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도신경

조회 수 1557 추천 수 0 2010.06.07 18:00:28

사도 신경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로마 카톨릭교회는 사도신경이 AD55년에 12사도가 예루살렘에 모여서 기독교를 좀 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요약된 내용을 성령의 영감으로 베드로가 처음 한 구절을 기록하자 차례차례 한 구절씩 더하여 오늘의 사도신경을 완성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AD 4세기의 루피너스(Rufinus)가 "사도신조 주석"을 쓰면서 사도신조를 열 두 사도가 한 줄씩 썼다고 주장한데서 시작된 것으로 그것은 타당성이 없는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사도신경 곧 사도들의 신조(the Apostle's Creed) 는 그 이름과는 달리 예수께서 직접 가르쳐 준 신조도 아닐 뿐만 아니라, 사도들에 의하여 쓰여진 것도 아닙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베드로의 신앙고백(마16:16; 28:19)을 기초로 한 단편적인 신조가 2세기부터 존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초기 로마 카톨릭 교회들 내에는 "신앙의 규율"(Rule of Faith)이라는 것들이 존재했었습니다. 그것들의 목적과 그 용도는 대략 세 가지였는데, 첫째는 교회의 초신자들의 훈련을 위해서였으며, 둘째는 침례 받을 교인들에게 침례문답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고, 셋째는 이단 판정의 기준을 위함이었습니다.

지금의 사도 신경의 모체가 된 것은 서기400년경의 라틴 어로된 [로마교회 구신조](the Old Roman Creed)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로마 카톨릭 교회나 개신 교회들이 사용하고 있는 사도 신경은 [로마교회 구신조]가 아니고 그 이후 300여 년 동안 서방의 여러 교회들이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신조에 맞게 내용을 수정하여 사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사도신경과 유사한 후기 사도신경은 AD 6세기나 7세기에 가서야 나타나는데, 당시에 초기의 사도신경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몇 구절이 추가되었는데 즉, "지옥에 내려가셨다가"(He descended into hades)라는 구절이 추가되었고, 교회라는 단어 앞에 "우주적 혹은 카톨릭"(catholic)이라는 단어가 추가되었으며, "성인들의 교통(the communion of saints)을 믿사오며"라는 구절, 그리고 "영원한 생명(the life everlasting)을 믿사옵나이다."라는 구절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러한 추가 구절들은 프랑스 지방이나 북아프리카 지방의 역본들로부터 수집되어 추가된 것들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도신경은 8세기에 현재와 같은 언어로 확정되었고, 12세기에 카톨릭 교회에 의해서 공적으로 인준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사도신경이 카톨릭 교회에 의해 핍박을 받아왔던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단 한 번도 받아들여진 적이 없으며, 오히려 루터나 칼빈(칼뱅)과 같은 종교 개혁자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았었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에 그들에 의해 세워진 초기의 교회들에서는 이 사도신경이 교회 내에서 암송되어지는 것이 허용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리적인 허점과 신학적인 많은 문제들에 의하여 지금은 교회 안에서 사도신경이 암송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교회 내에서 암송되어지고 있지만 그것은 카톨릭과 연계하여 에큐메니칼을 주도하고 있는 교회들을 중심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실정이며, 카톨릭의 교리가 바벨론으로부터 유래된 이단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교회에서는 암송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사도신경은 카톨릭의 교리를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문 사도신경과 한글 사도신경의 차이

 

사도신경의 전통적인 영어 본문(TRADITIONAL ENGLISH VERSION)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And in Jesus Christ his only Son our Lord; who was conceived by the Holy Ghost, born of the Virgin Mary,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 he ascended into heaven, and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from thence he shall come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or from thence he shall come quick to judge the live and the dead.) I believe in the Holy Ghost; the holy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the forgiveness of sins;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and the life everlasting. AMEN.

