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와 라헬(창29:9-30:24)|

조회 수 4085 추천 수 0 2010.06.06 22:41:40
  1.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2.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3.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4.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5.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창29:16-20)

 

사람들을 비교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고유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믿음의 사람들을 비교한다는 것은 더욱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매우 훌륭한 참고서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두 명의 믿음의 여인이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다른 모습들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환경은 그렇게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같은 아버지 아래서 같은 집에서 살았고, 같은 양식을 먹었으며, 같은 옷과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을 만난 이후의 그들의 생애는 매우 달라졌습니다. 그들의 본래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후에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되고 말았고, 그들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수치스러움을 발견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때로는 눈물도 흘리고, 괴로워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세상에서 우리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살아갔던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죄인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고, 자신이 가진 것들이 얼마나 가치 없고 부질없는 것인가를 알게 될 것이며, 장차 올 세상에서 얼마나 초라한 존재가 될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주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때로는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통곡하게 될 것이며, 또한 주님의 사랑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두 여인을 통해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여인들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레아가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이유

 

우리는 레아의 동생 라헬이 아름다운 여인이었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레아는 실상 동생 라헬과 비교가 될 만큼 아름답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레아의 눈매에 대하여 "tender"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물체에 대하여 말할 때에는 "부드럽다"는 의미로 쓰여 지는 단어이지만 몸, 혹은 체질에 대하여 말할 때에는 "약한, 가냘픈"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하면 레아의 눈매는 그리 맑지 못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눈은 마음의 창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레아의 눈매가 그리 맑지 않았다는 것은 육신적으로 그리 지혜롭거나 현숙한 여인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라헬이 아름답고 잘 생겼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매우 비교가 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분명히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여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의 등장은 레아에게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상상을 해 보십시오. 그녀는 야곱이 나타나기 전에는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거나 잘 생기지 못한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자신을 뒤로하고 라헬을 사랑함으로 칠년 동안을 섬기겠다고 했을 때, 동생의 아름다움에 대한 부러움과 더불어 자신의 처지가 조금은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레아를 아내로 얻은 이후에도 라헬을 얻겠다고 또 다시 칠 년을 섬긴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자신을 매우 수치스럽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녀가 첫 아들을 낳은 후 "주께서 분명히 나의 괴로움을 보셨으므로"(29:32) 아들을 낳게 하셨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바로 그녀의 심정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레아는 비록 육신적으로 아름답지는 않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결코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나타난 이 후로 그녀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녀는 이제 열등감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약점을 인정해야만 했고, 결국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시간들을 주님께 구했던 것입니다.

 

레아는 문제의 해결이 오직 주님께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레아가 아들을 낳으면서 그 모든 것들이 주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고백하는 장면들을 봅니다. 특히 그녀는 유다를 낳으면서 "내가 이제는 주를 찬양하리로다"(29:35)고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녀는 현실적으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 까닭에 남편을 의지할 수조차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주님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 그녀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남편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결국 주님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습니다. 주님은 오히려 라헬의 태를 닫으시고, 레아의 태를 열어서 그녀로 하여금 남편의 씨를 갖게 함으로서 그녀를 위로하셨고, 그녀로 하여금 장차 올 메시아의 조상이 될 씨를 생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야곱이 선택한 것은 라헬이었지만 결국 하나님은 레아를 통하여 믿음의 씨를 낳게 하였던 것입니다.

 

레아가 이처럼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레아는 야곱과 살아가는 평생 동안을 언제나 은혜를 입기를 구했습니다. 그녀는 야곱이 오직 자신을 사랑해 주기만을 고대하면서 평생을 보냈던 것입니다. 비록 야곱이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녀의 마음은 야곱의 사랑을 얻는데 있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는 원인이 되었고, 그녀가 낳은 자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루는 중심 족속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수많은 수모와 고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님의 은혜를 구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다윗은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어려서 사무엘로부터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실상 그의 삶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는 사울 왕의 사위가 되었지만 오히려 사울에 의하여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만 했고, 후에 왕이 되어서도 아들 압살롬에 의해 도망을 다녀야만 하는 신세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한결같습니다. 그는 위기의 순간이나, 왕으로서 권세를 누리는 순간도 여전히 그의 중심은 오직 하나님께 향해 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어려서부터 죽을 때까지 오직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이스라엘의 최고의 왕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복된 삶을 경험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언하지만 세상의 어디에도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성형수술을 받은 여인이 자신이 아름다워진 모습을 보고는 너무도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추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더욱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아름다움도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질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레아를 통해 보여주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헬이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이유

 

라헬은 분명히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부러울 것이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름답고 잘생겼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더구나 그녀는 야곱의 눈에 띄어 그의 청혼으로 인하여 매우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녀는 분명히 특별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서도 야곱과의 만남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분명히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그 사랑의 결실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차라리 야곱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러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야곱과 함께 사는 동안은 자녀를 얻지 못하므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자녀가 없다는 것

 

라헬이 자녀가 없다는 것은 그가 받은 모든 사랑에 대하여 잊게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남편의 모든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신세였지만 그녀의 관심은 오직 자녀를 생산하는데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아이가 없자 그녀의 여종이었던 빌하를 들여보내 아이를 얻은 후 위로를 받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창30:5-8).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라헬은 언니였던 레아에 대하여 매우 시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는 야곱과의 결혼 이후로 자녀가 없음으로 인하여 다정해야할 언니와의 관계가 경쟁의 관계로 바뀌어 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열매를 얻지 못하게 된다면 어떠한 모습을 가지게 될까요? 그 답은 바로 라헬을 통하여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게 될 것이고, 그를 통하여 위로를 얻고자 하겠지만 그것은 참 된 열매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열매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을 통하여 얻어진 것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것들과 적당한 타협을 이루고 얻어진 복은 참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아가는 가운데 얻어진 복이야말로 참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손에 성경을 들고 어떠한 해답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들의 삶은 성경을 통하여 답을 얻으려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의지나 생각을 통하여 복된 삶을 얻어 보려고 합니다. 그들은 차라리 그리스도인이기 보다는 종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낳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이 세상에서 쓸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사랑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라헬이 은혜를 입지 못했던 원인과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녀도 처음에는 자신이 사랑을 받을만한 여인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라헬이 응답 받았던 이유

 

그녀를 보십시오. 언니 레아가 아이를 낳는 동안 매우 조바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모든 사랑이 언니에게 갈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는 그녀였지만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이제 그녀는 도저히 자신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가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낮아질 것입니다. 이제 그녀가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주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결국 주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것은 언니 레아와 두 여종이었던 빌하와 실바를 통하여 모든 자녀들이 생산된 뒤에 얻은 것이었습니다. 이미 열 명의 자녀가 출산을 한 뒤에 뒤늦게 얻어진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이었습니다. 그녀는 요셉을 얻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내 치욕을 없애 주셨다"(30:23)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의 치욕을 없애기 위하여 하나님께 구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녀가 낮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주님의 은혜를 입기를 소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응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바로 여전히 자신의 의지로 해결하려는 의지들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은 바로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아는 모두 포기하는 것입니다. 라헬을 보십시오. 그녀는 언니와 여종들 모두가 자녀를 생산한 이후에야 요셉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심한 좌절감과 아울러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비결이었습니다.

 

결론

 

레아와 라헬, 이 두 여인이 주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원인은 한 마디로 간절함에 있었습니다. 레아는 자신의 육신적인 부족함 까닭에 더욱 간절히 주님의 은혜를 구했으며, 라헬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자신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간절히 구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기를 소망한다면 오직 주님만 의지하십시오. 그것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디에도 길은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소망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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