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축복하였더라(창26:34-28:9)

조회 수 2440 추천 수 0 2010.06.06 22:29:24

야곱이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으셔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혼이 나를 축복하소서, 하매 이삭이 자기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그것을 이같이 속히 찾았느냐? 하거늘 그가 이르되, 주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그것을 내게 보내 주셨나이다, 하니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원하건대 가까이 오라. 네가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내가 너를 만지려 하노라. 야곱이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그를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그의 손이 그의 형 에서의 손처럼 털이 있으므로 그를 분간하지 못하고 이처럼 그를 축복하였더라.(27:18-23)

 

대부분의 사람들은 야곱이 매우 교활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들은 다만 형 에서의 장자권과 축복을 대신 받았던 사실만을 가지고 야곱의 가치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코 우리는 야곱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어머니 리브가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서 결국에는 이삭을 축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그의 가정에서 축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는 매사에 형보다 열등한 상태에 있다고 생각을 했던 자였습니다. 모든 방면에 있어서 형보다 부족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우 남성스럽고 자신감에 넘친 그의 형 에서에 비하여 자신은 매우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자연스럽게 위축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주님의 사랑을 입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한 행동은 그가 팥죽으로 형의 장자권을 사려고 했던 모습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창25:29-34). 형이 이러한 권리에 대하여 소홀히 생각하고 있는 반면에 그는 매우 소중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보다는 명분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던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명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얼마나 능력 있는 자인가? 라는 사실보다도 진정 제사장으로서의 명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능력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 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진 명분을 더욱 소중하게 여길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받을 복들을 이리 볼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 줄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에서와 같이 업신여긴다면 그는 장차 주님께 받아야할 모든 권리들을 잃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오히려 그의 능력보다도 더욱 많은 선물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야곱은 이러한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인물입니다. 이제 그들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이삭의 에서에 대한 사랑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그러하듯이 이삭의 장자에 대한 사랑은 특별합니다. 아마도 이삭은 리브가를 통하여 두 아들이 태어날 당시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주님의 의지는 분명하게 에서가 야곱을 섬길 것이라는 것입니다(25: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여전히 에서를 사랑했습니다. 그가 에서를 사랑한 이유는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먹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25:28). 그는 자신의 육신을 만족시켜 주는 에서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자에다가 효도를 다하고 있는 자식들을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라도 이삭과 같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오히려 아버지로서 무능하고 소극적인 야곱에게 마음을 준다는 것은 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만나면 책망을 했을 것입니다. 더욱 남자다워 질 것을 요구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이삭의 가족이 겪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삭은 자신이 아들 에서에게 축복을 하기 전에 마지막 효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일은 엄청난 실수를 낳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를 야곱이 들어왔던 것입니다. 행위가 요구되어지는 곳에는 언제나 문제를 낳고 말 것입니다. 결국 에서는 이삭의 요구대로 들에 나가 사냥을 하고 음식까지 만들어 왔지만 이삭으로부터 하나님의 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실로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율법은 언제나 행위를 요구합니다. 즉 행위를 통하여 어떠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언제나 많은 허점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행위만으로는 주님으로부터 어떠한 보상을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를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의지와 생각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주님과 아무런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에서를 보십시오. 그는 분명 육신적으로는 매우 훌륭한 면을 가지고 있는 자였고, 특히 아버지에게 있어서 사랑스러운 아들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리브가의 야곱에 대한 사랑

 

에서가 이삭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면 야곱은 그의 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자식들이 그러하지만 연약한 아이들을 돌보고 감싸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신적으로 매우 부족해 보이는 아들이었던 야곱에게 그의 어머니였던 리브가가 마음을 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가 마음을 쓰는 것은 단순히 야곱이 연약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리브가는 주님으로부터 동생 야곱이 후사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25:23). 에서는 이 사실에 대하여 기억하고 있지 않았지만 리브가는 여전히 주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야곱에게 더욱 마음이 갈 수밖에 없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브가는 주님의 말씀대로 되어지기를 소원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서 에서에게 축복을 주려는 상황이 발생이 되자 즉시로 야곱을 불러 에서를 대신하여 들어가도록 합니다. 비록 그러한 방법이 육신적으로는 비겁한 상황으로 보일 수는 있으나 리브가는 어찌되었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지기를 소원했던 여인이었습니다. 결국 그녀의 계획은 성공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약속대로 야곱의 후손들을 통하여 그분의 계획을 세워갈 수 있었습니다.

