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의미(히13:4)

조회 수 3009 추천 수 0 2010.06.07 23:45:20

결혼은 모든 것 가운데 존귀한 것이요, 잠자리는 더럽히지 말아야 하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히13:4)

얼마 전 미국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것은 미국의 많은 크리스챤 가정들이 이혼하는 숫자가 날로 늘어간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한국의 교회로부터도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금 크리스챤 가정들이 무너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전체 이혼 가정의 평균과 크리스챤 가정의 평균이 거의 같다고 합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가장 기본 정신이 무너져 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은 사탄의 놀라운 계략에 오늘날 크리스챤들이 넘어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그야말로 놀라운 신비에 속하는 것입니다(엡5:32).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이 무시된 채 교회 안의 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작품인 결혼

누가 결혼 제도를 만드셨습니까? 그것은 결코 사람들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여자를 만드신 이후에 결혼 제도는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 남편에 한 아내의 원칙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기 아내"(his wife)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내가 남편의 소유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오직 유일한 한 아내의 개념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렇게 명령되어진 것이며, 하나님은 이 원칙을 한 번도 바꾸신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성경의 증거들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남자가 자기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창2:24)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막10:7)

우리는 사도 바울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것이 대단한 은혜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명쾌하게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젊은 여자들이 결혼해서 자녀들을 낳고 가정을 지키고 대적(對敵)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딤전5:14)

사실상 결혼제도는 매우 신비스러운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자가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결혼하지 않는 남녀가 남편과 아내의 마음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만약 알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추정하는 것이지 확실히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은 장차 우리의 신랑이 되실 분이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결혼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사탄의 작품인 일부다처제

아직도 이 세상에는 많은 민족들이 일부다처제도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가 어디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안다면 그리스도인들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철저히 사탄에 의해 계획되고 진행되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초기 역사에서도 일부 다처를 시도한 자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인의 후손이었던 라멕이라는 사람에 의한 것이었습니다(창4:19). 그러나 그의 행동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행동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일부 다처가 일반화되는 과정은 그 이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과 또 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자기들이 택한 모든 자를 아내로 삼으니라(창6:2)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여기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바로 타락한 천사들이었다는 점에 대하여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바로 타락한 천사들이 육체의 몸을 입고 사람의 딸들과 결혼을 하는데 중요한 사실은 "자기들이 택한 모든 자로 아내를 삼으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 명의 아내를 두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일들이 타락한 천사들, 즉 마귀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전통은 그들이 물로 멸망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가운데 계속되어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일부다처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국가라고 일컬어지는 국가들에는 오직 한 남편에 한 아내의 원칙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도 과거에는 일부다처제를 두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지금까지 성경에 근거하고 있지 않은 나라들은 대부분 일부다처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하십시오. 이 말은 일부다처가 하나님의 진리를 변질시키고, 대적하는 도구 가운데 하나님을 알아야만 합니다.

간음에 대한 경고

그렇다면 아내는 한 명을 두되 여러 명의 여자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물론 여기에 대한 답변도 당연히 "안됩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더욱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 창녀와 결합하는 자는 그녀와 한 몸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는 그분께서 이르시되, 둘이 한 육체가 되리라, 하셨음이니라(고전6:16)
결혼은 모든 것 가운데 존귀한 것이요, 잠자리는 더럽히지 말아야 하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히13:4)

남녀가 서로 결합하는 것은 곧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인신고의 여부로 결혼의 의미를 말하려고 합니다. 물론 법적인 결혼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결혼의 의미는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아도 되겠군요?"라고 질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더욱 나쁜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혼은 그 자체가 순결한 삶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혼인 서약도 없는 상태에서의 순결을 파괴시키는 것은 간음 못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간음을 엄중하게 경고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삶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유일한 신부는 바로 교회입니다. 주님은 오직 교회만을 사랑하시고, 또한 교회를 위해 죽기까지 하셨습니다(행20:28). 그러나 만일 교회가 주님 이외의 것들과 타협하고, 그들과 더불어 간음을 하게 된다면 이는 매우 통탄할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가 신실한 간증이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간음에 대한 경고를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순결을 지키는 것은 바로 주님의 마음을 바로 이해하고 있다는 또 다른 간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순결한 몸을 유지하면서, 또한 순결한 교회를 세워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혼한 사람에 대한 처신

나는 종종 훌륭한 전도자들의 예를 들어가며 결혼과 관련된 저의 이 소신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합니다. 그들은 "비록 이혼을 했더라도 훌륭하게 주님의 일을 감당했지 않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가령 스코필드와 같은 이들은 성경을 보존하고, 이해시키는데 대단한 공을 세운 분으로서 그가 이혼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가 쌓아 온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의 주변에는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 중에도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적 양식을 공급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도 부정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제아무리 훌륭한 복음 전도자였다고 할지라도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온전히 행하지 못했다면 당연히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의 절친한 친구 목사 한 분이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는 지금 아내와 별거 중이었습니다. 그의 고민은 아내가 자신의 사역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목회를 그만 두어야 할 만큼 심각하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자신과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를 요구하고 있지만 그는 바쁜 전도 일정으로 인하여 좀처럼 아내와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내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때로는 예배 중에 만취가 되어 예배당 안에서 추태를 부리는 일까지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사역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가정을 택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당연히 사역보다는 가정을 택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가정이 안정이 된 이후에 다시 사역을 해도 늦지 않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결정에 대하여 고민했고, 결국 이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이후로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목회 하던 교회는 자취를 감추었고, 그는 최소한 이 한국 땅 안에서 사역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에서 이혼의 명분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어떠한 명분으로도 이혼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성경에 분명하게 아내가 음행을 저지르게 되면 이혼을 해도 된다(마5:32,19:9)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 가지 점에서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음행의 연고로 이혼을 할 수 있다고 말한 내용이 마태복음에만 기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것이며, 그들은 여전히 율법 아래 있는 자들입니다. 같은 내용의 글이라도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음행에 대한 경고가 없이 이혼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시기를 바랍니다(막10:11-12,눅16:18).

