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와 야곱의 비교(창25:24-34)

조회 수 2952 추천 수 0 2010.06.06 22:27:10

야곱이 죽을 쑤었는데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 지쳐서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지쳤으니 원하건대 그 붉은 죽을 내가 먹게 하라, 하더라. 그러므로 에서의 이름을 에돔이라 하더라. 야곱이 이르되, 이 날 형의 장자권을 내게 팔라. 에서가 이르되, 보라, 내가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 장자권이 내게 무슨 유익을 주겠느냐? 하매 야곱이 이르되, 이 날 내게 맹세하라, 하니 에서가 그에게 맹세하고 자기의 장자권을 야곱에게 파니라. 이에 야곱이 빵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고 마시고 일어나 자기 길로 갔더라. 에서는 이와 같이 자기의 장자권을 업신여겼더라.(29-34)

 

에서와 야곱을 비교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육신대로 살아가는 자들과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자였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과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었던 한 사람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힘입어 믿음의 조상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다는 점 때문에 우리는 이 두 사람의 생애가 매우 특별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대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과 비슷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좋은 환경과 여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살아가고 있는 사람과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에 매우 열악한 환경가운데 있지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에서와 야곱의 모습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나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능숙한 사냥꾼 에서&평범한 사람 야곱

 

에서는 능숙한 사냥꾼이었습니다. 그는 오늘날의 사람들 기준으로 볼 때 매우 매력적인 사람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매우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자였으며, 많은 사람의 호감을 가질만한 인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사냥 솜씨에 반해서 그를 부러워하기도 하였을 것이고, 또한 그가 용맹했었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들의 처소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분명히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처지는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매우 교활한 자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그가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7). 그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형처럼 용맹하지도, 적극적이지도, 또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지도 못한 자였습니다. 그는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간신히 이어가는 보통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이렇게 두 종류의 사람으로 분류하여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우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세상에서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지극히 평범해서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큰 행운입니다.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분명히 많은 혜택을 안겨다 줄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구원의 조건과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구원함의 기준이 정해지거나, 얻는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은 매우 비통해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체념한 채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고, 의욕이 없는 상태에서 자살의 유혹가운데 살아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분명하게 부자이든 가난한 자든, 강하든지 약하든지, 세상의 지혜가 있든지 없든지 아무런 차별이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자라면 누구든지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희망의 소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들에 거하였던 에서&장막에 거하였던 야곱

 

에서는 그가 사냥을 하던 자였기 때문에 주로 들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 반면에 야곱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으므로 주로 집안(장막)에 거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이 머문 장소에 대한 설명을 위하여 기록해 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비밀이 숨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교회의 지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생활을 합니다. 그들은 세상의 일과 교회의 일 사이에 어떤 것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세상의 일을 선택합니다. 그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은 여전히 세상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머물고 있는 동안 세상은 결코 끊을 수 없는 대상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생활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그는 에서와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며, 결국에는 실패한 인생으로 결론지어지게 될 것입니다.

 

야곱은 분명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더욱 적극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그는 무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오직 집안에서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용맹스러움도, 남자다움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입니다. 그의 인생은 실패한 것 같으나 성공한 인생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결코 에서를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용맹스러움과 남자다운 모습을 본받으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기도할 때마다 아브라함, 이삭과 더불어 "야곱의 하나님"으로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이처럼 믿음의 사람으로 불려 지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가 장막 안에 거했던 자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훌륭한 믿음의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이유를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 혹은 전도를 잘하는 사람, 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 혹은 구제와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 등 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주님의 교회에 속한 자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외형적으로 제아무리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비쳐진다 할지라도 교회의 지체로서 바로 서있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훌륭한 믿음의 본을 보여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주일성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일만을 지키는 것으로 믿음의 본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분명히 병든 성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관심은 주님의 교회에 있어야만 합니다. 노아의 시대에 홍수가 있었을 때 오직 방주 안에 있는 자들만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바로 주님의 교회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교회"는 오직 하나 뿐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지역교회를 부인하려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말할 때 "교회들(churchs)"이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만일 우리 가운데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인 분들이 있다면 그는 반드시 이 교회 안에 지체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곳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머무는 처소가 되어야만 합니다. 결코 그곳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자신을 훈련하고 주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야곱은 바로 자신의 장막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이삭의 사랑을 받은 에서&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받은 야곱