 

리브가의 야곱에 대한 사랑은 단순히 육신적인 동정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해산의 고통을 겪었던 아들이었지만 그녀가 야곱에게 마음을 두었던 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녀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세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법을 배워가야만 합니다. 육신적으로 아무리 명분이 있고, 당연한 것으로 인식이 되어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당연히 바꿀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만 합니다. 주님은 비록 육신적으로는 부족하여도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들을 통하여 기뻐하실 것입니다. 만일 거기서 벗어나게 된다면 그는 주님으로부터 버림받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행하고 있는 것이 주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것은 아닙니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리브가가 에서를 거부했던 사연

 

우리는 이미 리브가가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야곱의 축복을 도왔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이러한 결심을 한데는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에서도 동일한 아들입니다. 그녀가 에서를 미워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축복을 받는 장면에서는 분명히 구별할 줄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에서의 몇 가지 행동들은 결국 리브가의 마음이 야곱을 축복하도록 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말았습니다.

 

에서는 40세에 헷 족속의 딸 유딧과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삭과 리브가에게 큰 근심거리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4,35). 리브가가 이삭에게 늘어놓는 푸념을 들어보시겠습니까? 그녀는 그의 며느리들을 생각하면서 "내가 헷의 딸들로 인하여 살기에 지쳤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헷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고 말합니다. 결국 에서는 그의 아내들을 잘 못 선택함으로서 리브가의 노여움을 샀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녀가 주님의 명령에 대하여 더욱 큰 확신을 갖게 하는 동기가 되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물론 리브가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예언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에서가 모든 일에서 신실하게 행동을 했더라면 리브가는 혼란을 겪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육신의 일을 따라 살았던 에서는 그의 어머니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하였고, 이일은 결국 그의 축복마저도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결국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또한 그것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멸망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리브가를 통해 보듯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의 일들에 대하여 분명하게 분리된 자세를 가져야만 합니다. 아무리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육신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분리해 내야만 합니다. 그리고 더욱 주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믿고 따라야만 합니다. 육신의 일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주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오히려 우리를 멸망으로 이끄는 것들에 대하여 멀리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야곱이 이삭에게 간 사연

 

우리는 이 말씀에서 매우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야곱을 매우 교활한 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가 축복을 받는 장면에서 그의 의자가 절대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기회를 엿봤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이것은 야곱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의 모든 과정은 그의 어머니 리브가에 의하여 진행이 된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과 비교를 한다면 제작, 연출 감독의 일을 모두 그의 어머니 리브가가 맡고 야곱은 다만 지시하는 대로 연기를 했던 것뿐입니다.

 

이것이 가져다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구원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음에 있어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어머니의 말씀대로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에게 염소새끼 두 마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야곱이 그의 아버지에게로 나아가는데 할 수 있었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짐승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향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영접하기만 한다면 그는 이미 자격을 얻은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야곱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음식을 만들었고, 심지어 그의 아버지에게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염소의 털을 야곱에게 입히는 치밀한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준비와 진행은 그의 어머니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아버지께로 나아가는데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만 그분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다가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한 순종의 결과는 상상할 수 없는 복을 얻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기억해 두십시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명령대로 그저 순종했을 뿐입니다.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고, 또한 엄두를 낼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히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도저히 엄두를 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그의 어머니의 말을 믿고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 또한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아간다면 우리는 놀라운 삶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야곱이 이삭의 축복을 받는 장면은 육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상상할 수 없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진정한 모습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르쳐 주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바로 사모하는 자들에게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며, 신실한 삶을 살고자 하는 자들에게 얻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주님은 그분의 말씀에 따라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며, 결국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육신적인 안정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장차 받을 상속에 대하여 사모하고 있는가? 또한 주님 앞에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를 생각하실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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