또 하나는 호세아서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고멜이라는 여자가 끊임없이 음행을 저지르는 장면들을 봅니다. 당시 호세아는 이 사실을 알고도 그 여인을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호세아 자신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음행의 연고로 이혼을 합리화 시키려는 어떠한 시도가 있게 된다면 우리는 성경에서 "호세아서"를 제거해 버려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호세아는 음행한 여인을 데리고 살았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 일을 주도하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호세아서는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호세아서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혼을 허락하지 않으실까요? 물론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음행한 사실이 있다면 이혼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이혼을 허락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님은 그분의 교회를 결코 버리시지 않으시겠다는 의지를 보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사실이 있는 사람들을 결코 버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그들을 사랑하실 것이며, 그들을 신부로 받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는다면 그는 결코 이혼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경을 통해 권면하고 있는 것을 들어보십시오. 그는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령하노니 명령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주}시니라. 아내는 자기 남편을 떠나지 말라. 그러나 떠나게 되거든 결혼하지 말고 그대로 지내든지 아니면 자기 남편과 화해하라. 또한 남편도 자기 아내를 버리지 말지니라"(고전7:10-11) 결혼에 대하여 얼마나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까? 이혼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결코 합당한 일이 아닙니다.

재혼은 해도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만일 아내가 죽거나 남편이 죽으면 재혼을 해도 되는 것입니까? 물론 성경에서는 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만일 그녀가 자기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간부(姦婦)라 할 것이로되 그녀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해방되나니 다른 남자와 결혼할지라도 간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롬7:3)

저는 이 결혼이 때로는 매우 좋은 결실을 가져 올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부부는 두 분이 비교적 젊을 때 혼자가 되셨습니다. 그분들은 자식들이 장성할 때까지 홀로 지내다가 나이가 들어 자녀들을 출가시킨 후에 서로 만나서 결혼을 하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서로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마지막 남은 생애를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을 하다가 혼자보다는 둘이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두 분은 지금 결혼해서 태국의 한 소수민족들이 사는 마을로 들어가서 선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목사도 아니고, 또한 정식으로 누군가 인정해 주는 선교사도 아니지만 주님의 복음을 전하겠다는 열정만으로 지금 주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처럼 재혼은 새로운 삶을 위해 매우 중요한 동기를 부여해 주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말하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그들에게 좋으니라(고전7:8)

그러나 여전히 성경은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때로는 결혼을 통하여 훌륭하게 주님의 일을 수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세상적이고, 정욕적인 삶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한 남편에 한 아내의 원칙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알리고자 했던 주님의 의도가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별 후에도 혼자지내는 것은 비록 힘들겠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좋은 간증을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 일꾼이 되기 위한 가정의 기준

주님의 일꾼이 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모든 이들의 모범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벧전5:3). 그것은 주님의 일을 맡은 자들이 단순히 지식이나 능력만을 가지고 할 수 없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기준을 정해 두었습니다. 그것은 대부분 생활 가운데서 드러나는 것들입니다. 오늘날에는 적당한 학력에 사람들이 요구하는 수준에 도달하면 지도자로 세움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준은 다른 것입니다. 그 기준 가운데 지도자가 될 자가 가정에서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반드시 책망 받을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 깨어 있으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행실이 바르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는 재능이 있으며(딤전3: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을 잘 다스릴지니라(딤전3:12)

여기 "한 아내의 남편"이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지도자의 기준을 설정하는데 있어서 다른 것들은 대부분 객관적인 기준으로 분별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보통 사람들이 생각했을 때 "그 정도면..."이라고 생각하면 일단 기준점을 넘어 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만큼은 매우 명백한 것입니다. "한 아내의 남편"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이(엡1:22,4:15,골1:18) 오직 한 아내의 머리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엡5:23). 만일 교회의 지도자가 한 아내의 남편이 아니라 여러 명의 아내를 두었거나, 혹은 이혼을 통하여 다른 아내를 두었다면 이것은 주님의 교회에 대한 중요한 간증을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한 마디로 교회의 지도자로서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세움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교회 안의 성도들이 모두 순결해야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이혼을 했거나, 혹은 사별한 후에 재혼을 했다고 해서 교회에서 아무 일도 해서는 않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가 교회의 지도자로서 목사(감독,장로)나 집사로 세움을 받는데 있어서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말했지만 이혼, 혹은 재혼을 했더라도 주님의 일을 훌륭하게 잘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성경 안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지도자로 세움을 입는데 있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결혼의 영적 의미

이미 많은 부분에 걸쳐서 결혼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을 했습니다. 결혼은 한 마디로 두 몸이 하나로 결합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인격과 삶의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는 순간 둘은 더 이상 따로 나누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십자가로 그 원수 되게 하는 것을 멸하사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려 하심이라(엡2:16)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알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영적인 것이며, 또한 장래에 일어날 상징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모든 결혼에 대한 것들은 장래 주님과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내용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혼 생활을 통하여 주님 앞에 그 믿음을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다른 여러 경로들을 통하여 주님 앞에 인정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초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장래의 신랑으로 모시고 살게 될 때에 보여줄 수 있는 삶의 모양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단순히 육체적인 관계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결혼한 부부를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보이시기를 원하고 계시며, 또한 간증이 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보다 순결한 가정이 되기를 위하여 힘쓰는 가정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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