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10) 구타하지 아니하며

조회 수 911 추천 수 0 2013.01.29 15:58:46

 

1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3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딤전3:1~7)

 

감독의 조건 가운데 구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있다는 것이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사역자는 경건하여 전혀 구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독의 직분을 맡은 사람들 가운데 구타를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구타, 즉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감독에게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많은 이들을 실족시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이르시기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6:1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노아의 때에는 이미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 즉 폭력이 땅에 가득했습니다(6:11).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부패함의 결과는 폭력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독이 폭력을 피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매우 미워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11: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가 감독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에게 많은 일을 맡기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맡은 일마저도 빼앗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므나의 비유(19:12-27)와 달란트의 비유를 통하여 그들이 사역을 온전하게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을 빼앗아 다른 종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설교하셨습니다.

 

대부분의 구타는 힘이 있는 자가 약한 자를 향해서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것보다도 가장 비겁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감독에게 있어서는 더욱 있을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섬기는 위치에 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구타, 혹은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곧 상대방에 대하여 군림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종이 주인에 대하여 폭력을 행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러한 일들이 발생된다면 그들은 반드시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원의 농부들에 대한 비유(20:8~18)를 통하여 이와 비슷한 상황에 대하여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겼으나 주인이 보낸 종들을 죽이고, 심지어 아들까지 죽이는 과정에 대하여 소개하면서 그들의 폭력성에 대하여 말하고, 그들을 반드시 심판하시게 될 것에 대한 가르침을 통하여 사람들의 사악함과 폭력성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포도원의 주인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하여 다른 종들을 보냈다는 사실과 심지어 아들까지 보내어 포도원을 맡은 농부들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게 하시기 위해 힘썼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폭력을 통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려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사람들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분의 참으심에 대하여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결국 세상에서 먼지와 같이 사라져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며, 그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들 앞에 죽음이라는 거대한 공포가 다가왔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폭력이나 구타는 반드시 사람의 몸을 해쳐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말과 위협도 얼마든지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안겨다 준다면 그것은 이미 폭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모든 행동에 대하여 그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간혹 주변에서 사회에서 범죄자로 살다가 어느 순간 부르심을 받고 사역자(감독)의 일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입으로 고백하기를 죄 많은 자를 구원하심에 대하여 감사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고 고백합니다. 실제로 거듭난 이후로 새로운 인생을 사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바울과 같이 믿는 자들을 핍박하다가 주님을 만난 이후로 전적으로 헌신하는 인생을 사는 자들을 종종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여전히 과거에 가졌던 습관들을 버리지 못하고 사람들을 위협하거나 협박하고, 이러한 방법으로 교회 안에 사람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역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교회 안에 성도들에게는 매우 거룩한 것처럼 보이면서 실상 가정에서는 구타(폭력)을 일삼고, 악한 모습을 그대로 가진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역자들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들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부패에 관하여는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많이 행해지는 것이 바로 구타(폭력)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각종 사회봉사시설이나, 각종 단체에서 좋은 이미지를 가진 자들도 있습니다. 한 가지 의심스러운 것은 그들이 과연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는지에 대한 것과 심지어 구원을 받았는지조차 의심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구타(폭력)를 하지 않는 것은 사역자의 기본 조건입니다. 만일 그러한 습관들이나, 또한 스스로의 다짐이 없다면 그는 감독이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성경은 의로운 자와 비교하여 폭력을 행하는 자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의로운 자에 대하여는 복이 있으며, 그들의 입은 생명 샘과 같지만, 폭력은 사악한 자의 입을 덮어버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0:6,11). 어떠한 이유로든 구타나 폭력을 수단으로 삼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될 것이 분명하며,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할 자격이 없는 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곳에서나 적용되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의 눈에 보기에 선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모든 행동은 하늘에 기록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사들을 동원하여 핍박하는 모든 자들을 멸하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스스로 순한 어린양과 같이 끌려가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결코 힘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믿고 있는 힘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스스로 약해지고, 낮아진 자세를 가졌을 때, 가장 강한 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생각한다면 구타, 혹은 폭력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자는 가장 약하며, 미련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결코 인정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돌보는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니 이것은 그가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딤전3:1~7)

 

