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례 & 침례

조회 수 1523 추천 수 0 2010.06.07 17:57:32

이 때에 예수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르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려 하시더니 요한이 그분을 말리며 이르되, 내가 주께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주께서 내게로 오시나이까?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지금은 이렇게 되도록 허락하라. 이렇게 하여 모든 의를 성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그가 그분을 허락하더라.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 속에서 올라오실 때에, 보라, 하늘들이 그분께 열리고 하나님의 영께서 비둘기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내려앉는 것을 보시더니 또, 보라,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있어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마태복음 3:13-17)

세례냐? 침례냐? 우리는 이 당연한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해야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 당연한 진리에 대해서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침례가 가져다 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침례의 의미를 바로 깨달았다면 결코 세례라는 말은 쓰지 않았고, 행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침례가 가져다 주는 의미를 살펴봄으로서 바른 믿음을 갖는데 유익을 얻는 계기를 삼고자 합니다.

개역 성경에서 세례를 뜻하는 말인 Baptism의 뜻은 물에 완전히 잠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말 표기에 있어서도 세례라는 말의 표현보다는 침례라는 말로 표기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있어서 기억되어질 의식이 있다면 하나는 만찬이고 또 하나는 침례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 침례의식이 많이 변질되어 있으며, 심지어 행하지 않는 교회도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침례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바로 알아 그 의미를 깨닫고 말씀대로 온전하게 행하는 성도의 모습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요한의 침례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었으며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더라. 그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르단 강 사방의 온 지역이 그에게 나아가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라."(마3:4-6)

요한의 침례는 오늘날의 성도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침례의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그가 침례를 베풀기 전까지는 침례의식이 없었는데 그 까닭은 이스라엘 민족들의 죄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곧 그 백성들이 제사를 드림으로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깊은 선민 사상으로 인해서 복음을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이러한 백성들에게 마지막 대언자로서 정죄의 침례를 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요한이 주는 침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침례가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의식으로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침례인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이 심판의 침례를 계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이 무리 가운데 예수님이 계셨고, 예수님은 이 후로 다른 의미에서의 침례를 베푸시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요한이 베풀던 심판의 침례와는 의미를 달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침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자신은 물로 침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님과 불로 침례를 주시는 분"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나는 너희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려고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능력이 더 있으시매 나는 그분의 신을 드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시고 불로 침례를 주시리니"(마3:11)

이는 요한 자신이 정죄의 침례만을 베풀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요한 자신도 예수님께서 자신을 통해 받으시는 침례의식을 통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그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는 침례를 행함에 있어서 주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지금은 이렇게 되도록 허락하라. 이렇게 하여 모든 의를 성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그가 그분을 허락하더라"(마 3:15)

예수님의 침례를 행하심으로 심판을 받아야 모든 죄인이 의로와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요한에게 일깨워 주셨던 것입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오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로다"(요 1:29)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주라고 하신 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성령이 내려와 누구 위에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분인 줄 알라, 하셨기에"(요 1:33)

요한이 예수님에게 침례를 베풀기 전에는 요한 자신의 죄로 인해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없었으나 죄가 예수님에게로 넘어간 이후에는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만일 어린양을 죄 헌물로 가져오려거든 흠 없는 암컷을 끌어다가 그 죄 헌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사람들이 태우는 헌물을 잡는 곳에서 그것을 잡아 죄 헌물로 삼을 것이요"(레 4:32-33)

"그가 또 죄 헌물로 수소를 끌어오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죄 헌물 수소의 머리에 안수하매"(레 8:14)

"아론이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염소를 향해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법과 그들의 모든 죄로 말미암은 범죄들을 고백하고 그것들을 염소의 머리에 두어 적합한 사람의 손에 맡겨 그 염소를 광야로 보낼지니"(레 16:21)

요한은 레위 자손으로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로서 제사장이 되기 위한 나이인 30세를 넘긴 30년 6개월 째 되는 자로서 그가 침례의식을 통하여 예수님의 머리에 안수하도록 한 것은 예수님이 친히 제물 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일 요한이 이 의식을 집행할만한 자격을 가지지 못한 자였다면 예수님의 침례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침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그분의 제자들이 준 것이라. 이에 그분께서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 때에"(요 4:2-3)

예수님께서 침례를 주지 않으신 이유는 예수님 자신에게 죄가 이미 넘어가 버린 상황에서 더 이상 정죄의 침례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며, 만일 행한다면 죄를 다시 돌려놓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더 이상 정죄의 침례를 베풀 수 없도록 한 것도 이미 예수님에게 죄가 넘어갔기 때문이며 이미 율법의 마침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끝마침이 되시느니라"(롬 10:4)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가 행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볼로가 예수님에 관한 해박한 지식으로 사람들을 가르쳤지만 요한의 침례밖에 몰랐고(행 18:25) 에베소의 성도들이 열심히 모여 기도하고 성경도 보았지만 성령을 받지 못해 원인을 물었더니 요한의 침례만을 알았고, 비로소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후 성령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행 19:1-5) 그들은 결국 두 번의 침례를 받게 된 것입니다.