우리말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서두에서 영문과 우리말 사도신경을 동시에 적어 놓은 것은 서로 비교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도신경이 우리말 성경으로 번역되어지는 과정에서 교리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매우 위험한 내용을 담고 있거나 혹은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별로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성경의 내용을 무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1)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첫째로 다루어 볼 내용은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로 번역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본디오 빌라도가 결코 예수님을 죽이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영문 사도신경은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말 성경에서는 마치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이려 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교리적으로나 성경적으로 매우 위험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결코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죽음을 당하신 분이 아니며, 또한 그렇게 되어서도 않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예수님께서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장로들과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겪고 죽임을 당하며 셋째 날 다시 일어날 것을 자기 제자들에게 비로소 보이시니(마태복음16:21)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장로들과 수제사장(首祭司長)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림받아 죽임을 당하고 셋째 날 일어나리라, 하시니라(눅9:22)

예수님은 수제사장과 서기관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미 구약 성경을 통해 예언된 것이기도 하며, 또한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한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즉 제사를 드릴 권한이 있는 그들에 의해 죽으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만일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죽으셨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 희생 제물이 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 짐승을 잡아 피를 뿌릴 권한이 누구에게 있었습니까? 그것은 오직 제사장에게만 허락된 것이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제물이셨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오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로다(요1:29)

만일 본디오 빌라도, 즉 이방인에 의해 예수님이 죽으시고, 피를 흘리셨다면 그분은 메시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제물이 되시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언제나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자신이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언제나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제물을 죽이고 피를 받아 뿌릴 수 있는 권한은 오직 제사장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많은 부분에 걸쳐서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 것인가를 논의하고 그들에 의해 죽으셨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구약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성취시키시는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2) he descended into hell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he descended into hell'라는 말을 생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에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신 사실을 감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말을 의도적으로 빼 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학자들의 견해에 따라서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실만한 아무런 이유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멸망당할 자들에게 자신이 구원할 자로서 세상에 왔고, 그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시는 모습을 보이시기 위해서 지옥으로 가셨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못지 않은 중요한 사실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말 사도신경은 이 말을 생략하였습니다.

이는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중심부에 있을 것임이라(마12:40)

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으니(벧전3:19)

많은 이들이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셨다는 사실에 대하여 매우 혼란스럽게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기도 하며, 또한 베드로의 서신을 통해서도 증명이 되고 있는 명백한 것입니다. 이 사실이 왜 중요한 것입니까? 그것은 죽으심과 부활과 더불어 매우 의미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심으로서 우리가 더 이상 지옥에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님 이미 타락한 천사들과 심판 받을 자들에게 친히 증거 하실 필요가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우리의 시간으로 삼일만에 이루시고 다시 올라오셔서 부활의 몸을 입고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지옥으로 내려가신 분이십니다.

3) 거룩한 공회

복음적인 교회가 사도신경을 암송하지 않으며, 매우 심각한 누룩으로 생각하고 있는 단어 가운데 하나는 'the holy catholic Church'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말 사도신경에서 '거룩한 공회'라고 번역되어진 것입니다. 물론 'catholic'이라는 단어가 우주적 혹은 보편적이라는 말로 번역되어질 수 있는 말이지만 어떤 사본에는 'The Holy Catholic Church'라고 번역되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는 고유명사로서 로마 카톨릭교회를 지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말 사도신경은 이것을 교묘하게 감추어 '거룩한 공회'라는 말로 감추어 보려고 하지만 공회라는 말이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이 모였던 '산헤드린 공회'외에는 쓰여진 적이 없으며, 교회와는 매우 다른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성도들의 눈속임을 위한 단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산헤드린 공회가 교회를 지속적으로 핍박하는 기관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말의 표현은 문제가 있음이 틀림 없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교회의 소유는 하나님이십니다. 중요한 사실은 교회가 믿음의 대상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종교는 오직 로마 카톨릭 교회뿐입니다. 그들은 교황과 교회, 그리고 성경을 동일한 권위에 두고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한국의 교회들이 ......거룩한 공회(혹은 교회)....를 믿사오며, 즉 교회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고백을 지속한다면 이는 교리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중대한 문제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말이 주님의 교회가 거룩하기 때문에 그렇게 고백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자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본래 이 말의 의도와 뜻이 그렇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본래 사도신경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면 당연히 "거룩한 카톨릭(천주)교회를 믿사오며"라고 고백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교회당의 건물이 자신들을 구원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이 동반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건물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카톨릭 교회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에서 자신들의 믿음과 관계없이 계속해서 거룩한 공회(카톨릭 교회)를 믿는다고 예배 시간마다 계속해서 암송하고 있다면 우리의 믿음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주님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영문 사도신경에는 'and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Father'라는 말을 삭제하여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위에서 생각해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현재 우리말 사도신경이 번역과정에서 다소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신경은 본래부터 하나님의 자녀들을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불손한 의도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말로 번역된 사도신경은 더욱 성경과 관계가 없거나 변개 된 상태에서 암송이 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은 오늘날 성경대로 살고자 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거짓된 진리로 인도하는 첨병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카톨릭 교회를 위한 고백서인 사도신경