 

에서는 분명히 남자들에게 있어서 매력적인 자였습니다. 특히 아버지 이삭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에서는 이삭에게 있어서 장자였고, 또한 듬직한 아들이었으며, 때로는 사냥해 온 음식을 가지고 그의 입을 즐겁게 해주기도 하는 효자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분명히 육신적으로 볼 때 훌륭한 면을 많이 지니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 반면에 야곱은 에서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육신적인 매력을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어머니 리브가를 의지하는 연약한 존재였고, 스스로는 무엇도 해결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야곱이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우리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비밀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리브가가 두 아이를 낳기 전에 말씀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두 종류의 백성이 네 속 중심에서부터 나누어지리라.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하겠고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 하시니라."(23) 리브가는 이 말씀을 마음에 두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리브가 역시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하나님의 뜻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그녀에게 이 말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왜 이삭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리브가는 이 말씀을 마음에 두고 야곱이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빌도록 하고 있으며, 결국에는 에서를 뒤로하고 야곱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분의 약속대로 되어지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역행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주님의 뜻을 크게 거치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결국 리브가의 순종이 하나님의 계호기을 이룬 것이 되겠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야곱은 약속을 받은 자였지만 에서는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약속받은 자녀이냐? 아니면 약속을 받지 못한 자녀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날 때부터 우리는 택하셨느냐? 아니면 버리셨느냐? 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이 부분을 이러한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하려 한다면 이는 성경을 겉잡을수 없을 정도로 난도질을 하고, 또한 부인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이미 약속대로 오신 그분을 믿는 것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 약속의 자녀인가? 아니면 부인하는 겉으로만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자녀인가? 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 약속의 자녀라야 만이 장차 주님의 면전에서 상속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행위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장자권을 업신여긴 에서&장자권을 가지기 원했던 야곱

 

장자권은 그야말로 놀라운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능력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통해서 놀라운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서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는 이것을 업신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34). 왜 그가 이것을 업신여겼을까요? 그는 하나님의 주시는 복이 그렇게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는 그랬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놀라운 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어야만 했으며, 자손도 귀했고, 또한 자신들의 거처할 조그마한 땅마저도 확보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전혀 마음속에 염두 해 두지 않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도 지금보다 더욱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야곱에게 있어서는 이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평범했을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무능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가 붙들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민족을 형성할 수 있는 힘도 없었으며, 또한 소극적인 그의 생활방법 때문에라도 홀로 나그네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하서도 매우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야곱이 팥죽으로 장자권을 사고, 또한 아버지를 속여 형인 에서를 대신하여 축복을 받은 것이 매우 교활한 행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는 그만큼 간절했고 절박했던 것입니다.

 

이 일은 결코 그들만의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업신여기고 영접하려 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들을 보십시오.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지금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의 생각은 틀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 모두가 부자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건강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항상 지혜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못한 인생을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에 대하여 업신여기고 오히려 자신의 힘으로 더욱 나은 삶을 살고자 합니다.

 

반면에 세상에서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자그마한 은혜의 선물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구하고 세상의 사람들이 볼 때 매우 어리석은 방법이라도 그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체면을 불구하고 다가가는 경우들을 봅니다. 그들은 현재의 삶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갈 뿐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고비에서 그들의 믿음을 지켜야 하는 처지에 있는 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해 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여전히 세상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기로 결심했다면 그는 오히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기로 작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는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자신의 신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고 보다 품위 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보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십시오. 그것은 주님의 은혜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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