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라멕(창세기4:23,24)

조회 수 1929 추천 수 0 2010.06.06 21:54:20

라멕이 자기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실라여, 내 음성을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너희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내가 내게 상처를 입힌 남자를 죽였고 나를 다치게 한 청년을 죽였느니라. 가인을 해치는 자가 일곱 배로 보복을 받을진대 참으로 라멕을 해치는 자는 일흔일곱 배로 받으리라, 하더라(창4:23,24)

 

우리는 가인과 아벨을 비교하며 많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 종교의 형태가 어떻게 형성되어 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통하여 과연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또한 그 분을 통하지 않고는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은 그들의 행동이 낳은 결과들입니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거나 죄로 인하여 방황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의 결과는 실로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뿐만 아니라 가인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욱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땅을 가는 자 가인

 

가인은 땅을 가는 자더라.(창4:2b)

 

가인과 아벨을 비교하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소개하고 있는 것은 그가 "땅을 가는 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진정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성실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에 그들은 땀을 흘리며 농사를 지어야 먹고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의 생활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농사가 그다지 체질적으로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아벨 역시 양을 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인은 실제로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도 그리 틀리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인은 인간적으로 매우 괜찮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브는 가인을 낳고 "내가 주께로부터 아들을 낳았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는 집 안에 있어서 매우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족의 희망이었으며, 충분히 사랑 받을 만한 자격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그가 "땅을 가는 자"라고 소개를 받은 바와 같이 땅의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땅의 열매로 헌물을 드린 가인

 

시간이 흐른 뒤에 가인은 땅의 열매 중에서 헌물을 가져와 주께 드렸고(창4:3)

 

그가 헌물을 드리는 데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오직 땅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열중했던 가인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헌물은 땅의 열매들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그는 모든 정성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가 매우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아마도 모든 가족들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많은 헌물을 준비해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드렸을 것입니다. 그는 이 헌물을 드리고는 매우 흡족했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칭찬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반응은 매우 냉담했습니다. 그의 헌물을 받으시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물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과연 무엇이 부족하단 말입니까? 내가 드린 이 헌물이 정성이 부족합니까? 아니면 양이 부족합니까?" 그러나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매우 냉담합니다. 그가 아무리 정성을 다해 드린 예물일지라도 받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은 아예 그의 헌물에는 관심을 갖지도 않으셨습니다.

 

가인과 그의 헌물에는 관심을 갖지 아니하셨으므로 가인이 몹시 분을 내고 그의 얼굴빛이 변하니라.(창4:5)

 

오히려 하나님의 반응은 어째서 분을 내며, 얼굴빛이 변하느냐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는 오히려 "네가 잘하면 어찌 받지 아니하겠느냐?" 면서 오히려 "죄의 욕망이 네게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정성을 다한 헌물에 대하여 오히려 죄의 욕망으로 인한 행동으로 간주하며 죄를 다스리게 될 것을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행동에 대하여 매우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째서 그의 정성을 다한 헌물이 죄가 되며, 또한 앞으로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는가를 생각하면 이일이 결코 가인 한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하나님을 향하여 그들 자신의 노력과 정성으로 구원에 이르겠다는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는 많은 종교들이 존재합니다. 그들 종교의 특징들은 그들 자신의 정성과 노력으로 구원에 이르겠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수도생활을 통해서, 유교에서는 효를 통해서, 그리고 가톨릭에서는 믿음과 선한 행위를 통해서 그들의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무속신앙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구원이 선한 행실에서부터 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들 종교가 주장하는 대로 "세상은 선한 행위들로 인하여 깨끗하고 건전한 사회를 이루어 가고 있으며, 또한 그들을 구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결코 선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의 대부분은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삶 속에서 선한 행실을 통하여 자신의 생활을 풍성하게 하고, 구원에 이르겠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인을 향해 말씀하셨듯이 오히려 죄만 더해갈 뿐입니다. 지금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이 종교를 통하여 선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할수록 더욱 추하고 더러운 모습을 더해만 갈 것입니다.

