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야곱(창31:1-55)

조회 수 3407 추천 수 0 2010.06.06 22:43:54

이에 야곱이 일어나 자기 아들들과 아내들을 낙타 위에 태우고 자기가 얻은 모든 가축과 모든 재물 곧 자기가 밧단아람에서 얻은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가고자 하였더라. 라반이 자기 양들의 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자기 아버지의 소유인 형상들을 훔치고 야곱은 자기가 도주하는 것을 시리아 사람 라반에게 알리지 아니하고 몰래 떠났더라. 이와 같이 야곱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가지고 도망하였으며 그가 일어나서 강을 건너고 길르앗 산을 향해 얼굴을 고정하니라. 셋째 날 야곱이 도망했다는 소식이 라반에게 들리매 라반이 자기 형제들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라 이레 길을 가서 그들이 길르앗 산에서 그를 따라잡았더니 밤에 하나님께서 꿈에 시리아 사람 라반에게 오사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조심하여 야곱에게 좋다 나쁘다 하지 말라, 하시니라.(17-24)

 

이제 야곱은 그가 인생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라반의 집을 떠납니다. 그가 떠나야만 했던 이유는 그곳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야곱은 평생을 나그네와 같이 살았습니다. 그 까닭에 그가 머물 수 있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는 전 생애에 걸쳐서 라반의 집만큼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 주는 곳도 없었을 것입니다. 후에 아들 요셉에 의해 이집트 땅으로 내려갔지만 그가 죽기 전에 자신을 고향에 묻어달라고 유언한 것을 보면 그가 그곳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있지 못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라반의 집은 그가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피신한 곳이며,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았고, 또한 아무 것도 없었던 그가 재산을 가질 수도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또 다시 약속의 땅을 향하여 새로운 출발을 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야곱이 부모의 품을 떠난 이후로 나그네의 생활을 해야만 했듯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이후로부터 세상에서 나그네가 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우리의 삶을 안정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환경도 주어질 것입니다. 때로는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나그네 일 수밖에 없으며, 언젠가 이 땅을 떠나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미련을 버림에 있어서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야곱을 통해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전과 같지 아니하니라

 

야곱이 라반의 얼굴빛을 본즉, 보라, 그것이 자기를 향해 전과 같지 아니하니라.(2)

 

지금까지 라반은 야곱에게 있어서 매우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그의 곁을 떠난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그의 행동을 변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품삯을 열 번이나 바꿀 정도로 야곱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으며, 야곱이 떠나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 처음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야곱을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단(異端)"이라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끝이 다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라반은 이단의 전형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자신들이 성경적인 교회라고 주장을 하며, 매우 성도들을 위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 많은 교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때로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기도 하며, 보통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지식들을 공개하여 말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그들 가운데 얼마는 오직 자신들만이 이 시대에 가장 건전하고 올바른 교회라고 말을 하기도 하며, 깊은 교제들을 통하여 자신들만이 이러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들의 교회가 많은 문제를 낳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성도들을 이용하고, 성도들을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많은 장치를 해두며, 심지어 조직적으로 사람들을 관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처음 기록된 대로 보존되어 오듯이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가 참 진리입니다. 만일 처음과 끝이 다르게 나타난다면 그것은 바로 이단입니다.

 

사탄의 속임수도 이와 같습니다. 아담과 이브를 곤경에 빠뜨린 사탄과 뱀이 어떻습니까? 그들이 아담과 이브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대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처음에 사탄은 뱀을 통하여 매우 다정하게 접근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아담과 이브가 무너지는 순간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여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그의 음모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오늘날에게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유혹은 얼마나 달콤합니까? 그러나 그것은 결국 그리스도인들을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교묘한 술책입니다. 제 아무리 달콤한 유혹이 있더라도 그것이 주님 앞에 합당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성경에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만일 이에서 벗어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사탄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장차 적그리스도가 마치 만화에 나오는 괴물처럼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는 대단한 권능으로 사람들을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적그리스도가 사람들이 매우 흠모할만한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매우 친절하고, 객관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어 줄 것이고,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을 영원한 지옥으로 데려갈 인도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속성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보다 냉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곧 우리 손에 들려있는 성경에 모든 기준을 두고 이에서 어긋난 것이 없는지를 살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 일에 실패하게 된다면 우리는 나중에 큰 낭패를 당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속성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는 결코 거짓말을 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기억하십니까? 그들은 분명히 초대교회를 형성함에 있어서 중요한 사람들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었습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았느냐? 받지 못했느냐? 하는 것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주님과 교회 앞에서 옳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명예롭지 못하게 죽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성령님께 거짓말을 한 것 때문이었습니다(행5:3). 그것은 교회를 형성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셨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증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한 번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결코 거짓말을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거짓의 아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거짓을 말하는 것에 대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면 그는 과연 누구의 말에 순종하고 있는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진리 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비록 어려움이 있더라도 주님과의 약속에 대하여 반드시 이행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리는 하나님의 뜻

