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 (데살로니가 전서 1:4-7)

 

한 세기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희망을 안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도 합니다. 특히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랄 것도 없이 더욱 더 근신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로 분주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동일한 모습으로 깨어 기도하며 재림의 신앙을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의 신앙은 성숙되어 갈 것이며, 훗날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지난주에 이어서 우리의 교회가 가야 할 방향과 감수해야 할 신앙적 도전을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교회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4)

 

이 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수억 명에 이르지만 택하심을 입은 자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실은 우리가 접하는 그리스도인의 상태를 비교하지 않더라도 성경을 통해서 얼마든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세계에 유수한 민족들이 있지만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 유태인을 꼽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들의 우수성이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는 데 적합하다고 판단되어 그들 민족을 쓰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들의 잠재적인 가능성이 하나님이 쓰시는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즉 유태인들을 택하셨던 것은 우수성이나 가능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들을 택하신 것은 오직 그들의 수가 적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7)

 

예수님께서도 산상 설교를 통해서 생명을 얻은 자가 매우 적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예수 믿으면 구원'이라는 매우 단순한 내용의 복음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생명을 취한 이는 매우 적습니다. 이는 마치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은 했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떠나 부인하고 심지어 저주하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비록 귀로 듣고 입술로 고백했지만 자신의 육신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 예수님을 뒤로하고 떠나가는 모습은 개인주의, 기복 신앙에 젖어 있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경종을 울릴 만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자신은 진정 구원받았노라고 주장하지만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교회에서 한 지체로서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면 그의 구원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이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하나님이 사랑하고 계신다는 분명한 증거를 보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택함을 입은 교회가 되겠다고 노력해서 택함 받는 것은 아닙니다. 택함 받거나 받지 못하는 것은 주님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문제를 분명하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택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복음 전도자인 바울의 눈으로 볼 때도 사랑 받으며 택함을 입은 교회로 비춰졌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한다는 사실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알리므로 많은 이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써의 덕을 끼칠 수 있도록 최선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복음이 함께 하는 교회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5)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복음은 그 내용이 매우 단순한 것이어서 어느 누구나 듣고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아는데서 멈춰 버린다면 그는 복음과 상관이 없는 자입니다. 참 복음은 반드시 능력과 성령과 확신을 동반합니다. 즉 복음은 마음에 뿌려진 씨와 같아서 자라고 열매를 맺어 풍성케 하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아서 우리를 온유하고 겸손하게 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고, 거룩한 삶으로 인도해 갑니다. 어떤 이는 불행하게도 복음을 아는 것과 삶을 분리하여 해박한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건전치 못한(덕스럽지 못한)생활을 하고 있음을 봅니다. 복음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능력이 없다면 구원시킬 능력 또한 없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삶에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내가 받은 복음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분별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사실이 있다면 우리 스스로 거룩해지려는 노력을 통하여 복음을 가장한 능력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자칫 '율법주의'신앙으로 변질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들의 신앙은 절대로 같은 분량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 안에 있는 복음(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그 능력을 드러내야 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우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이 물질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자세를 가져서는 안되며, 마술사 시몬과 같이 성령의 능력을 물질로 사려는 시도조차 해서도 안되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같이 서로 높은 자리에 앉겠다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참 복음을 가진 자들은 세상의 것들을 모두 버리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사는 자들입니다. 바울도 복음을 안 뒤 세상의 명예, 권세, 지식, 물질 등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고, 부자였던 바나바도 복음을 안 뒤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나누어 준 뒤 복음 전도자가 되었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루살렘 교회의 왕성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자리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에게 넘겨주고 복음을 전하다 대부분 순교를 당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복음 전도자들이 마치 사회적으로 큰 명예를 얻은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래서 교단을 만들고 회장을 뽑고, 신문 지면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것을 큰 자랑거리로 삼습니다. 그러다 자신의 존재가 조금 위협을 받고 따돌림의 대상이 되면 이전 투구의 양상으로 치닫는 모습을 흔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없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 봐서는 복음이 없는 거짓 전도자임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거짓 전도자들의 틈에서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또한 복음을 가장한 거짓 교회 속에서 서 있습니다.

