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파생지 바벨론(창11:1-9)

조회 수 1678 추천 수 0 2010.06.06 22:05:1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그들이 동쪽에서부터 이동하다가 사날 땅에 있는 평야를 만나 거기 거하니라.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는 돌 대신 벽돌을 취하고 희반죽 대신 진흙을 취하며 또 이르되, 자,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도시와 탑을 세우고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까지 닿게 하며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이름을 내고 이로써 온 지면에 널리 흩어짐을 면하자, 하더니 주께서 사람들의 자녀들이 세우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시니라. 주께서 이르시되, 보라, 백성이 하나요, 또 그들이 다 한 언어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 일을 시작하였으니 이제 그들이 상상하여 하고자 하는 어떤 일도 막지 못하리라.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이처럼 주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널리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 세우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으니 이는 주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기 때문이라. 주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널리 흩으셨더라.(창11:1-9)

 

우리는 바벨탑과 관련하여 많은 자료와 설교들을 통하여 종교의 파생지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곳은 분명 오늘날의 종교와 문화를 만든 주범이며, 결국 세상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이미 앞서 니므롯과 관련하여 종교의 다양한 특성들을 보았고, 또한 바벨탑이 오늘날 모든 종교마다 가지고 있는 탑(종탑)을 세우는 일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떠한 환경에서 하나님에게 도전했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방법으로 대응하셨는가를 살펴봅니다. 이 주제를 다루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문화와 또한 많은 교회들이 그러한 환경 속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들의 환경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들의 환경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배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배도하는 자들은 있어왔습니다. 그 배도의 뒤에는 반드시 사탄의 교묘한 음모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는 매우 달콤한 것입니다. 바벨에서 있었던 사건은 그 환경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A.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하나가 된다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처럼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모든 인류가 끊임없이 추진해 왔던 일이었습니다. 세상의 전쟁도 하나가 된다는 명분아래 있어온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분명히 하나가 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매우 행복한 삶을 보장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하나가 된다는 명분아래 진행되어 온 일들이 행복을 가져다 준 예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전쟁을 촉발시켰고, 극심한 가난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공산주의는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하나 됨에 대하여 가르치는 교훈을 어떻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특히 고린도전서 12장의 내용을 통하여 교회가 한 몸에 많은 지체로 구성되어졌다고 가르치는데 이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이라고 답변해야 합니까?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지역교회(Local church)를 바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결코 답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분명히 주님이 세우신 교회, 즉 지역교회는 한 몸이 되어 움직여야만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오직 복음을 전하고 덕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그들 스스로가 구원의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교회가 그들의 구원을 안전하게 만들어 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의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할 문제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속이는 자들이 나와서 교회가 그들의 구원을 보장해 줄 것처럼 가르칩니다. 그리고 우주적인 교회(universal church)를 주장하는 자들은 세계의 모든 교회가 하나임을 가르치면서 통합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소위 에큐메니칼이라는 이름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 환경을 바벨탑을 지었던 환경으로 만들려는 사탄의 교묘한 술수입니다. 그러한 현상은 이미 드러나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교회와 종교를 연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려 하고 있습니다.

 

B.돌 대신 벽돌을 취하고 회반죽 대신 진흙을 취하며

 

우리는 성경의 많은 부분에 걸쳐서 돌과 회반죽(혹은 역청)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는 것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임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벽돌과 진흙을 통하여 하나님께 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만든 벽돌과 진흙으로 탑을 쌓았고 하나님께 도달하려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와 공로를 통하여 하나님께 도달하려 합니까? 그들은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주일 성수, 십일조, 구제, 봉사 등을 통하여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입니다. 그것만을 가지고는 결코 주님께 다가갈 수 없습니다. 우리 믿음의 행위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습니다.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모든 종교들의 특징입니다. 그것은 바벨탑에서부터 시작된 매우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지로 구원을 얻을 수도 있다고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한 구원의 도구로만 여기는 자들이기도 합니다. 우리 가운데는 그러한 자들이 없는지를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C.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그들의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실상 그들은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진정 그들 자신을 위한다면 죄 사함을 얻고 구원에 이르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육신을 위한 것들로 자신들을 위했던 것입니다. 과연 그들이 행했던 자신들을 위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1] 도시와 탑을 세우고

 

우리는 도시 문화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점을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것은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창9:1)는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입니다. 도시 문화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들의 왕을 세우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을 그들의 신으로 섬기는 어리석은 일들을 택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세우고 있는 탑은 그들의 공로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탑을 통하여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려 하였고, 결국 구원에 이르러 보겠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오늘날의 교회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바로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마치 거대한 왕국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곳의 지도자는 마치 그 왕국의 왕처럼 군림을 하고 성도들을 치리합니다. 결국 이러한 행위들은 교회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심판의 대상이 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탑의 꼭대기를 하늘까지 닿게 하며

 

