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된 바울은 나의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전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을지어다.


디모데 후서에 관하여 많은 이들이 저자와 수신자, 그리고 기록연대를 두고 이견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일치된 의견을 보이는 것은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마지막으로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1차 투옥이 되고 풀려난 후에 다시 2차 투옥 기간 중에 기록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1차 투옥에서 풀려난 후 4차 전도여행을 했을 것이라는 점에 있어서도 성경 안에서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디모데 전서와는 다르게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디모데에게 권면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제자들이 그의 곁을 떠났고, 또한 그의 사역 말기에 수많은 이단들, 특히 영지주의자들의 활동이 극성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 후서는 이러한 내용들에 관하여 매우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하며, 오늘날 수많은 이단들을 분별해내는 일에 매우 유용한 성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일깨워줍니다. 어떤 이는 서신서마다 자신의 사도됨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바울의 모습을 빗대어 굳이 디모데에게까지 자신의 사도됨에 관하여 설명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하여 의심을 품숩니다. 즉 이 서신이 바울의 서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말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사도라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설득시키려는 의도보다는 말이나 글이 자신의 생각에서부터 온 것이 아닌 주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가르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언제나 주님 편에서 말하였고, 그것이 사도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해 가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이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1)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바울은 자신의 의지로 사도가 된 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자였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예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에게 바울에 대하여 소개하기를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나의 이름을 증언하기 위하여 택함 받은 그릇이니라”(행9:1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로도 바울의 행보는 매우 특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의지로 부르심을 받은 자답게 스스로 고백하기를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거의 죽음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에 대한 너희 섬김의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빌2:30)고 말합니다. 이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서신을 통해서 매우 특별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를 “나의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2)이라고 불렀다는 점입니다. 그는 이미 디모데전서를 통해서 “믿음 안에서 내 아들”(딤전2:1)이라고 부른 적이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디모데를 보내면서 썼던 표현은 그가 얼마나 디모데를 사랑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디모데를 소개할 때 “그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주 안에서 신실한 자라.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길들,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너희에게 기억나게 하리라”(고전4:17)고 말합니다. 디모데는 비록 젊은 사역자였지만 바울은 그에 대하여 매우 큰 신뢰와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이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바울과 디모데의 만남은 매우 특별합니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에서 루스드라 지역을 지날 때에 디모데를 만납니다. 이 때 디모데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은 디모데에 대하여 소개하기를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서 좋은 평판을 받는 자더라”(행16:1-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때 바울은 디모데를 데리고 갔고, 그 일을 위해서 할례를 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행16:3). 그 때 이후로 바울과 디모데는 언제나 동역하는 자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바울과 동역자의 관계를 지속하며 사역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아들과 같이 생각했던 것은 이처럼 어려운 시간들을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주변 사람들은 이미 훈련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나바나 실라, 그리고 의사 누가와 마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동역자들은 이미 충분한 훈련을 받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전도여행 중에 만났던 자였으며, 디모데는 지역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았던 자였지만 젊은 사람으로서 아직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자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사역을 하는 동안 성장해 갔을 것이며, 많은 지역으로 그를 보내서 사역을 하게 함으로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또한 바른 복음을 전달하는데 힘쓰도록 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디모데를 보내면서 “내가 너희의 형편을 알므로 주 예수님 안에서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 나도 위로를 받고자 함이라”(빌2:19)고 말합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에베소 교회나 고린도 교회에도 자신을 대신하여 디모데를 보내는 장면을 통해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오히려 디모데는 바울을 자신의 아버지와 같이 여겼던 자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디모데의 됨됨이를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듯이 그는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빌2:22)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아들과 같은 마음으로 대했다면, 디모데는 바울을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섬겼습니다. 이는 주님의 일을 하는 과정에서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바울이 성도들을 섬김에 대하여 헌신적이었던 것처럼 디모데로 바울의 사역에 협력하여 열심히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이러한 섬김이 결국에는 많은 결실을 가져다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는 바울이 감옥에서 죽기 직전에 쓴 글입니다. 이 편지가 의미가 있는 것은 수많은 제자들과 동역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현재 상태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떠났고 그레스게은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느니라. 오직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딤후4:10-11)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곁에는 누가 이외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믿을만한 제자이며, 아들과 같았던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통하여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가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디모데는 누구보다도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동역자였음이 분명합니다. 심지어 바울은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에서 가보에게 맡겨두었던 겉옷을 가져오고 책은 특별히 양피지로 된 것을 가져오라”(딤후4:13)고 말함으로서 생활용품을 가져 올 것을 말하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허물없이 지내는 관계인가를 보여줍니다. 바울과 디모데를 통하여 동역자들의 신뢰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주님의 일을 풍성학 만들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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