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가 성공할 수 있는가?(창41:39-43)

조회 수 3599 추천 수 0 2010.06.06 22:50:30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여 주셨으니 너와 같이 사려 깊고 지혜로운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릴지니라. 내 모든 백성이 네 말에 따라 치리를 받으리니 나는 왕좌에서만 너보다 높으리라, 하고 파라오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자, 내가 너를 세워 온 이집트 땅을 다스리게 하노라, 하며 자기 손에서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워 주고 그에게 고운 아마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 자기가 소유한 둘째 병거에 그를 타게 하매 그들이 그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무릎을 꿇고 절하라, 하더라. 파라오가 요셉을 온 이집트 땅을 다스릴 치리자로 삼았더라.(창41:39-43)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하여 "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의 많은 사람들은 성경 안에서 성공의 비결을 찾고자 합니다.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하며,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가르치거나 혹은 스스로 확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성공적인 삶을 추구하다가 실족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아직도 교회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성공에 목말라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공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부터 바꾸지 않는다면 결코 자신이 원하는 성공적인 삶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공은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으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믿어 부자가 된 자입니까? 아니면 명예나 권세를 얻은 자입니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기준에 그리스도인의 성공적인 삶의 기준에 대하여 말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공과는 거리가 먼 것들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부자가 될 수도, 명예나 숸세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그들을 성공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성공적인 삶의 여부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결정되어질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국 주님 앞에서 모든 것들을 드러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가장 성공적으로 살았던 한 사람! 요셉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분명히 성공한 자였습니다. 그는 물질도 얻을 수 있었고, 명예와 권세도 가졌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놀라운 믿음의 삶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처음부터 그만한 인격과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분명히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은 그 문제들을 바로잡아 가셨습니다. 요셉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만 주님의 인도를 받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가 이집트의 치리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세 번에 걸쳐서 옷을 갈아입음으로서 왕이 주는 옷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말하는 옷은 그의 신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게 될 때에 어떠한 모습으로 서게 될 것인가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떠한 옷을 입고 있는지 살펴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채색 옷을 벗으라

 

요셉이 자기 형들에게 이르매 그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 옷을 벗기고 그를 붙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이 구덩이는 비어 있고 속에 물이 없더라.(창37:23-24)

 

야곱은 요셉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사랑했던 라헬의 아들이기도 했으며, 또한 그가 이미 세상에 없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분명하게 그가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37:3). 이유야 어찌되었든 분명한 사실은 요셉의 모든 형들이 시기할 만큼 요셉에게 특별한 애정을 베풀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이러한 애정에 대한 상징으로 그에게 채색 옷을 입혔습니다. 그것은 어린 요셉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의 나이 17세가 되었습니다(37:2). 더 이상 그는 어린 아이라고 할 수 없는 나이가 된 것입니다. 이제 그는 어른이 될 준비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채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아버지의 편애로부터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요셉을 어린 아이로만 생각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요셉도 자신이 아직도 아버지의 품 안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꿈을 통해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이미 말씀해 주셨고, 또한 그 일을 이루셔야만 하셨습니다. 이제 그 때가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더욱 큰 꿈을 이루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의 가족들을 떠나도록 하는 계획을 세우십니다. 그리고 형들에 의하여 채색 옷이 벗겨집니다. 그의 옷이 벗겨진 것은 단순히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더 이상 어린아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의 옷이 형들에 의해 벗겨지는 순간 그는 구덩이에 던져졌고, 이제는 더 이상 사랑 받는 아들도, 어리광부리는 동생도 아닌 오직 홀로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고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그는 아무도 의지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의 유일한 위로자가 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음식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지금까지 너희가 그것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못하기 때문이라.(고전3:2)

 

젖을 사용하는 자마다 갓난아이이므로 의의 말씀에 능숙하지 못하니라.(히5:13)

 

어린 아이의 믿음에 머물러 있는 자는 결코 주님의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만일 주님의 일군이 되고자 한다면 그는 반드시 성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모습들을 들여다보십시오. 그들은 열심히 구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어떠한 방법이라도 망설이지 않고 행동합니다. 그들이 행동은 마치 어린 아이가 말 잘 들으면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는 엄마의 말에 순진하게 반응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물론 그는 교회 안에서 안전하게 믿음의 삶을 계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더욱 성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를 더욱 복된 삶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누구를 의지한단 말입니까?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군가의 믿음에 의존하고, 주님과 직접 대화하는 것을 기피하고, 또한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일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게 된다면 그는 놀라운 복을 경험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시간들을 혼란 속에서 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보낸 이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우리가 이제부터 더 이상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들의 속임수와 몰래 숨어서 속이려 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간교한 술수로 말미암아 온갖 교리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밀려다니지 아니하고(엡4:14)

 

어린 아이의 상태에서는 속이고자 하는 자들에 의해서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채색 옷을 벗어 던져야만 합니다. 그것이 때로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주변의 환경에 의해서 벗겨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과 같이 강제로 벗겨지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것을 주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주님의 인도를 따라 살게 된다면 그는 복된 인생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의존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십시오. 그것은 반드시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종의 옷을 벗으라

 

이제 요셉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앞에는 많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채색 옷이 벗겨진 자리에는 종의 옷으로 입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그곳에서 평생을 보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가 종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함께 눕자, 하니 그가 자기 옷을 그녀의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가매(창39:12)

 

보디발의 집은 요셉에게 있어서 안정된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집이었습니다. 더욱이 그의 주인은 잡을 자주 비움으로 그의 역할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는 곧 그의 존재가 매우 귀하게 여겨질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언제나 범죄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종의 옷을 입고 있는 한 그는 이 유혹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종의 옷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인생의 항해를 계속하게 됩니다.