구약에서의 침례의 그림자

노아시대의 홍수는 옛사람이 홍수와 함께 장사되고 방주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음을 예표하고 있습니다(벧전 3:20-21).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로부터 가나안으로 오는데는 요단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히브리 민족이라고 합니다. 강은 심판을 의미하는 데 이는 그리스도의 모형인 것입니다. 모세라는 말의 뜻은 "물에서 건져내었다"라는 의미로 역청으로 칠해진 갈대상자 안에서 건짐을 받았는데 역청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사망의 물에서 건짐 받았음을 예언한 것입니다.
홍해 바다와 요단강을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은 사망의 길을 가로지르고 살아나는 침례의 모형인 것입니다(출 14:21, 수 3:17)

신약에서의 침례의식

초대교회의 성도의 수를 계산할 때는 언제나 침례를 받은 자의 수만을 헤아렸습니다(행 2:41). 그들이 복음 전함에 있어서의 최종적인 것은 언제나 침례를 행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받는 사람 3천명에게 침례를 주고(행 2:41),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믿는 자들에게 침례를 주고(행 8:12), 또한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동행하다가 침례를 준 후에야 헤어지는(행 8:35-39)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도 아나니아의 집에서 눈을 뜨고 침례를 받고(행 9:18), 고넬료의 집에서도 베드로는 침례를 주고(행 10:47-48), 루디아도 저와 그 집이 침례를 받고(행 16:15), 빌립보의 간수의 집도 침례를 받았습니다(행 16:33). 이와같이 초대교회는 구원과 동시에 침례를 받았으며, 그들만을 구원 얻은 숫자에 포함시켰던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

잘못된 침례 의식

서기 2세기 경에 잘못된 교리가 들어와서 침례가 구원이라는 이교사상을 퍼트려 기왕이면 일찍 구원을 받도록 하자고 해서 유아세례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확산되어 카톨릭은 426년에 유아세례를 법으로 정하고 어거스틴, 칼빈을 거쳐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행하고 있는 매우 잘못된 유전인 것입니다.

또한 침례가 아닌 세례(물을 뿌리는 것)도 콘스탄틴이 죽은 다음 그의 시체에 뿌리는 것이 시초였고 거듭난 경험도 없는 신하들에게 세례를 주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이들은 잘못된 침례에 대하여 말하는 재침례성도를 약 5천만 명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침례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구원의 간증입니다(롬 6:3-5). 만일 이것이 잘 못 행해지게 된다면 우리는 신앙의 엄청난 오류를 범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세례가 카톨릭 교회가 낳은 유산이라는 사실입니다. 전통적으로 참 된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베푼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신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카톨릭 교회는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완전히 처리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 까닭에 우리가 죄의 몸인 육신을 장사지내고 새 생명을 얻었다는 고백이 담긴 침례를 행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들이 이러한 신앙을 인정하게 된다면 카톨릭 교회의 뿌리는 완전히 뽑힐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례의 의미는 단순히 씻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지속적으로 남은 죄들을 씻어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는 카톨릭 교회의 교리를 위해서는 중요한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구원이 믿음으로만이 아니고 행위를 동반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오늘날 많은 기독교회들이 이러한 전통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오늘날 기독교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종교 개혁 이후에 나온 집단들이기 때문입니다. 루터, 칼빈, 쯔윙글리, 웨슬레 등 많은 이들이 카톨릭과 성공회 등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왔지만 카톨릭의 유산인 세례도 그대로 답습함으로서 오늘날의 교회는 또 다시 에큐메니칼을 통하여 또 다시 카톨릭 교회와 다를 바 없는 교회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침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가장 분명하고도 확실한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의식의 차원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어떤 극단주의자들은 침례가 구원이라고 가르치는 자들도 있지만 그것은 침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결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침례를 받지 않고도 구원을 얻은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침례는 신앙과 관련된 것입니다. 우리가 침례를 받은 것은 단순히 의식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고, 고백하는 간증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교회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세례"라는 누룩을 경계하고 그들이 바른 믿음 위에 성숙한 신앙에 이를 수 있도록 권면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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