 행적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계셨음을 알고 계셨고 자신의 고향이자 거주지였던 여리고 역시 하나님의 손에 의해 멸망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구원에 이르기 위한 상호 작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주변 민족들에게 증거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그들을 두렵게 했고, 결국 이스라엘에게 거의 저항해 보지도 못한 채 패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라합과 같이 구원에 이르는 자도 생겨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복음을 증거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복음은 단순히 말로만 증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아무리 목소리가 크거나 높아도 사단은 꼼짝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잡아먹으려 들것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사례는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으로 특별한 기적들을 행하시니 심지어 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들에게 대기만 해도 질병들이 그들에게서 떠나고 악한 영들도 나가더라. 그 때에 떠돌아다니는 유대인들 가운데 마귀를 내쫓는다 하는 자들이 자기들이 흉내내어 악한 영들이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이르되, 바울이 선포하는 예수님을 힘입어 우리가 너희에게 엄히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인으로 제사장들 가운데 우두머리인 스게바라 하는 사람에게 아들 일곱이 있어 이들도 그와 같이 하매 그 악한 영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그 악한 영 들린 사람이 그 들에게 뛰어올라 그들을 눌러 이기니 그들이 벌거벗고 상한 채로 그 집에서 도망하매"(행 19:11-16)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당했던 망신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복음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드러내고자 하는 열심을 가지고 나타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서만이 증거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스게와의 아들들은 바울이 했던 말과 행동을 그대로 흉내내어 귀신을 쫓아내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말과 행동이 있었더라도 그의 내면에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사단의 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스게와의 아들들이 당한 망신은 이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랄 것도 없이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그 안에서 능력을 나타내며 복음이 증거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음은 누차에 걸쳐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초라함과 볼품없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 앞에 모든 민족이 두려워 떨었던 사실처럼 오늘 진리의 복음 안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비록 가난하고, 미련하고, 약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 앞에 두려워 떨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복음이 증거되기 위해 먼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라합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생겼다는 사실입니다.

라합이 믿음을 가진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의 큰 의미를 갖습니다. 그는 자신의 민족을 배반해야 했고, 더불어 그들의 멸망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행동은 목숨을 건 행동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이미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는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는 하나님을 보았으며 그 앞에 자신의 인생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라합이 주고 있는 복음의 상징적인 의미는 구원이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영접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복음의 영접은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이 땅에 소망을 둔 채로 구원의 소망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라합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는 하나님을 영접하는데는 그가 살고 잇는 죄악의 성 여리고를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창녀로서 육신적인 쾌락과 즐거움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이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그는 앞으로의 삶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지만 죄악된 땅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장차 멸망할 이 땅에 대한 소망을 뒤로하고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인해 우리는 이 땅에서 육신적으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다가올 세상(천국)에서 주인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땅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준비하며 매일의 삶을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생활권이 하늘이기 때문이라. 우리가 또한 거기로부터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사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신의 영광스런 몸과 같게 하시리라."(빌 3;20,21) "

라합과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한 줄 알고 미래를 준비해 가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자기의 믿음을 입증하는 라합

"믿음으로 창녀 라합은 정탐꾼들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믿지 아니한 자들과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히 11:31)

"또 이와같이 창녀 라합이 사자들을 맞이하고 다른 길로 보냈을 때에 행위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냐?"(약 2:25)

라합은 두 정탐꾼을 영접하고 보호함으로서 자기의 믿음을 입증하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그에 따르는 행동을 요구합니다. 믿음에 따르는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은 이미 죽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약 2:26). 라합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고백하는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두 정탐꾼이 안전하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길을 보호하고 안내합니다. 그는 이미 몸은 여리고에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편이 되어 행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들의 소속은 분명히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땅 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라합의 모습을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제시해 줍니다. 그리스도인이 비록 죄악으로 물든 여리고와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편이 되어 천국을 확장시켜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여전히 땅의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의 구원은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초대 교회 가운데에도 그들의 구원을 헛되이 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대표적인 교회가 갈라디아 교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돌아간 대표적인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가운데서 너희 눈앞에 분명하게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어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고자 하노니 너희가 율법의 행위로 성령을 받았느냐, 믿음에 관하여 들음으로 받았느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 안에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완전해지고자 하느냐?"(갈 3:1-3)

갈라디아 성도들은 복음을 받고 성령 안에서 시작된 교회였지만 결국 과거부터 지켜 왔던 육신적 관행이었던 율법을 버리지 못하고 지킴으로서 스스로 어리석은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을 행함은 이 땅에 도덕과 선행으로 공로를 쌓아 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든 행동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왕국을 이 땅에 세워 가는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의로운 행위는 결코 세상의 일 즉 율법적 행위를 통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들을 믿고 행하였을 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줄 알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것은 우리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자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육체는 하나도 없느니라."(갈 2:16)

이상에서 우리는 자기의 믿음을 확증하는 라합을 통해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구원받은 자는 멸망 받을 세상(여리고)을 더 이상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것과 믿음이 있는 자는 반드시 그의 행함을 통해 그의 믿음을 확증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세상에서 보다 분명한 자세로 믿음의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붉은 줄을 창문에 매는 라합

"이에 라합이 이르되, 너희의 말대로 되리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떠나가게 하고 주홍색 줄을 창에 매어 두니라."(21)

우리는 라합을 통해 기적적인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여리고가 완전히 무너지는 상황에서 그의 가족들만 살아났다는 사실입니다(수 6:22-25). 라합과 그의 가족을 살려낼 수 있었던 것은 붉은 줄이었습니다. 붉은 줄은 라합에게 있어서 믿음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붉은 줄 자체가 힘이 있어 그를 감싸고 돌보아 주었던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이 여리고에서의 멸망을 피해 살아날 수 있게 하였던 것입니다. 라합은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또하나의 지혜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믿음의 흔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체험이 없는 신앙은 언제든지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결코 지식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으로 느끼고 삶속에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결코 쉬운 일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일은 거리끼는 일이요 미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아직도 표적과 육신적인 지혜를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추구하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기 때문이라. 그분은 유대인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고전 1:22-24)

라합에게 있어서 붉은 줄이 상징적인 것이지 그 자체가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의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라합이 창문에 매어 놓은 붉은 줄이 믿음의 흔적으로서, 그 믿음이 그를 멸망에서 구원해 낼 수 있었듯이, 예수님은 우리의 양심이라는 창에 흔적으로 계셔서 장차 멸망할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건져 주실 것입니다. 라합이 멸망 중에도 붉은 줄을 보면서 그의 구원을 확신하고 있었듯이, 우리 또한 환난과 고통의 순간 속에서도 언제나 구원해 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봄으로서 건져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의 마음에 흔적을 남기고 멸망당할 세상에서 구원 얻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라합은 그저 운 좋게 구원받은 이방 여인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었고, 자기의 믿음을 확증시켜 보여 주었으며 약속된 말씀을 믿음으로 여리고의 멸망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하나님의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고, 그 믿음을 삶속에서 나타내며, 예수 그리스도로 흔적 삼고 멸망 받을 세상으로부터 구원 얻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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