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죽는 삶(고린도전서 15:29-34)|

조회 수 2635 추천 수 0 2010.06.09 09:09:26

요한의 때나 예수님의 때에 행했던 의식은 침례였습니다. 이는 물에 몸을 완전히 담그는 예식인데 오늘날에는 약식으로 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이 세례예식이 오늘날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형식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의미에 있어서도 많은 대조를 이룹니다. 세례는 씻는다는 의미를 강조하지만 침례는 몸을 물에 담금으로서 죽는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의미의 의식는 바로 이 침례를 말합니다. 이는 곧 우리가 죽고 그리스도가 살리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 된 몸이 죽지 않고 있다면 결코 사망의 몸에서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의미 없는 형식의 신앙

바울이 자신을 죽이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매일 침례를 받고 살아감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침례예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하여 구원받는 하나의 형식적인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었지, 그 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침례의식을 행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 죄의 몸이 죽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찬식 때 떡과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천주교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해서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음을 기념하여 행하는 예식임과 같이 침례의식도 동일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형식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을 얻는 과정에는 어느 정도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세례예식이고, 성찬식이며, 그 외에도 주일성수나 십일조 등이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구원과는 무관합니다. 다만 그 행위들이 우리에게 유익을 줄 수 있다면 그 속에 담긴 영적 의미를 깨닫도록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형식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바울과 같이 그 의미를 알아 날마다의 삶에 적용하는 자에게 구원이 임할 것입니다.

죄를 짓지 말라

우리가 구원을 얻은 다음에 나타나는 두 가지 행동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의 죄에 대하여 완전히 씻어 주셨으므로 이제 거룩한 삶을 살아 주님의 구원하심을 감사하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 깨어 근신하자는 자세와, 다른 하나는 우리가 끊임없이 죄를 저지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기억조차 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대로 세상의 정욕을 누리면서 산다는 생각입니다.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에는 동감하지만 실제의 생활은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우리 기도의 내용의 대부분은 자신의 물질적 부요와, 건강과, 형통한 삶을 위해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웃이 고통 당할 때에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위로하기보다는, 그들이 고통 당하는 원인을 파악해 자신은 그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계획을 세웁니다. 일부 삯군목자들은 이 일들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의 목양지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변에 주의 일을 게을리 하다가 고통을 당하는 자를 보면 그들에게 권면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그의 주변의 양들에게 '너희도 게으려면 저렇게 될거야'라고 협박을 가합니다. 사단은 우리의 주변 어느 곳이든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깨어있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과연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주님이 기뻐하실 만 한 것인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능력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빈약한 말씀을 가지고 영의 일들을 제대로 분별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겨운 일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의의 일들을 위해 힘써야 하고, 말씀 속에서 묵상하는 생활을 계속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삶이 사단에게 노출된 상태에서 잠을 자고 있다면 사단의 밥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깨어있으십시오.

죽음을 준비하는 삶

바울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언제나 죽음의 상태에 놓여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의 뒤에는 언제나 핍박자들이 따라다녔고, 그는 재판정 앞에서 수 차례의 사형을 확정 받은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가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를 살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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