 

거짓을 말하는 가인

 

주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니이까? 하매 그분께서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동생의 피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부르짖느니라.(창4:9,10)

 

거짓말의 기원은 뱀으로 가장한 사탄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가인에게 전가된 것입니다. 그가 아벨을 죽이고, 그의 죄성이 드러내면서 하나님 앞에 보였던 첫 번째 모습은 바로 거짓말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죄인인 인간의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거짓말로 자신의 죄를 감추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는 반드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성경은 명백하게 모든 사람이 범죄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한 사람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교황도, 신부도, 목사도, 심지어 마리아조차도 이 대상에서 결코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명백하게도 그들은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우리가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며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8)

 

가인은 죄인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람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고도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감추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문은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던져진 질문이었습니다. 결국 가인은 이 일로 인하여 땅에서 저주를 받고, 이후로는 땅을 갈아도 그 효력을 나타내지 않게 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통보 받음으로서 더욱 힘겨운 생애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또한 그는 죄로 인하여 방랑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죄에 대한 결과는 그야말로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가인의 죄에 있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거짓말이 더욱 큰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였다면 상황은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언제나 너그러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약속이기도 한 것입니다.

 

내가 곧 문이니 누구든지 나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 들어가고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9)

 

주님은 "누구든지"라는 말씀을 통하여 죄를 용서받는 대상이 결코 제한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 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사해 주셨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용서를 받으며, 심지어 구원에 이르고 풍성한 생애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가인도 이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가 만일 죄를 깨닫고 아벨과 같이 장차 자신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용서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과 대화를 계속했다면 참담한 결과는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거짓을 말함으로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가인의 간청

 

가인이 주께 아뢰되, 내 형벌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크니이다. 보소서, 주께서 이 날 지면에서부터 나를 쫓아내셨사온즉 내가 주의 얼굴을 떠나 숨으리이다. 내가 땅에서 도망하는 자가 되고 방랑하는 자가 되리니 나를 찾는 모든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하매(창4:13,14)

 

가인이 자신의 거짓이 들통 난 후에 하나님께 간청했던 것은 겨우 자신의 목숨만큼은 살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 들이셔서 "가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배로 보복을 받으리라"는 말씀과 더불어 표를 주심으로서 아무도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과 대면했다는 분명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구원을 받았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잠시 동안 세상에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는 있었지만 결국 영원한 멸망을 피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가인의 가장 큰 실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어떠한 기도라도 들어주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이 드렸던 기도는 세상에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러한 기도를 드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많은 기도를 합니다. 또한 그 기도에 대하여 응답을 받는 일도 허다하게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들 가운데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을 얻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땅의 일들을 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기도 합니다. 그리고 풍성한 삶을 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들은 장차 영원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의 구원과 보상에 관심을 가지시는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가인의 후손 라멕

 

가인을 헤치는 자가 일곱 배로 보복을 받을진대 참으로 라멕을 헤치는 자는 일흔일곱 배로 받으리라, 하더라.(창4:24)

 

가인은 이미 그의 죄의 욕망으로 인하여 죄를 다스리게 될 것에 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었습니다(7). 라멕은 그의 죄에 대한 결과가 어떻게 드러나는 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두 명의 아내를 둠으로서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일부일처의 원리를 깨고 두 명의 아내를 거느렸던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감정에 따라 사람을 죽이고도 오히려 아내들에게 자랑을 했던 자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인을 헤치는 자는 일곱 배로 보복을 받을 것이지만 자신을 헤치는 자는 일흔일곱 배로 보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고 있는 내용은 전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며, 자신의 생각에 의해서 전해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라멕에 관하여는 뒤에 자세하게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우리가 주의해서 봐야 하는 것은 결국 가인이 자신의 때에서 끝날 것 같았던 죄의 모습들이 후대에 이르면서 더욱 포악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변명을 하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이 유리한 방향에 끼워 맞추는 행위들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도 없이 하나님의 약속인 것처럼 사람들을 향해 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가인은 이들에 의해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가인과 라멕을 통하여 결국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야 하는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결코 자신의 의지나 행위에 의해 오지 않습니다. 오직 유일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또한 죄의 결과들은 반드시 그의 후손들에게까지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할 것입니다. 한 가지 더 강조해 두고 싶은 것은 우리의 구원이 행위에 있지 않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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