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그러나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런 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라 좇으라.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원한 생명을 붙들라. 이것을 위하여 너도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고백을 하였느니라.

13 만물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눈앞에서 그리고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선한 고백을 증언하셨던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내가 네게 명하노니

14 너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 때가 이르면 그분께서 보이시리니 그분은 찬송 받으실 유일한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라.

16 오직 그분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못할 빛에 거하시며 아무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시니 그분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바울은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호칭에 관하여는 누구에게나 붙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이러한 호칭이 불린 자들로 모세(신33:1,대상23:14)나 스마야(왕상12:22)가 있고, 그 외에도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한결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고, 또한 그분의 명령을 따라 말씀을 전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사람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성령과 함께 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곧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사람에 대하여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들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7)고 말씀하심으로 무엇을 기대하고 계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앞에서 돈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에 대하여 경고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피하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직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라 좇으라”고 말합니다. 특히 디모데는 비교적 젊은 사역자였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너는 청년의 정욕들을 피하고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2:22)고 말함으로서 디모데에게 보다 순수한 사역자로서의 길을 걷도록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 즉 돈을 사랑하고 이것을 탐내는 것과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라 좇는 것과는 매우 상반되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돈을 사랑하고 탐내는 자가 결코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사역자에게 있어서는 매우 치명적인 독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당부하는 것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지고 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입니까? 바울은 이미 앞에서 권면하기를 “내가 너에게 준 예언에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라”(딤전1:18)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곧 싸움의 도구가 이미 전해진 말씀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귀와의 싸움에서 오직 말씀으로 싸우셨습니다(마4:1-11). 세상의 지식이나 명예, 권세를 이용하여 싸우려 한다면 그것은 곧 실패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싸우려 한다면 그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세상에서는 실패할 수 있을지라도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듣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싸움을 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준비가 되어야만 합니다. 무기만 준비해서 훌륭한 군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충분한 훈련을 해야만 합니다. 성경은 “이기려고 애쓰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느니라”(고전9:25)고 말씀합니다. 또한 “너희가 잠시 고난을 당한 후에 너희를 완전하게 하시고 세우시며 힘주시고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5:1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군사는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많은 시간을 훈련하고 연단의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싸움의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군사로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지식만으로 믿음의 승리를 맛볼 수 없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만으로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하는 까닭은 바로 그가 더욱 겸손한 자세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말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붙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디모데의 싸움이 결코 세상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것만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전쟁에 나서는 군사가 자신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그는 결코 훌륭한 군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가 전쟁을 나서는 목적은 오직 나라와 민족, 그리고 좀 더 범위를 좁혀본다면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입니다. 이는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군사가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면 그는 이미 군사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싸워야만 합니다. 그는 그 일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영원한 생명을 붙들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장차 놀라운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상을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디모데뿐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고, 또한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고백을 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에 대하여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로부터 “네가 왕이냐?”라는 질문을 받고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하였도다. 이를 위하여 내가 태어났고 또 이러한 이유로 내가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다. 진리에 속한 자마다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18:3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증언하셨던 선한 고백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부터 오는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해야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스스로 증언하고, 또한 보일 수 있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은 그들의 말과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볼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증언하셨던 것은 곧 그분 자신이 왕, 즉 메시야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선한 고백이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과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 까닭에 성경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시인하고 순종한 것과 또한 그들과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이 나누어 준 것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느니라”(고후9:13)고 말씀합니다. 복음을 지키고, 그것들을 전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인의 바른 본분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들에 대하여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14)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그분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립니다.


여기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오셨다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이 재림 주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들은 명백하게 “이단”으로 규정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복음 안에서 논쟁하는 자들조차도 환난 전에 주님의 교회가 휴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과 환난이 끝난 후 예수님이 지상에 재림하실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지금 이 시대가 곧 환난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논쟁은 수세기를 통하여 논쟁이 되어 온 것으로 지금까지 다루고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오시는 시점이 언제인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14)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보다는 장차 다기 올 세상에 대하여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그러므로 내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그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마6:34)고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생각하기에 앞서 경건한 삶을 계속하고 있는지 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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