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능력(고전 2;18-25)

조회 수 2339 추천 수 0 2010.06.09 09:13:37

성경 전체에 제목을 붙일 수 있다면 '십자가의 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구약과 신약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주제가 인류의 구원에 관한 것이고 그 한 가운데 십자가가 서있기 때문입니다. 이 십자가에 모든 인류가 못 박혀 죽어야 하지만 예수님이 대신해서 물과 피를 쏟으시고 죽음을 대신한 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그의 사랑을 보이셨고 그의 종들을 통하여 이 사실을 알리시고자 하셨습니다. 우리는 종들을 통하여 전해지는 소식을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이는 십자가를 선포함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 됨이라"(고전 1:18)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 방법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님의 분명한 방향 제시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 진리는 많은 이들에게 무시되어 왔고 심지어 이 진리를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미 초대 교회 때부터 예견되었던 사실이었고, 지금도 동일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아무쪼록 당시의 현상들을 진단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우리들이 세상을 분별하는 지혜로움을 얻을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유대인, 헬라인, 그리고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지혜를 추구하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니 유대인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오 하나님의 지혜이시니라"(고전 1:22-24)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던 시절 널리 퍼져있던 사상이 있었는데 유대 사상과 헬라 사상이었습니다. 이 두 사상은 교회 안으로 들어와 혼란스럽게 하였으나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오염되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교회가 세상과 타협하면서 이들은 신학이라는 명분으로 교회 안에 깊숙히 자리잡음으로 오늘날 많은 교회가 이미 오염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통해 다시 한 번 이 시대의 교회를 조명해 봄으로서 초대교회 믿음의 선진들을 따라 참 교회를 세워 가는 데 힘써야 합니다.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은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나시고 활동하시며, 수많은 교훈들을 가르치시며 친히 메시야라고 말씀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았던 자들입니다. 수많은 벙자를 고치시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시는 놀라운 사건을 목격하거나 들었음에도 그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더욱 큰 표적을 원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고 에돔 족속의 후예인 헤롯의 통치를 받고 있었으며 부패한 관원과 세리들의 횡포에 무거운 세금을 부담하면서 힘겨운 생활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이 그들 앞에 나타나셨고, 그들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그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고대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다는 소문이 있자 온 유대인은 열광하며 환호했고 자신들의 옷을 벗어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깔았고, 아이들은 찬양하며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전히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의 친구가 되셨고, 그들의 기대와는 전혀 상관없이 오히려 죽임을 당할 것을 말씀하시며 기도하시고, 가르치시는 일에만 열중하셨습니다. 결국 백성들은 분노했고, 이를 이용해서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백성을 선동하여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뒤를 따랐던 수천, 수만의 군중들은 등을 돌렸고, 스스로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결정적일 때 순종치 않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에수님께서 자신의 삶을 간섭하셔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해 주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막상 예수님을 영접하여 섬기기로 작정하는 순간 그들 앞에 서 있는 것은 고난과 핍박입니다. 결국 좌절하여 예수님을 떠나고 예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시작하는 사람들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에게 기적과 표적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평안하고 윤택하게 하기 위해 오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대신 죽으시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믿음의 시작을 할 때 성공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기적과 표적을 의지하는 신앙은 결국 우리에게 실망만을 안긴채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은 초대교회에 이단 사상을 들여왔던 자들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들의 영향을 받아 신학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보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세상이론을 등에 업고 많은 복음 전도자들을 오히려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신학을 공부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듯이 그들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복음의 핵심을 뒤로 한채 많은 신학자와 철학자들의 이름을 들춰내고 스스로가 그들의 추종자들임을 자처합니다. 그들에게는 어거스틴, 루터, 칼빈, 쯔윙글리, 웨슬레 등이 예수님보다 더욱 중요한 인물이 되어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위해 기도하고 묵상하는 일보다 신학과 철학자들의 자료를 찾아 나서는 것이 어느덧 더욱 큰 과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자들의 가르침을 주의하라고 경고합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조심하라 이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라"(골 2:8)

지혜를 구하고 전하는 자들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동시에 뛰어난 언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자들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주어진 말씀을 다시 한 번 묵상하고 확인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베레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것들이 과연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탐구하므오 그들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그리스 사람인 귀부인들과 남자들 중에서도 적지 않게 그리하더라"(행 17:11-12)

너무도 분주한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매일 말씀을 상고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 까닭에 신앙의 진지함을 잃어가고, 듣기 좋은 거짓 진리에 쉽게 넘어가서 결국에는 분열과 파탄을 만납니다. 우리에게 들려지는 모든 소리를 성경에 비추어 조명하며 바른 진리를 찾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함은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찾는 자들입니다. 바울은 해박한 지식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밝히 말할 때에 말이나 지혜의 뛰어난 것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음이라"(고전 2:1, 2)

심지어 바울은 육체적으로도 많은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었던 자였지만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즉 더럽고 쓸모 없는 것으로 여기고(빌 3:5-9), 자신이 부르심을 입은 것은 오직 복음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보다 분명히 하고자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구별되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대언자들을 통하여 거룩한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롬1:1, 2)

그리스도를 찾는 자들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유대인이나 보다 합리적으로 자신의 구원을 확증시키려는 헬라인과는 달리 더욱 겸손하고 낮아진 삶을 살게 됩니다. 바울이 복음 전도자로서 삶을 살면서 스스로 고백하기를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 모든 그리스도인 중에 지극히 작은 자중에 더 작은 자- 죄인중에 괴수라고 언급한 것은 그의 낮아져 감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낮아짐은 종교인들의 수도를 위한 금욕과 자기 학대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는 분명한 확신과 응답이 잇었고 이 일이 결코 자신에게만 있는 것이 아님도 분명히 했습니다.

"신실하도다 이 말이여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하니 곧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함이로다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얻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내 안에서 심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앞으로 그분을 믿어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될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딤전 1:15, 16)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발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참 기쁨을 가져다 줄수 있는 유일한 희망임을 깨달아 아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들어오사 자기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 하느냐 하시니 그들이 이르되 어떤 이들은 침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고도 하며 다른 이들은 예레미야나 대언자들 중의 하나라고 하나이다 하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니"(마 16:13-16)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은 신앙의 기본 방향을 설정하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만일 대언자 중 한 분으로 여기고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실 분으로만 생각한다면 아직도 그는 예수님과 상관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이들이 예수님께서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자들은 어차피 죄악으로 물든 세상 속히 심판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복잡한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부르실 때 장황하게 자신의 비젼을 소개하신 적이 없으시고, '나를 따르라'는 말 한 마디로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고, 이에 대한 결과는 선지자로 생각했던 사람들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게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베드로의 신앙만큼의 차이로 나타난 것입니다.믿음의 성숙은 결코 많은 것을 생각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모든 관심을 예수님께 두고 나아갈 때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장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이심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롬 1:16)

우리가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익숙하게 들어온 말입니다. 그러나 자칫 믿음이 오해되어서 우리 가운데 최면술사나 무당과 같이 주문을 외우거나 자기 암시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분명해야 합니다. 그 대상은 복음입니다. 그 복음의 내용은 에수께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만에 살아나셔서 많은 사람들 앞에 보이신 것입니다(고전 15:1-8). 지극히 단순한 내용일 수 있지만 사실 이 내용이 복음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든 능력은 이 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살리시며, 그의 자녀 삼으시고,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으로 삼으실 계획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모든 문제의 해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이야말로 어떤 일보다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기적과 표적, 신학과 헛된 철학으로 유혹하려는 거짓 전도자의 말을 뒤로하고 오직 복음을 아는 일에 힘써 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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