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에서 승리하려면(디모데전서1:18-20)

조회 수 2675 추천 수 0 2010.06.08 00:13:21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의 일을 하는 자라면 누구나 승리하기를 소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시대에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이 많지를 못하며, 대부분 싸움에 대한 의욕을 잃고 적당하게 타협을 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세상이 마귀의 지배아래 있다는 것이며, 세상은 우리의 싸움의 대상이며, 우리는 영적 전쟁터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서의 삶을 마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말씀들에 의지하여 선한 싸움을 하라.

바울은 먼저 주어진 예언을 따라 그 자신이 전해 준 말씀들을 의지하여 선한 싸움을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바울에게 있어서도 매우 의미 있는 것입니다. 그는 주님을 만난 이후로 평생을 이 싸움 속에 살았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

바울이 자신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싸움으로 표현한 것은 매우 의미 있습니다. 싸움에는 반드시 그 대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싸우고 있는 대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는 영적인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몸(육체)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영적인 싸움은 당연히 마귀들로부터 옵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을 심을 것이며, 우리의 상식과 환경에 관계없이 죄를 짓도록 유혹합니다. 그는 영적 존재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부터 멀어졌을 때 그의 강력한 능력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장악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우리가 주님께 모든 싸움을 의지하고, 굳게 붙들었을 때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싸움입니다.

또 하나의 싸움은 바로 자신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의 자랑을 위해 살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결코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의 모양들이 드러남으로서 우리는 더욱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싸워가야 하는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살후2:15)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싸울 수 있는 것입니까? 그에 대한 답은 바로 성경을 통하여 가르치고 있는 말씀들을 굳게 붙드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서도 선한 싸움을 통하여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없습니다. 어떤 이는 싸움을 위해 산으로 올라가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훌륭한 선생에게서 배우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답은 오직 성경 안에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답을 제공해 주고 있으며, 우리는 다만 그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는 삶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2. 믿음을 붙들라.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하는 사역의 승리 비결은 믿음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왜 믿음을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믿음에서 떠날 수도 있다는 가정에서 나온 권면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어떤 자들이 믿음에 관하여 파선했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딤전5:12)

우리가 가진 처음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복음이었습니다.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에 관한 것입니다(고전15:1-3). 교회 안으로 들어 온 자는 대부분이 바로 이러한 복음의 말씀을 듣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복음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딤후2:18)

초대 교회 안에서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성도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 믿음은 정말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썩어질 육신 때문에 주님을 믿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 이 세상뿐이면 우리가 얼마나 불행한 자입니까?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

오늘날에는 사탄이 더욱 교활한 방법으로 성도들을 믿음의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과 상관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이들로부터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을 가르치기도 하며, 또한 하나님의 의지와 약속에 따른 은혜와 관계없이 사람의 의지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처음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단순한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 믿음 안에서 생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13:7)

물론 우리는 교회 안에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또한 혼란을 줄만한 많은 거짓 진리들에 대하여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더 신중하다면 성경의 말씀을 따라서 행동하면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우리 가운데 믿음의 본이 될 만한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따르는 것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

바울은 그 자신이 믿음을 지키는 일을 위해 매우 수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자신을 본 받으라고 권면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생애가 평안하고, 형통했기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는 분명히 많은 지식과 명예와 권세와 부요함도 누릴 수 있는 자였지만 스스로 이 모든 길들을 포기하고 오직 믿음을 지키는 일을 위해서 수고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많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며, 사역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입니다.


3. 선한 양심을 붙들라.

바울은 양심의 문제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 양심은 분명히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속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발 짝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본다면 사람의 마음 안에서 선한 양심과 악한 양심이 공존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선한 양심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한 양심은 어떠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13:18)

먼저는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결코 일반 사회단체나 사업장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에 대하여 매우 혼란스럽게 생각합니다.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 약간의 거짓말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소유이며, 주님은 거짓을 말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모든 일을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어야 하며, 매사에 정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16)

또한 선한 양심은 비난과 비방하는 행동과 반대되는 개념을 포함합니다. 비난과 비방은 결코 선한 양심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악한 마귀들의 방법이며, 또한 육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드러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한 양심을 가진 자들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성경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자세를 취할 것입니다. 순종하지 못하고 비난과 비방하는 생활을 즐기는 자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사는 성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23:1)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선한 양심을 다하여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한 양심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생활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사는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매사에 하나님 없이 자신의 의지와 뜻대로 살고자 한다면 그가 아무리 교회에서 열심을 다하고 많은 헌금과 봉사의 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는 선한 양심을 따라 사는 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살전5:21)

