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믿음(창25:1-23)

조회 수 2943 추천 수 0 2010.06.06 22:26:21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세대들은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취하여 아내로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아람의 시리아 사람 브두엘의 딸이요, 시리아 사람 라반의 누이더라. 이삭이 자기 아내가 수태하지 못하므로 그녀를 위하여 주께 간구하매 주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수태하였더라. 아이들이 그녀의 태 속에서 함께 싸우므로 그녀가 이르되, 그렇다면 왜 나는 이러할까? 하고 가서 주께 여쭈었더니 주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두 민족이 네 태 속에 있노라. 두 종류의 백성이 네 속 중심에서부터 나누어지리라.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하겠고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 하시니라.(19-23)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호칭함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설명한다면 하나님은 이삭을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하셨을 뿐만이 아니라 믿음의 본으로 삼으셨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믿음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까?

 

이삭의 인생

 

많은 사람들은 이삭이 믿음의 사람이라는 이유로 매우 매력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드러나고 있는 그의 모습은 결코 그들의 기대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육신적으로 매력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그는 차라리 소망도 없고, 의지도 없는 매우 무능한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모리아 산을 향해 가고 있는 그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이미 모든 상황을 이해할 만큼 성장했습니다. 정확한 나이를 추정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최소한 15세 이상 되는 나이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제물이 되기 위해 모리아 산을 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그는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에게도, 그리고 그의 어머니 사라에게도 때를 쓰거나 반항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묵묵히 아버지가 하시고자 하는 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만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거세게 반항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자리로 기꺼이 따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또 다른 모습은 바로 결혼 문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40세가 되던 나이에 결혼을 하였는데(25:20), 오늘날에도 결혼하기에는 늦은 나이이지만 당시에도 적지 않은 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이 결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아버지에 의해서 결혼하게 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는 육신적으로는 매우 무능한 상태에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그는 아버지였던 아브라함이 이 문제에 대하여 해결하려고 결심하지 않았더라면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지내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그가 외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는 마땅히 이 문제에 대하여 생각을 했어야 옳았습니다.

 

그의 모습은 한마디로 연약한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는 40이라는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죽은 어머니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늘날 소위 말하는 "마마보이"라고 할 수 있는 자입니다. 성인이 된 그가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그의 심성이 매우 약한 자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그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전혀 매력 없는 남자로 비쳐질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가 성인이 되어 족장으로서 살아가게 되었을 때에도 그의 연약성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내 리브가가 매우 아름다웠으므로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 염려하여 아내라 말하기를 두려워했으며(26:7),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시 팠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자신들의 것이라고 말하자 아무런 저항도 없이 돌려주기도 했습니다(26:17-22).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족장으로서 오늘날 소위 말하는 지도력을 전혀 갖추지 못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매우 평범하면서도 연약한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삭의 신앙생활

 

그렇다면 이삭은 어떤 믿음의 삶을 살았을까요?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그가 육신적으로는 그리 매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하나님 앞에서 매우 기뻐할 만한 믿음의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일컬음을 받을만한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믿음의 모습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요?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가 묵상을 할 줄 아는 자였다는 것입니다(24:63). 즉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개인적인 시간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훈련은 그가 어릴 적부터 계속해왔음이 분명합니다. 이삭이 모리아 산을 오르는데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과의 교재가 큰 밑거름이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께서 아버지 아브라함과 자신을 향한 명령들을 알았고, 이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기꺼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깊은 묵상을 통한 결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묵상을 즐겨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순종할 줄도 압니다. 주님의 명령이 비록 무모하게 보이더라도 그것이 분명한 주님의 명령으로 알게 되는 순간 그는 순종하는 삶을 멈출 수 없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묵상이 없다면 그의 생명은 결코 힘을 가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그는 분명히 문제가 있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삭에게 있어서 가장 돋보이는 믿음의 모습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그것은 언제나 배려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그의 나이가 60이 될 때까지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25:21).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 문제를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성경을 들여다보십시오. 그는 자식의 문제를 위하여 기도할 때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녀, 즉 아내인 리브가를 위하여 기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곧 자신은 이 모든 문제를 이미 하나님께 맡겼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아내가 당하는 고통을 보지 못하고 그녀를 위하여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간절하게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이미 하나님께 맡겨졌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 어떠한 것도 구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주님께 구할 일이 있다면 오직 고통을 당하는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의 모습이 되어야만 합니다. 바울도 자신의 질병의 문제를 놓고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고후12:8,9). 그러나 그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응답이 있고 난 이후부터 즉시 기도를 멈췄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가 기도했던 것은 복음을 듣고자 하는 자들과 복음에서 자라야 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들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심지어 죽음의 자리에서조차 자신의 목숨을 놓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쇠사슬로 묶인 채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유감스럽게도 그가 잠을 자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행16:6). 결국 천사들은 그를 끌어냈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기도하고 있었습니까? 바로 교회가 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행12:5). 그들은 서로를 위해 기도할 줄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이삭의 믿음은 매우 모범적인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주님에게 속한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자였습니다. 그는 어떠한 상황이 와도 오직 모든 문제들을 주님께 맡길 줄 아는 자였습니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절박한 순간들이 있었다면 그것은 자신 때문이 아니라 그의 주면 사람들을 위한 것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이처럼 모든 문제들을 주님께 맡기고 오직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고 사랑할 줄 아는 생애를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삭의 인내