감독의 조건 가운데 구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있다는 것이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사역자는 경건하여 전혀 구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독의 직분을 맡은 사람들 가운데 구타를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구타, 즉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감독에게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많은 이들을 실족시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이르시기를 모든 육체의 끝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이는 땅이 그들로 인해 폭력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라. 보라,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6:1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노아의 때에는 이미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폭력이 땅에 가득했습니다(6:11).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부패함의 결과는 폭력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독이 폭력을 피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매우 미워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주께서 의로운 자는 단련하시되 사악한 자와 폭력을 사랑하는 자는 그분의 혼이 미워하시는도다”(11: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가 감독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에게 많은 일을 맡기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맡은 일마저도 빼앗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므나의 비유(19:12-27)와 달란트의 비유를 통하여 그들이 사역을 온전하게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을 빼앗아 다른 종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설교하셨습니다.

 

대부분의 구타는 힘이 있는 자가 약한 자를 향해서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것보다도 가장 비겁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감독에게 있어서는 더욱 있을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섬기는 위치에 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구타, 혹은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곧 상대방에 대하여 군림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종이 주인에 대하여 폭력을 행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러한 일들이 발생된다면 그들은 반드시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원의 농부들에 대한 비유(20:8~18)를 통하여 이와 비슷한 상황에 대하여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겼으나 주인이 보낸 종들을 죽이고, 심지어 아들까지 죽이는 과정에 대하여 소개하면서 그들의 폭력성에 대하여 말하고, 그들을 반드시 심판하시게 될 것에 대한 가르침을 통하여 사람들의 사악함과 폭력성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포도원의 주인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하여 다른 종들을 보냈다는 사실과 심지어 아들까지 보내어 포도원을 맡은 농부들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게 하시기 위해 힘썼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폭력을 통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려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사람들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분의 참으심에 대하여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결국 세상에서 먼지와 같이 사라져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며, 그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들 앞에 죽음이라는 거대한 공포가 다가왔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폭력이나 구타는 반드시 사람의 몸을 해쳐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말과 위협도 얼마든지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안겨다 준다면 그것은 이미 폭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모든 행동에 대하여 그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간혹 주변에서 사회에서 범죄자로 살다가 어느 순간 부르심을 받고 사역자(감독)의 일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입으로 고백하기를 죄 많은 자를 구원하심에 대하여 감사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고 고백합니다. 실제로 거듭난 이후로 새로운 인생을 사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바울과 같이 한동안에는 믿는 자들을 핍박하다고 주님을 만난 이후로 전적으로 헌신하는 인생을 사는 자들을 종종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여전히 과거에 가졌던 습관들을 버리지 못하고 사람들을 위협하거나 협박하고, 이러한 방법으로 교회 안에 사람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역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교회 안에 성도들에게는 매우 거룩한 것처럼 보이면서 실상 가정에서는 구타(폭력)을 일삼고, 악한 모습을 그대로 가진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역자들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들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부패에 관하여는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많이 행해지는 것이 바로 구타(폭력)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각종 사회봉사시설이나, 각종 단체에서 좋은 이미지를 가진 자들도 있습니다. 한 가지 의심스러운 것은 그들이 과연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는지에 대한 것과 심지어 구원을 받았는지조차 의심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구타(폭력)를 하지 않는 것은 사역자의 기본 조건입니다. 만일 그러한 습관들이나, 또한 스스로의 다짐이 없다면 그는 감독이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성경은 의로운 자와 비교하여 폭력을 행하는 자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의로운 자에 대하여는 복이 있으며, 그들의 입은 생명 샘과 같지만, 폭력은 사악한 자의 입을 덮어버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0:6,11). 어떠한 이유로든 구타나 폭력을 수단으로 삼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될 것이 분명하며,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할 자격이 없는 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곳에서나 적용되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의 눈에 보기에 선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모든 행동은 하늘에 기록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사들을 동원하여 핍박하는 모든 자들을 멸하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스스로 순한 어린양과 같이 끌려가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결코 힘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믿고 있는 힘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스스로 약해지고, 낮아진 자세를 가졌을 때, 가장 강한 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생각한다면 구타, 혹은 폭력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자는 가장 약하며, 미련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결코 인정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돌보는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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