물론 선한 것은 우리의 눈에 쉽게 들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 까닭에 성경은 범사에 헤아리도록, 다시 말하면 시험해 보도록 권합니다. 특히 마귀들은 교회 안에서 많은 이들을 유혹하여 악한 것들을 선하게 보이도록 하고, 또한 거짓 교리들을 가르침으로서 성경을 의심하도록 하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선한 것들을 바르게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당연히 사역자들과 성도들은 이러한 시험의 기간들을 인정하고, 선한 것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에 굳게 잡을 수 있는 믿음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벧전3:21)

우리는 베드로를 통하여 선한 양심과 관련된 흥미로운 구절 하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례가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응답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세례라는 의식을 해야 선한 양심을 가졌다는 것입니까? 물론 세례가 구원이라는 주장을 하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구절이 매우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구절이 아닙니다. 바로 선한 양심은 바로 세례 신앙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세례신앙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복음이며, 복음은 바로 에수님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에 관한 것입니다. 모든 선한 양심은 바로 이러한 신앙의 기초위에 세워질 것입니다.


4. 후메네오와 알렉산더

바울은 특별히 에베소 교회 안에서 문제가 있는 두 사람의 이름을 거론 하며, 그들을 사탄에게 내어 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로서 더 이상 교회 안에서 그러한 것들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극단적인 조치를 한 것입니다. 그들이 교회 안에서 어떠한 일들을 통하여 이처럼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까?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딤후2:17)

후메내오에 관하여는 그가 말을 통하여 마치 궤양이 파먹은 것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말하기를 좋아한 자였던 것 같습니다. 궤양은 구강 ·식도 ···방광 ·담낭등 소화와 관련된 모든 기관에 퍼져 있는 것으로 정상적인 소화가 되는 것을 막습니다. 후메내오는 성도들이 정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소화시키는 일을 막는 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가장 극심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변개된 성경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기록된 성경을 가지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성경을 임의로 해석함으로서 성도들이 바른 성경을 가지는 것을 막는 말들을 마구 쏟아놓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후메내오와 같은 자들이며, 결국 사탄의 도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딤후4:14)

알렉산더는 후메내오와는 달리 행동에 있어서 매우 교회를 힘들게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특히 바울을 매우 힘들게 함으로서 사역을 방해했던 자였습니다. 바울은 그도 사탄에게 내어 준 바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그의 행위대로 갚으시기를 원한다는 말을 남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교회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역을 방해하는 일을 계속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사역자의 일에 대하여 사사건건 간섭하고, 힘들게 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그것이 때로는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보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그러한 행동이 교회에 주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만 합니다. 사역자는 주님의 의해 세워진 종입니다. 만일 성도가 사역자의 인도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한다면 그는 곧 주님의 명령에 대하여 불순종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알렉산더를 사탄에게 내어 주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엄격한 원리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역자의 인도를 따르는 훈련이 되어야만 하며, 사역자는 본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써야만 할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4 감독(14)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이진천 2013-04-27
23 감독(13) 다투지 아니하며 이진천 2013-04-06
22 감독(12) 오직 인내하며 이진천 2013-03-16
21 감독(11)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이진천 2013-02-23
20 감독(10) 구타하지 아니하며 이진천 2013-01-29
19 감독(9)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딤전3:1~7) 이진천 2013-01-19
18 감독(8) 가르치기를 잘하며(딤전3:1~7) 이진천 2012-12-29
17 감독(7)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며(딤전3:1~7) 이진천 2012-12-14
16 감독(6) 단정하며(딤전3:1~7) 이진천 2012-12-01
15 감독(5) 맑은 정신을 가지라(딤전3:1~7) 이진천 2012-11-17
14 감독(4) 깨어있으라(절제하라)(딤전3:1~7) 이진천 2012-10-26
13 감독(3) 한 아내의 남편(딤전3:1~7) 이진천 2012-10-13
12 감독(2)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자(딤전3:1~7) 이진천 2012-09-29
11 감독(1) 선한 일을 사모하는 자(딤전3:1~7) 이진천 2012-09-15
10 교회 안에서의 여자(딤전2:9~15) 이진천 2012-08-29
9 거룩한 손을 들어(딤전2:5~8) 이진천 2012-08-17
8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딤전2:3~4) 이진천 2012-08-03
7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디모데전서2:1-2) 이진천 2010-06-08
» 사역에서 승리하려면(디모데전서1:18-20) [1] 이진천 2010-06-08
5 맡겨진 사역(디모데전서1:12-17) 이진천 2010-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