 

우리는 인내의 사람을 말할 때 욥이라는 사람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그는 분명히 위대한 인내의 본을 보였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이 환난 중에 인내를 보였다면 이삭은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보일 수 있는 인내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를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의 인내를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20년동안 자식이 없이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약 20년 동안 기도해 왔음이 분명합니다. 더욱이 그의 주변 환경은 이 기도에 대하여 절박했었다는 상황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가 기도하고 있는 기간 동안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후처인 그두라를 통하여 이미 여섯 형제를 낳았고, 이복형인 이스마엘은 벌써 12형제를 두고 있었습니다(25: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에게는 나이가 60이 되도록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답답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는 약속을 받은 지 10년을 참지 못하여 아내의 몸종과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창16:3). 그러나 이삭은 달랐습니다. 그는 비록 그 두 배에 해당되는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주님이 주실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주변에서 그를 자극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는 약속의 자손으로서 그가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 문제를 결코 감정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주님이 섭리하실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인내의 모습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과의 다툼이 있을만한 우물의 사건에서도 오히려 양보하고 다툼을 피했습니다. 여기서 그의 태도는 그야말로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그는 그처럼 수모를 당하고 난 뒤에도 그는 "주께서 우리를 위해 자리를 만들어 주셨은즉 그 땅에서 우리가 다산하리라."(26:22)고 말하고 있음으로 보게 됩니다. 그는 지금까지 블레셋 사람들의 무례함과 대적함이 오히려 주님의 뜻이 그곳에 있지 않다고 생각을 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대적하는 무리들에 대하여 절제해 왔습니다. 정부가 핍박을 하면 그들은 기꺼이 순교할 줄 알았고, 세상의 종교가 핍박을 해도 그들은 맞서 싸우기보다는 오히려 피했으며, 거짓 진리에 대하여는 논쟁보다는 분리를 선택하여 싸움을 피했습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볼 때는 다소 소극적이라고 보일 수는 있겠지만 진리는 그렇게 보존이 되어왔으며, 이삭은 이 일에 매우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라 가장 확실한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내하십시오! 그것은 주님께서 일을 하실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드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앞서서 일하고자 한다면 그 일에 대한 성공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만일 성공을 했더라도 많은 문제들을 낳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완벽한 성공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 일들을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이 바로 인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삭과 예수님

 

이삭은 여러 가지 면에서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삭이 예수님의 모형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비약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삭은 결혼을 했으며, 종종 실수도 했고, 또한 인간적인 약점들을 드러내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 반면에 예수님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역을 완벽하게 수행하신 분으로서 실수가 없으신 분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몇 가지 점에서는 이삭이 예수님과 흡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삭은 죽음의 자리로 향할 때에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그는 순한 어린양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며, 모리아 산으로 오를 때에 장작을 친히 매고 올라갔으며, 제단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완벽한 상태에까지 도달했습니다. 이 모습을 연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과 같은 모습으로 갈보리로 행하셨으며, 그 과정에서 나무로 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셨으며, 결국에는 친히 제물이 되셔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것이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지만 이삭은 하나님께서 준비하는 숫양으로 대신해서 제물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삭을 통해 보는 예수님의 성품은 바로 온유함과 겸손함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이삭이 분을 내거나 남을 속이거나 교만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매사에 양보할 줄 알았고, 남을 배려하였으며, 그야말로 온유함과 겸손함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향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11:29)라고 말씀하신 부분과 매우 일치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과제는 분명해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먼저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를 가르치실 때에 온유와 겸손을 기준으로 가르치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배움에 있어서 완악함과 교만으로 가득 채워진 상태에서 주님의 말씀을 대하게 된다면 그는 분명히 문제를 일으킬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시대에도 바른 복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오히려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생애를 사는 자들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 그리고 이삭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가지지 못한 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결론

 

이삭은 성경 안에서 그야말로 신비스러운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인간적으로 특별한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는 바로 세상에서 결코 특별하지 않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 때문에 특별한 존재가 되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인간적인 약점들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서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의 과제가 있다면 이 세상에서 인내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매사에 주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온유와 겸손으로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 줄 것이며,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오늘의 세대에서 이삭(웃음)의 이름과 같이 주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 힘쓰시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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