탑을 세우고 있는 자들의 목표는 그 탑을 하늘에까지 닿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것은 그들의 노력과 의지로 하나님께 도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탑을 세우는 그들의 목표는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상은 인류의 역사 이래로 죄의 시작과 관련하여 끊임없이 함께해 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브가 뱀에게 유혹을 당할 때 "신들과 같이"(창3:5) 될 수 있다는 말에 현혹이 되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던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브는 신이 되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죄를 짓게 만들었고, 이후로 인류는 죄인의 후손으로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영향은 결국 바벨탑을 쌓고 있던 사람들의 정신 속에도 함께 함으로서 그들이 결국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사상들을 "뉴에이지"라고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오늘날에 생겨진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실제로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사상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의 곁에 서 있는 모든 탑의 모양들이 이러한 사상들을 기초로 해서 세워졌다는 사실도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것들은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하는 자들의 결과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이름을 내고

 

그들이 탑을 쌓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의 이름을 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업적들을 통하여 자기의 이름을 높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들의 최소한의 욕구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라도 자신이 이름이 드러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고 말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죽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는(갈2:20) 일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위대한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또한 그를 추종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충분히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드러나기를 거부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두려워했다는 표현이 더욱 옳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드러난다면 주님의 모습은 자신의 내면에서 보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국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실정은 어떻습니까?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신문과 방송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고 "능력의 종 신유의 종"을 외치며, 또한 주님이 원하시지도 않는 단체를 만들어 명예를 과시하는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결국 이러한 것들은 우리를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을 따라 가도록 하는데 일등 공신의 노릇을 하게 될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나도록 하는 일에만 힘을 쓸 것입니다.

 

4] 흩어지지 않게 하자

 

흩어지지 않겠다는 것은 도시문화와 세상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힘을 더욱 강력하게 하기 위해서 뭉칠 것이고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이웃의 도시라도 삼켜서 더욱 강력한 도시를 만들고자 할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그들의 민족들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어왔으며, 또한 모든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상들을 경계하는 것은 교회가 이 사상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오늘날의 교회는 이러한 사상 위에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지역교회를 인정하지 않으며, 오직 자신들의 교회로 인도해서 그들의 수를 늘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으며, 혹 지역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다면 "지교회"라는 명분으로 그들의 생각과 신앙을 그대로 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흩어지지 않겠다고 탑을 세우고 있는 자들과 결코 다르지 않은 자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을 돌이키기 위한 환경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대적하는 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계시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결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역사의 과정에서 반드시 적용되어져 온 법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A.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의 언어가 하나였다는 것은 결국 같은 생각을 가지고 움직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언어라는 수단을 통하여 서로 교제하고 생각을 나누며, 그들의 일들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서 제대로 교제할 수 없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능률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결국 이 언어를 통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획일적인 생각을 갖도록 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형태는 교리 교파로 모여 있습니다. 즉 같은 생각과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의 형태는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복음이 가져다주는 다양성을 무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생각보다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의 적용은 문화와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서도 예수님 당시의 교회와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 그리고 바울의 서신에서 나타난 교회를 같은 선상에서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와 성인을 두고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또한 초대교회와 중세시대의 교회, 그리고 오늘날의 교회를 두고 같이 생각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 때에는 성도들에게 성경이 주어지지 않은 시대였지만 지금은 누구나(심지어 불신자들까지도) 성경을 소유하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획일적인 생각들, 즉 고정관념들과 편견과 같은 것들은 매우 위험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신 까닭은 그들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다양한 사역들을 감당하도록 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가져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각 개인마다, 그리고 교회마다의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주님은 그것들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B.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오직 구원이 유대인들에게만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행1:8)는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머물러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핍박이 오도록 하셨고 결국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한 후에야 아시아와 유럽 전역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일들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바벨탑 사건과 매우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흩어지지 않으려는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서로 하나가 되어 뭉쳐 사는 것을 더욱 원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의외로 많은 곳에서 분리되어 살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녀가 결혼을 함에 있어서도 부모를 떠나(창2:24) 살도록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도록 하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지역교회(Local church)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누구의 간섭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위에 어떠한 상위 기관을 두지도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이며, 또한 주인이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가 교회 위에 교단장을 비롯한 상위기관을 두는 것과는 매우 구별된 것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뭉치면 주님께서 통치하실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교회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계2:7)을 들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의 말씀보다 그들의 위에 있는 권세들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흩어져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C.도시를 세우기를 그쳤더라

 

주님의 관심은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으로 명령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도시를 세우는 작업을 계속한다면 복음은 멈추어질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대형화 추세를 계속해 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약육강식"의 논리로 서로의 교회들을 비방하는 일들도 서슴지 않으면서 교인들을 데려오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는 현상들입니다. 그들은 지금 도시 문화적 교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결국 우리들로 하여금 이러한 것들을 멈추도록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속해서 복음을 전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적 삶을 위한 주님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 문화가 사람들의 감정을 빼앗아 가듯이 도시 문화적인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자연히 주님의 구속에 대한 감격보다는 오히려 많은 지식들로 남을 정죄 하는 일에 매달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전하는 일을 계속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메마른 영적 삶을 더욱 활력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주님의 말씀을 따라 복음을 전함으로 풍성한 삶을 경험해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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