 

우리는 이미 앞서 야곱이 라반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속임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될 것입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정체를 충분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야곱이 이러한 속임수를 면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분리"라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그가 인간적인 정을 앞세워 그곳을 떠나는 일을 행동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영원히 종의 신세를 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바르게 분리되는 일부터 되어야만 합니다. 여전히 그를 세상의 종의 상태로부터 떠나보내지 않으려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잘라내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여전히 종노릇을 하려고 한다면 그는 영원히 그곳으로부터 나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어지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전혀 생활의 변화가 없는 사람들이 있음을 봅니다. 그들이 변화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분리의 작업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술을 마시던 자가 술을 끊지 못할 때, 그의 실수는 계속될 것입니다. 언제나 성적 욕구로 가득 찼던 자가 그것으로부터 분리되지 못한다면 그는 여전히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생활을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어야만 합니다.

 

야곱이 라반으로부터 분리해야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족장이 되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순간부터 그에게 부여된 특별한 임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라반의 집에 머물러 있게 된다면 그는 영원히 족장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종의 신세로 평생을 살아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가 라반의 집을 나가는 것은 족장이 되기 위한 당연한 과제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풍성히 누릴 수 있는 기회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보다 가깝게 교제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사탄과의 관계를 확실하게 단절시키지 않고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면 그것은 피차 매우 당황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모든 죄와의 단절을 선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죄와의 싸움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주님만을 바라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자리에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수많은 어려움과 환난 속에서도 이 싸움은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이 싸움을 포기한다면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더욱 큰 보상을 포기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귀한 것들입니다. 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죄와의 분명한 분리를 통하여 칭찬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지키심

 

밤에 하나님께서 꿈에 시리아 사람 라반에게 오사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조심하여 야곱에게 좋다 나쁘다 하지 말라, 하시니라.(24)

 

야곱이 라반의 집을 떠났을 때 라반은 너무도 화가 났습니다. 실제로 야곱은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집에서 종노릇을 하며 살아왔지만 막상 그의 곁을 떠나자 그는 야곱을 죽일 태세로 달려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이치와도 같은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종노릇을 하도록 요구하고 또한 그렇게 살도록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독립적인 삶을 살겠다고 선언하자 마치 죽일 듯이 달려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라반의 모습을 통해서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반을 만나고 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라반이 야곱에게 "선이든 악이든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결국 라반은 야곱을 따라잡고 그를 만났으나 그에게 해가 될 만한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행동을 보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 안에서 우리는 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주님의 은혜를 입은 이후에 어려운 상황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안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많은 공을 세우고 훌륭한 덕을 갖춘 자로서 백성들의 사랑을 입은 자였지만 사울에 의해서 끊임없이 죽음의 위협 속에 살아야만 했습니다. 누가 그를 돌보고 계셨습니까?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보호 속에 피난처를 찾아다녔고, 결국에는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어떻습니까? 그가 80이라는 나이에 부르심을 입고 이집트의 궁궐로 들어갔을 때 아무도 그의 목숨이 온전하리라고 생각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광야에 이를 때까지 그를 안전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어디 그 뿐이니까? 아합 왕의 끊임없는 추격 속에서도 목숨을 부지했던 엘리야...초대교회에서 수없이 많은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면서도 안전하게 인도를 받았던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그리고 성도들...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계속해서 하고 계신 일들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자의 편이 되어 활동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척박한 곳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을 보내시면서 "어린양들을 이리들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눅10:3)고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주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어린 아이가 마음껏 뛰놀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자동차, 그리고 흉악한 범죄자, 복잡한 길...이 모든 것들이 어린 아이들이 놀기에는 부적합한 것이라 할지라도 아이가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곁에 부모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더불어 살지 못한다면 결코 세상은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은 우리를 상처투성이의 인생으로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과 더불어 산다면 걱정한 필요는 없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편이 되어주신 것은 주님의 뜻을 이루고자 그의 길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분의 말씀을 의지해서 걸어간다면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편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주님과 더불어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세상은 우리에 대하여 언제나 속이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우리의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이 아무리 달콤한 유혹을 해와도 넘어가지 마십시오. 세상과의 분명한 분리를 통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성도가 될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겠지만 주님은 반드시 우리의 편이 되어주셔서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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