 

우리는 사도신경이 아버지 하나님, 아들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을 믿는다고 고백한다고 해서 사도신경은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 있는 누룩을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는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 속에 카톨릭교회의 중요한 교리들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성경의 내용을 멋지게 포장해서 카톨릭 교회 안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1)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

많은 사람들은 이 고백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입니까?"라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매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경의 교리를 통째로 뒤흔들어 놓은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고백은 현재 성경을 최종, 혹은 유일한 권위로 삼고 믿고 있는 교회들은 모두 이단이고, 반대로 현재 이단으로 규정된 대부분의 교회들은 정상적인 교회로 공인할 수 있는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교묘하게 이 거짓 진리를 교회 안에 심고 있습니다.

누가 천지, 즉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까?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예!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천지를 만드셨고, 사람 또한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없고, 모든 것은 그분이 계획하셨고, 그분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 문제는 바로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하는데 있습니다. 성경을 조금이라도 깊이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천지, 즉 세상이 하나님 아버지 한 분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창1:1)

왜 성경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모든 창조 사역에 하나님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아들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기본적인 교리가 무너지게 된다면 우리는 성경의 많은 구절들을 삭제시켜야만 하고, 또한 심각한 혼란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감추어져 온 이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려 하심이라(엡3:9)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이는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음이요, 또 모든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음이니이다, 하더라(계4:11)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만을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 아들, 성령이 각자 다른 존재라고 주장하는 삼신론자들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고, 성령을 인격이 있는 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을 부인하는 자들이 가지는 자세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늘에 증거하시는 세 분이 계시기 때문이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한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5:7)

많은 성경들이 이 구절을 성경에서 삭제시켰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머리로 이 구절을 해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구절을 삭제시키고, 또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경 전체를 믿을 수 없는 책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Jehovah(여호와)"가 하나님의 이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Lord(주)"가 예수님의 속성만을 말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의 속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아버지 하나님을 지칭하지 않는 대부분의 단어들은 삼위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삼위일체 교리가 이단 판별의 기준이 되고 있을까요? 그것은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이 삼위일체 교리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매 주마다 사도신경을 암송함으로서 이 교리의 근본부터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천지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 즉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수많은 곳으로부터 그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지으신 분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동정녀

우리는 영문 사도신경의 내용 가운데 'born of the Virgin Mary'라는 단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말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고 번역된 것입니다. 영어 성경 KJV를 쓰는 분이라면 'Mary'에 대하여 단 한 번도 'Virgin'이라고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말로 번역 된 것과 같이 '동정녀'를 의미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녀가 전혀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임을 말하는 것이며. 카톨릭 교회가 주장하듯이 평생 처녀의 몸으로 살았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녀에 대하여 'virgin' 즉 처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Behold, a virgin shall be with child, and shall bring forth a son, and they shall call his name Emmanuel, which being interpreted is, God with us(마1:23)

To a virgin espoused to a man whose name was Joseph, of the house of David; and the virgin's name was Mary(눅1:27)

마리아는 우리가 같은 죄인이었으며, 예수님을 낳을 당시에 처녀였으며, 이후에는 요셉과 더불어 자녀를 낳았던 보통 여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은 이러한 일반적인 성경의 내용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마리아가 평생 남자를 알지 못하는 동정녀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상들을 기독교회에 누룩으로 심어서 그리스도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사상이 교회 안에서 암송되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카톨릭 교회의 가장 중요한 교리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에게 마리아가 보통의 여자였다고 주장을 하게 된다면 카톨릭 교회는 그야말로 뿌리부터 흔들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리아를 예수님보다 높은 위치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신경을 암송해야만 하겠다고 한다면 "동정녀"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마리아를 하나님보다 높은 위치에 두고 고백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조금 어색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처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고 고백한다면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처녀의 몸에서 나실 것이고, 또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예언대로 처녀의 몸에서 나셨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마리아는 "Virgin(동정녀)"가 아닙니다. 그녀는 "virgin(처녀)"였습니다.