 

그들을 분별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 입니다. 그들의 삶속에 복음의 능력이 함께 하고 있는지, 성령이 과연 그들의 삶을 인도하고 있는지,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참 복음을 가지고 온전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우리의 삶이 복음으로 무장되고 삶을 변화시켜가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환난 가운데 말씀을 받는 교회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6)

 

어린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보면 참으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변화를 겪을 때마다 아프면서 자란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들은 이 병원, 저 병원을 쫓아다니며 분주하지만 병이 나은 후 아이를 바라보면 한결 성숙해진 모습을 보고 대견해 합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성장은 동일한 원리 속에서 자라 갑니다. 고난과 핍박이 없이 성숙한 신앙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의 순교가 없었다면 오늘날 교회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대한민국에도 선교사들의 목숨을 건 사역이 없었다면 이 땅에 복음은 결코 자리잡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희생과 순교의 역사를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의 교회가 서 있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실상 지금 우리의 현실은 '환난'이라는 말을 거의 잊은 듯 합니다. 이미 교회는 사회적으로는 영향력 있는 단체로 인정받고 있고 목회자는 대부분 지역의 유지들이며, 몇몇의 목회자를 제외하고는 물질적으로도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미 젊은 사람들에게 목회자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며 신학을 하겠다는 목회자 후보생이 넘쳐서 이제는 성적순으로 후보자를 선발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과거에 5-6명 정도의 목회자 후보생을 두고 성경을 가르치며, 전국의 지역을 대상으로 전도 여행을 하며, 산에 올라가 손을 잡고 밤을 세워 기도하던 때는 이제 옛날 이야기 처럼 들립니다. 우리는 지금 어떠한 핍박이나 제한 없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을마다 우후죽순처럼 세워지고 있는 십자가 불빛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에게 환난이 닥쳤을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그 날은 머지 않아 닥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단이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도 사단은 교묘한 방법으로 교회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거짓 교회가 참 교회를 핍박하는 형태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갈 4:29)

 

기복 신앙, 자유주의 신학, 율법주의 사상, 인본주의 등으로 무장한 거짓 교회들이 무차별적으로 세상을 공략해서 그들은 세상 속에 정통 복음주의 교회로 가장하여 세상에 우뚝 서 있습니다. 그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 위에 선 순수한 복음 교회를 핍박하기 위한 계략을 드러낼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백성들은 거짓 교회의 편이 되어 핍박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 11:3,4)

 

백성들은 달콤한 거짓 전도자의 말에 현혹될 가능성이 더욱 많습니다. 그들이 미혹됨에 그치지 않고 핍박자로 변할 것이라는 점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깨어 있도록 요구합니다. 지금도 사단은 교회 안으로 거짓 진리를 유포하여 그리스도인들을 현혹하는 형태로 핍박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육체를 핍박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려던 사단의 계략이 이제는 거짓 영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환난의 새로운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분명해 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교회 내에서 거짓 영, 거짓 진리를 찾아내어 구별하고, 장차 다가올 환난에 대비해 가는 것입니다. 깨어 근신하는 자가 온전히 보호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더욱 말씀을 사모하고 의지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7)

 

우리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통해 주목해서 볼 것은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자신들의 선행을 기초로 해서 교회가 본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각종 구제 사업, 봉사 활동, 사회 사업 등이 교회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회의 각종 단체의 구성 주체가 교회로부터 출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아원, 양로원, 노약자 시설, 병원, 심지어 학교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손길이 뻗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모든 방면에 걸쳐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본래의 취지를 모두 잃어 간다는 점입니다. 신앙의 모습은 사라져 가고 어느덧 영리를 추구하는 사회 사업의 형태를 갖춘 육체의 모습만을 남기게 되어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없는 단체로 서게 됩니다. 이는 바울이 말한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체로 마치는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결국 세상의 요구를 따라가는 교회의 결말은 언제나 육체로 마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믿는 자의 본'이 될 만한 교회는 세상에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성장과 더불어 복음의 순수성을 잃어 가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지극히 칭찬하고 주변 교회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데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형제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살전 4:9)

 

바울은 더 이상 쓸 것이 없을 정도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랑의 기초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랑이 온 지역으로 확산되어 믿는 이들로 하여금 본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성장과 더불어 잃어 가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형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교회가 자신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고 교회간에도 이미 경쟁 체제에서 차별화 된 사역으로 상대 교회를 견제하는 일종의 기업 형태를 갖춘 상태에서 '형제 사랑'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사치스러운 요구일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하나님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하여 이 시대에 새로운 교회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 이 시대의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숨어 들어온 거짓 진리, 거짓 영, 거짓 선지자들 즉 누룩을 제거하고 순수한 복음의 말씀으로 성도들이 무장하고 교제한다면 온전한 교회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일을 위해 사단의 교묘한 침투를 염두해 두지 않을 수 없겠지만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대적해 나간다면 결코 문제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0-17)

 

 

이제 우리가 이 시대에 온전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복음의 말씀으로 돌아가 그 안에서의 삶을 추구해 가고 육체의 일들과 타협하지 않으며 교회에 들어온 누룩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택하심과 복음이 함께 하며, 환난 가운데서 말씀을 받아 더욱 구별된 삶을 살며,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될 수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 최선의 삶을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

 

부디 이 시대의 온전한 교회에 대한 꿈을 버리지 마시고 세상 끝날까지 승리하는 삶을 향해 달려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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