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이동하여 우물에 이르다(창29:1-8)

조회 수 2694 추천 수 0 2010.06.06 22:40:18

그 뒤에 야곱이 계속해서 이동하여 동쪽 사람들의 땅에 이르러 바라본즉, 보라, 들에 우물이 있고 또, 보라, 그 곁에 양 떼 세 무리가 누워 있더라. 그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였더라. 큰 돌이 우물 아귀 위에 있더니 모든 떼가 거기로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귀에서 그 돌을 옮기고 양들에게 물을 먹이고는 그 돌을 우물 아귀의 제자리에 다시 올려놓았더라.(창29:1-3)

 

야곱이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이후로 그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그 일로 인하여 그의 형 에서로부터 살해의 위협을 받아야만 했으며, 고향을 등에 지고 떠나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생애가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나기 전에는 세상으로부터 어떠한 위협도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원하는 생애를 살 것이며, 그 안에서 안정된 삶을 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모셔 들인 이후의 삶은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는 세상과의 관계를 단절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경배하며 살아가도록 가만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고향을 떠나 그의 어머니 리브가의 고향이었던 땅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우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우물은 분명히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그가 목표한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머물게 될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장차 주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머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장차 한 족장으로서 민족을 구성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보라(Lo,)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할 때 중요한 부분을 설명할 때는 언제나 "주목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서 특별한 내용을 설명하기에 앞서서 쓰고 있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보라"(Look)는 말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특별한 의미를 강조할 때마다 쓰여 지고 있는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우물에 당도하여 겪고 있는 사건은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그 지역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의 우물에서의 사건은 그렇게 특별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평범한 가운데서 놀라운 진리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더욱 유익한 것이 될 것입니다. 성경이 "보라"는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다시 한 번 주의하여 보십시오. 그렇다면 분명히 놀라운 비밀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 우물(a well)

 

우리는 앞서 '브엘세바'라는 말의 뜻이 '일곱 개의 우물 또는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곳은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몸종이었던 하갈이 물이 없어 방황했던 곳이었다(창21:14)는 사실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우물에 물이 없다면 그것은 우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교회와 비교할 수 있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교회가 그곳에 모인 회중들에게 말씀을 공급하는 일들은 제대로 할 수 없다면 그곳은 교회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을지는 몰라도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야곱이 당도한 곳에는 우물이 있었고, 또한 그곳에는 물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야곱이 그가 지금까지 머물렀던 브엘세바, 즉 우물이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물이 없었던 고향을 떠나 이제는 생수가 가득한 우물이 있는 곳으로 그가 머물 장소를 옮기게 된 것입니다. 그곳은 분명히 특별한 장소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양떼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물은 당연히 물이 있어야만 합니다. 만일 물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우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주님의 교회와 관련하여 매우 의미 있는 것입니다. 만일 교회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그곳에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지 않다면 그곳은 진정한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곳에서 나오는 말씀들이 도저히 양식으로는 먹을 수 없는 것들로 채워지게 된다면 역시 마찬가지로 그곳은 교회의 기능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당연히 순수한 진리의 말씀, 즉 생수를 내야만 합니다. 그것은 먹어도 몸에 전혀 해가되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영혼의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어야 하며 유익을 가져다주어야만 합니다.

 

야곱이 당도한 우물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축복을 받은 이후로 결국 우물이 있는 곳에서 머물게 되었듯이 그리스도인들도 그들이 주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이후로 교회의 회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영원한 생수인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게 될 것이며, 장차 주님께서 다시 부르시기 전까지 그곳에서 그들의 목마른 영혼을 달래가며 살게 될 것입니다. 우물은 교회와 관련하여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또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우물이 들에 위치해 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들은 세상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이 세상에서만 존재되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가 올 세상에는 교회가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가 결국에는 이 땅에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지만 속지 마십시오. 주님이 만드실 세상은 새로운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머무는 동안 교회를 통하여 말씀을 공급받고 영적인 풍성함을 누릴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은 이 세상에서만이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 떼 세 무리가 누워 있으니

 