 

이제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가 너희에게 명령하노니 너희는 질서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들에게서 떠나라.(살후3:6)

 

또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가 없어 이득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뚤어진 언쟁이 생기나니 너는 그러한 자들로부터 떠나라.(딤전6:5)

 

아무리 우리의 인생에 유익이 되고, 행복을 보장해 준다고 할지라도 그곳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면 당연히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보디발의 아내와 관계를 가졌다 할지라도 아무런 문제를 만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의 위치는 더욱 안전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요셉을 지켜줄 수도 있었기 때문이죠...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범죄가 보디발에게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범죄 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39:9). 결국 요셉은 종의 옷을 벗어 던졌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범죄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면 그곳에서 벗어나십시오. 그것은 우리를 더욱 복된 길로 인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과 적당한 타협을 하고 그 속에서 안주하려 한다면 그는 세상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종노릇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곳을 벗어나는 것이 우리를 더욱 복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죄수의 옷을 벗으라

 

종의 옷을 벗어 던진 요셉에게 주어진 것은 죄수의 옷이었습니다. 그는 아무런 잘 못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죄수의 몸이 되어 감옥에 수감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도 요셉은 분명히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그곳에서도 요셉은 감옥에 있는 모든 죄수들을 맡아서 관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그 모든 과정에 주님께서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감옥의 간수는 그의 손에 무엇을 맡겼든지 그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주께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이라. 주께서 그가 행한 일을 형통하게 하셨더라.(창39:23)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옥 역시 그가 머물러 있어야 하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아무리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도 그곳은 감옥입니다. 있기에 편할 리가 없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나가는 날만을 고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입은 죄수복은 그가 놀라운 복을 얻게 되는 과정의 마지막 입은 옷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이 옷을 벗어던지게 됩니다.

 

이에 파라오가 사람을 보내 요셉을 부르니 그들이 급히 그를 지하 감옥에서 데려오매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고 파라오에게 들어오니라.(창41:14)

 

감옥이 어떤 곳입니까? 그곳은 모든 죄인들을 가두어 두는 곳입니다. 지금 요셉은 분명히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의인이었지만 죄인들과 함께 머물러 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죄에 관하여 배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적당한 타협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간수들이 인정할 만큼 의로운 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는 죄인들과 같이 있었고, 죄인 취급을 받은 자였지만 죄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죄수복은 그에게 일시적으로 주어진 것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죄를 범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죄를 짓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이것이니 곧 그분께서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려는 것이라.(요일3:8)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함을 우리가 아노니 오직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자신을 지키매 저 사악한 자가 그를 건드리지 못하느니라.(요일5:18)

 

누구든지 죄를 지으며 그리스도의 교리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이 없으며 그리스도의 교리 안에 거하는 자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느니라.(요이1:9)

 

만일 우리가 여전히 죄수복을 입고 있다면 주님은 그에게 복된 길을 제시해 주실 수 없습니다. 그가 겉으로는 육신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그 내면은 하나님을 믿는 그분의 자녀로서 의인된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그를 높여 위대한 하나님의 일군으로 쓰실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주님의 왕국에서 왕으로 세워 통치하게 하실 것입니다. 죄수복을 벗어 던지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옷으로 갈아입으십시오.

 

의의 옷을 입으라

 

요셉은 죄수복을 벗어 던지고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그 과정이 쉬웠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30세의 젊은 나이에 왕 앞에 서게 되었고, 꿈을 해석하며, 방법을 제시함으로서 왕의 총애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고운 아마포 옷이었습니다. 그것은 왕으로부터 주어진 특별한 옷이었습니다.

 

자기 손에서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워 주고 그에게 고운 아마 옷을 입히고 그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창41:42)

 

그가 이 옷을 입음과 더불어 그는 부와 명예, 권세까지도 얻게 되었으며, 그의 민족들을 가난과 곤경으로부터 구해내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아마포 옷을 입는 과정에서 필요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꿈을 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환경에서 최선을 다함으로서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을 했던 것입니다. 그는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알았고, 결국에는 완벽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가 아마포 옷을 입을 수 있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그녀가 깨끗하고 희고 고운 아마포 옷을 차려입도록 허락하셨으니 그 고운 아마포는 성도들의 의니라, 하더니(계19:8)

 

하늘에 있던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그분을 따르더라.(계19:14)

 

사도 요한은 장차 그리스도인들이 입게 될 아마포 옷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믿는 성도들에게 주실 것들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지금까지 입고 있었던 모든 옷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의의 옷으로 갈아입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의인의 신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옷들을 입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요셉이 입었던 채색 옷, 종의 옷, 그리고 죄수의 옷....그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들이 입고 있는 옷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차 우리는 그 모든 옷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의의 옷으로 입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치리자로 삼으실 것이며, 또한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어떤 자가 성공한 자입니까? 세상에서 부자로 사는 것입니까? 명예나 권세를 얻은 것입니까? 모두 정답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불타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성공한 자는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칭찬 받는 성도들입니다. 그 때에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의의 옷과 더불어 왕관(면류관)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성공의 비결도 여기에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고후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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