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의 자손들[3] (창4:25-26)

조회 수 1837 추천 수 0 2010.06.06 21:59:56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를 알매 그녀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녀가 이르기를,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 하나님께서 내게 다른 씨를 정해 주셨다, 하였기 때문이더라. 셋에게도 아들이 태어나매 셋이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더라.(창4:25-26)

 

우리는 앞서 셋의 자손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됨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결코 단순한 자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결코 소홀히 대해질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족보에 거론이 된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약속되어진 분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증거 해 주는 중요한 인물들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제 뒷부분에 이르러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이 등장을 하게 됩니다. 과연 주님은 그들을 통해서 어떠한 분임을 보여주고 계실까요?

 

에녹을 통해 보는 그리스도

 

에녹이라는 이름의 뜻은 "바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죄 가운데 사는 자들을 위하여 바쳐질 것에 대한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온전히 헌물이 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죄를 위해 드려졌던 짐승들을 대신하여 드려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에녹이라는 이름을 통하여 믿음의 조상들이 가지고 있던 믿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짐승을 대신하여 희생 헌물이 되시지 않는다면 사망을 면할 가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고, 또한 그분께서 그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것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에녹이라는 이름은 바로 이러한 믿음에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걷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므로 그가 더 이상 있지 아니하더라.(창5:24).

 

우리가 에녹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은 바로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이러한 삶의 모습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들을 잘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머무시는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 말들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것들을 마음속에 두며 이르되, 앞으로 이 아이가 어떤 아이가 될까! 하더라. 주의 손이 그와 함께하더라.(눅1:66)

 

나를 보내신 분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도다. 내가 항상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그것들을 행하므로 그분께서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9)

 

그분은 하나님과 한 시라도 떨어지지 않는 삶을 사셨습니다. 에녹이 그의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듯이 예수님께서도 동행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동행하는 삶을 사실 수 있었던 원인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실까요? 그것은 바로 "항상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동행하실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비결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도와 헌신 , 봉사, 물질 등으로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주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비결을 찾아낸다면 잃은 양의 모습을 통하여 기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그가 아흔아홉 마리를 남겨두고 산으로 들어가 길 잃은 그 양을 찾지 아니하겠느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만일 그것을 찾으면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양으로 인하여 더 기뻐하리라.(마18:12,13)

 

우리가 세상에서 잃어진 혼을 찾아 주님의 품에 안겨드리게 된다면 주님은 그 일로 인하여 매우 기뻐하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언제나 동행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주님을 통하여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에녹의 삶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욱 행복한 삶을 누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에녹이 보여주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내용은 그가 죽음을 보지 않고 들림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옮겨졌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찾지 못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라는 증언을 가졌느니라.(히11:5)

 

그는 분명히 예수님의 속성을 지닌 분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것은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부분입니다. 그는 죽음을 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곧 산 채로 들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거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주님께서 산 채로 들림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에녹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반드시 부활해서 산 채로 들림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말씀하신 뒤에 그분께서 그들이 보는 동안 들려 올라가시니 그름이 그분을 받아들여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더라.(행1:9)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들려올라 가셨습니다. 그것은 이미 에녹을 통하여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벽하게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결코 빈틈이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이일은 장차 그리스도인 된 우리에게도 있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부활과 같이 우리도 부활의 영광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장차 썩어질 이 추악한 육신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절망스러운 것입니까?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영화롭게 할 것이며, 또한 영광의 날들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보다 큰 소망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므두셀라를 통해 보는 그리스도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은 "창던지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성경에서 가장 장수한 자라는 점을 들어서 매우 좋은 의미의 이름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를 통하여 심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판하시는 예수님이라뇨? 어떻게 사랑이 많으신 주님께서 심판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러한 속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점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나는 회개에 이르도록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능력이 더 있으시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나를 자격도 없노라.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시고 불로 침례를 주시리니 곧 손에 키를 들고 자신의 타작마당을 철저히 정결케 하사 자신의 알곡을 모아 곳간에 들이시되 껍질은 꺼지지 아니하는 불로 태우시리라.(마3:11,12)

 

장차 다가올 주님의 왕국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보상의 자리가 되지만 불신자들에게는 심판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미뤄지는 법이 없습니다. 어떤 종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일단 대기하는 장소에 있게 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을 그들은 연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대기 장소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는 결코 동정이나 양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선한 행위를 하면 반드시 천국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명예와 권세를 가진 자들에게조차도 그러한 생각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국에 이르는 조건은 결코 세상에서의 선한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느냐? 아니면 죄인의 상태로 남아 있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가 아무리 선하게 살았다 할지라도 여전히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면 그의 행위는 불로 태움을 받아서 결국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죄 가운데 있는 자들은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라멕을 통해 보는 그리스도

 

라멕이라는 이름의 뜻은 "능력 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곧 주님께서 결국 승리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노아의 아버지이기도 한데 그는 아들을 낳고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라멕은 백팔십이 년을 살며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노아라 부르며 이르되, 주께서 저주하신 땅으로 인해 우리가 행하는 일과 우리 손의 수고에 대하여 바로 이 아들이 우리를 위로하리라, 하였더라.(창5:28,29)

 

결국 노아 시대에 홍수가 있음으로서 라멕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그의 이름이 말하고 있듯이 주님은 능력이 있는 분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살고 있었던 시기는 그야말로 타락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던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다음 세대였던 노아의 시대에 완전히 멸망을 당했을 정도로 죄악이 관영했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반드시 주님께서 승리하실 것을 믿었던 자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승리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탄의 권세 아래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까닭에 우리는 수고를 해야 하고, 때로는 곤경가운데 처하기도 하며, 심지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지금도 핍박가운데서 그들의 목숨이 위협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힘든 삶에도 불구하고 견딜 수 있는 것은 바로 주님께서는 결국 승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님은 이 세상의 권세를 몰아내고 통치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왕국이 세워지게 된다면 우리 가운데 충성스러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왕관이 주어지게 될 것이며, 그들은 주님의 왕국에서 통치하는 권세를 얻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이러한 소망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매우 절망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결코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소망스럽게 하는 것은 주님께서는 우리가 장차 다가올 세상에서의 소망을 바라고 헌신적인 생애를 살게 된다면 현 세대에서도 그만한 보상을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왕국을 위하여 집이나 부모나 형제나 아내나 자녀를 버린 자로서 이 현 시대에서 여러 배를 받지 못할 자가 없고 또 오는 세상에서 영존하는 생명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누18:29,30)

 

주님은 막연하게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생애를 사는 동안 그에 못지않은 보상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기뻐해야 할 일들은 이 세상에서 받는 보상이 아니라 장차 주님의 왕국에서 받게 될 보상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며, 우리는 그분과 더불어 왕국을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장차 다가 올 왕국을 생각하십시오. 우리의 생애는 더욱 소망스러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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