성경에서 양(sheep)은 대부분 성도들과 비교하여 설명이 되어지곤 합니다. 양은 언제나 매우 약하고 단순한 짐승으로 비교되어지곤 하며, 목자가 없이는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짐승으로 설명되어지곤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람들에게 짐승이 양식이 된 것은 노아의 홍수 사건 이후에 허락된 것인데도 불구하고(창9:3), 이미 사람들의 손에 의해 양들은 길러지고 있었습니다. 아벨은 그 중에 대표적인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직업은 양을 지키는 자였습니다(창4:2). 그것은 언제나 양들이 하나님의 백성, 혹은 하나님의 자녀와 비교되어 설명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이 땅에 창조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들 곁에 머물러 계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머물게 된 땅에 도착하면서 보았던 장면은 바로 이 양 떼들이 우물곁에 무리를 지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양들은 물을 마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물을 중심으로 모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는 중요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교회를 중심으로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부패와 타락상들을 열거하며 교회 무용론, 혹은 무교회주의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명백히 주님이 세우신 것이며, 비밀을 간직한 것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지체가 되어야 함을 수없이 열거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의 지체가 되어야 하며, 그들은 그곳에서 말씀을 공급받고 경건의 삶을 유지해 가야만 합니다. 그들은 교회 밖을 떠나서 어느 곳에서도 참된 음료를 마실 수 없을 것입니다.

 

우물곁에서 물을 마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양 떼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그들의 목을 축이기 위해서 기다릴 줄 아는 무리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관심은 오직 우물에만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나오는 생수를 마시기 위해 무리를 지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성경에서 "믿음이 들음에서 나며"(롬10:17)라는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들음은 결코 혼자서 말하고 듣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통하여 들어야만 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교회를 통하여 말씀을 듣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더욱 힘써 말씀을 듣기 위하여 주님의 교회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양들이 언제나 우물곁에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 무리는 꼴을 찾아서 여러 장소로 이동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무리는 반드시 우물을 거쳐 가야만 합니다. 그곳에서 갈증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언제나 교회 안에서 생활할 수는 없습니다. 일부 전임 사역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세상에서 그들이 취할 양식과 생활을 위하여 수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 각자가 영적인 양식을 취하여 그들의 삶의 풍성함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제 아무리 많은 양식들로 풍성해졌다 할지라도 주님의 교회를 반드시 거쳐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간증을 하게 될 것이고, 또한 함께 경배함으로서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게 될 것이며, 나의 풍성함을 나눔으로서 아름다운 교제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삶의 생수와 같은 것이 되어서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고 결국에는 많은 보상을 얻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풍성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더욱 섬기고, 모여야만 하는 중요한 것임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큰 돌(a great stone)

 

이 우물을 보면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림으로나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아 우물을 덮는 뚜껑은 대부분 가벼운 목재와 같은 것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사용하는 사람들도 편리할 것이고,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곳 우물에서는 큰 돌로 막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것은 혼자서 도저히 옮길 수 없을 만큼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겨우 옮길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은 우물이었지만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없는 우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우물의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그들 모두가 힘을 모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는 큰 돌을 옮겨야만 했습니다. 그 돌이 옮겨지기 전에 그들은 한 방울의 물도 마실 수 없었습니다. 이것 역시 교회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비밀이 담겨져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많은 부분에 걸쳐서 돌은 언제나 예수님과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물 안의 생수를 마시기 위해서는 큰 돌을 옮겨야만 했듯이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자진 자라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결코 영적 음료인 하나님의 말씀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믿지 않는 상태에서 성경을 보고 가르치려 하지만 그들은 말씀 안에 있는 생수를 결코 공급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속이는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도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들은 성경의 많은 부분들을 예로 들어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영으로 오신 분이라고 가르치면서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지만 그 사역을 완수하지 못하고 올라가셨기 때문에 누군가 그 사역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거짓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예언대로 이 땅에 오셨소, 피를 흘리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심으로서 모든 사역을 완수하셨습니다. 만일 이 일이 거짓이었거나 일부 사람들의 주장대로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면 성경은 한낮 쓰레기와 같은 책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모든 예언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완전하게 이루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기본이 없는 상태에서 성경을 보게 된다면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취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구약이나 신약 전체가 바로 그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대하기 전에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만 합니다. 그분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해야만 합니다. 성경을 대하기 전에 주님과의 깊은 교제가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야곱은 그의 목적지에 도착하면서 우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의미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교회를 이해시키려는 주님의 의도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한 큰 돌이 우물을 덮고 있어서 그 돌을 옮겨야 생수를 얻을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을 수 없음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주님의 교회를 통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 안에 침례, 만찬 등 많은 것들을 행하도록 하심으로서 교회의 비밀을 드러내도록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교회를 온전하게 섬기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공급받도록 힘쓰십시오.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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