3)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사도신경 속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중대한 사상은 'the communion of saints' 즉 우리말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라고 번역된 내용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말하는 'saints' 즉 성도들이라는 말은 죽은 자들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그들이 이 내용을 쓰게 된 것은 아직도 죽은 자들과 교제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로마카톨릭의 교리를 뒷받침 해 주는 중대한 교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카톨릭 교회의 가장 두드러진 신학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연옥'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죽은 후에도 바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대기 장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 이르기 위해서는 공로가 필요한데 그것은 많이 가지고 있는 자가 공로가 모자라 천국에 갈 수 없는 자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으므로 이미 연옥에 가 있는 자들 중에서 공로가 많은 자들에게 부탁을 해서 적은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바로 이러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흔히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성도들과의 교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들과의 교제(통공)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계속해서 암송하고 있다면 이는 로마 카톨릭의 연옥을 시인하고 믿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사람은 죽게 되어 있으며, 그 뒤에는 바로 심판이 있게 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연옥의 교리를 받아들이거나, 죽은 뒤에 바로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이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혼란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귀신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할 것이고, 굳이 살아서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고, 후대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혼을 의지할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오늘날의 교회들은 하나의 사업장과 같이 변해버리고 말 것이며, 진리를 자취를 감추고 그들은 구제와 봉사에만 열을 올리게 될 것입니다. 카톨릭 교회를 보십시오. 그들이 바로 이러한 일의 증거들입니다. 그들이 연옥의 교리를 버리지 않는 한 참 된 진리 안에서 구원은 없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결코 그들을 구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2:8-9)

왜 암송해서는 안 되는가?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성도들의 유익이 있는 것이라면 어떠한 것이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교회의 전통 가운데 많은 부분에 있어서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것들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리를 훼손시키고, 사악한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교회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이 과연 진리에서 벗어잔 것이 아닌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1) 교회 안의 의식인 사도신경

위에서 보았듯이 사도신경은 그 자체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누룩과 같은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우리의 신앙으로 자리잡게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로마 카톨릭의 회에 들어간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성경만을 유일한 권위로 삼는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사도신경을 암송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러한 거짓 교리들에 대하여 철저하게 분리시켰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 사도신경을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미 교회 안의 의식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 전의 일입니다. 많은 교회들은 이러한 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되고 있는지 확인해 볼 겨를도 없이 교회 안에서 받아들이고, 성도들에게 마치 진리를 요약한 것쯤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이 거짓 교리로 가득한 사도신경을 교회 안의 의식에서 분리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이 사도신경이 정작 강단의 설교와 일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욱 치명적인 상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들은 더욱 깊이 생각을 해야만 합니다. 만일 교회 안에서 이 사도신경을 먼저 암송해 놓고 정작 다른 교리의 내용으로 설교를 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광경이 연출되겠습니까? 사도신경은 교회의 의식에서 당연히 버려져야 하는 것이라고 하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교회와 설교자들을 위해 중요한 결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암송하는 행위에 대한 가르침

교회 안의 의식들을 통하여 암송하는 것들은 이미 익숙한 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히 카톨릭의 전통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들은 좀 더 경건하게 보이기 위하여 일정한 형식의 예배 의식을 갖추어야만 했고, 지금은 마치 기계와 같이 형식에 맞춰 가장 거룩하게 보일 수 있는 예배의 형식으로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예배의 형태가 기독교회 안의 중심에 들어와 지금은 카톨릭 교회와 기독교회를 구분하기 힘들만큼 형식에 의존하는 예배로 바뀌어져 가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만큼 희생을 치루어야만 하는데, 그것은 의식을 위하여 설교시간을 단축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속한 교회는 설교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기독교회에만 의식이라는 것이 있는가? 아닙니다! 모든 종교에는 의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로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종교일수록 그 의식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그들은 더욱 경건하고, 사람들의 눈에 보기 좋게 포장하여 의식을 진행합니다. 그들은 더욱 많은 내용들을 암송할 것이며, 그것이 매우 효력있는 것처럼 포장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주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주문과 같은 것들이 교회 안에서 암송이 되어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매우 끔직한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들과 같이 헛된 말을 되풀이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기 때문이라(마태복음6:7)

우리가 사도신경을 암송해서는 안 되는 것은 비단 그 내용이 불손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주님께서 그러한 것들을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암송되어지는 사도신경 외에 주기도문, 그리고 각종 고백서 내지 형식적인 기도들은 주님이 하지 말도록 경고한 것들입니다. 기독교는 사람의 행위로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종교와는 구별된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당연히 교회 안에서 마치 주문처럼 암송하는 일들은 사라지도록 해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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