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있는 생활(고린도전서 14:26-33)

조회 수 2866 추천 수 0 2010.06.09 08:14:06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바울은 이미 교회 안에서 방언보다 예언을 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성도가 교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고, 영적 삶의 성장을 위해서는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이미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가르치는 일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야고보서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교회 안에는 너무도 많은 선생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가르치겠다고 나서게 되면 교회가 혼란스러워 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교회는 구실을 다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들을 위해서 바울은 질서 있는 생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질서가 없다면 하나님조차도 어지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은사들이 묵혀져 있거나, 자신의 자랑을 위해 쓰이고 있다면 은사의 본래 의도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은사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 쓰여야 합니다. 또한 성도와 더불어 쓰여야 합니다. 어떠한 은사이든지 독불장군일 수 없습니다. 사람의 몸을 움직임에 있어서 모든 지체들이 서로 협력하여 어떠한 일이라도 해낼 수 있듯이 각종 은사들이 아무리 강력하다 하더라도 성도들과 협력이 되고 있지 않다면 유익하게 쓰이지 못한 것입니다.

 

삼손이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힘을 얻었지만 그가 그의 백성을 생각지 아니하고 자신의 힘만을 과신하게 되었을 때, 그의 힘은 들릴라와 동침하는 정욕으로 쓰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힘은 스스로를 절망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성도들 역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사를 성도들과 더불어 사용되어지지 아니하고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면 결국 스스로 올무에 빠져 절망스러운 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은사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하며, 교회에 유익을 주고 있는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은사는 결코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데에 쓰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협력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에 있어서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협력사역을 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이 세웠던 안디옥 교회를 뒤로하고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들이 초대교회의 가장 안정되고, 튼튼한 기반 위에 서 있는 안디옥 교회를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성령의 인도함이 있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온 성도들이 그들의 사역에 협력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교회를 개척했던 자들은 사도들과 집사들이었다는 점은 크게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오늘날에 많은 사역자들이 방대한 교회를 목회하면서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떠난 후 교회의 변질을 우려하기 때문이고, 또한 마땅한 후임자를 세우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물론 현재의 안락한 생활과 부와 명예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떠날 수 없는 사역자들도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자가 있다면 그는 사역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오늘날의 성도들이 서로 협력하는 사역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특성에 맞게 성도들이 몰려다니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종의 '무리의 법칙'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기도하는 목사를 찾아가고, 말씀 듣기를 좋아하는 성도는 설교를 잘하는 목사를 찾아가고, 전도를 잘하는 성도는 전도를 강조하는 목사를 찾아가고, 부를 누리기 원하는 성도는 축복을 강조하는 목사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성도가 절대로 구경꾼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목사와 더불어 사역을 해야 합니다. 오히려 목사가 할 수 없는 것을 성도가 할 수 있다면 더욱 유익한 것입니다. 목사가 만능일 수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협력할 때 아름다운 하나님의 교회는 세워질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균형 있게 움직일 때에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몸이 따로 움직이고 있다면 그는 지체 장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증장애(뇌성마비) 환자들도 온 몸이 움직입니다. 그러나 뇌의 조정대로 움직이지 않고 각자의 좋은 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비틀거리며 걷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역시 하나님의 말씀의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자기의 좋은 대로 움직인다면 그는 장애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의 절제된 생활과 균형 있는 생활이 우리의 건강을 유지시켜 주듯이 교회 안에서 전 성도가 절제된 생활과 매일매일 경건의 삶과 봉사의 생활, 그리고 교제함이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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