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한국의 교회는 수많은 기도원이 세워진 적이 있습니다. 기도원은 대부분 병자들로 채워졌고, 전국의 병자들은 기도원으로 향했습니다. 기도원의 기능은 성도들의 경건한 삶을 위해서 존재하기보다는 마치 병원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마치 무당을 굿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금식을 시키고, 목사는 병자를 고치겠다고 주문을 외우듯이 방언으로 기도하며, 마귀를 쫓아낸다고 병자의 면전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무당들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현대인들은 우수한 의학 수준으로 인하여 대부분 병원을 찾아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무당의 가장 큰 기능 중에 하나가 바로 병을 고치는 일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어찌 보면 병 굿은 무속신앙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서 놀라는 것은 막상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면서 그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주 된 사역으로 보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 것은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보이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기적, 혹은 표적을 보고 믿을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을 마음으로 믿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신유의 은사가 주어진 것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대부분 개인의 사역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오히려 교회를 파괴하는 주범이 되고 있고, 친히 신유를 은사를 가진 목사들은 그 능력이 마치 자신에게서 나온 것처럼 과시하고 있습니다. 무당이 절대 권위를 가지고 병자들을 상대하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신유의 능력이 개인이 아닌 교회를 위해 주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