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말 (고린도전서14:20-25)

조회 수 2660 추천 수 0 2010.06.09 08:13:38

바울은 지속적으로 타언어보다 대언을 하라고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대언이 유익한 것이기 때문에 지혜 있는 말이라는 것은 곧 성도들에게 유익한 말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특히 불신자들에게 있어서 타언어는 아무런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이들을 위해 타언어로 말하기보다는 한마디 가르치는 것이 더욱 유익할 것입니다.

지혜에 장성한 자

오늘의 세대를 살아가는데는 많은 지혜가 요구됩니다. 특히 우리를 미혹하는 각종 이단과 범죄들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는 장성한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어린아이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특히 상황대처 능력은 현저히 떨어집니다. 그래서 자신이 감당하기 힘들다고 판단할 때 금방 포기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장성한 자는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또한 언제나 변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하여 준비하고 살아갑니다. 바울은 지혜에 대하여는 장성한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언제나 다가오는 악의 세력에 대하여 준비하는 자세로 범사에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근신하여 깨어 있으라고 말합니다. 그 안에서 효과적인 복음 사역을 감당해야할 것입니다.

은사의 한계

우리는 일반적으로 성령의 은사가 많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쉽게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도 사역을 하시면서 수 없이 많은 이적을 보이셨지만 결국 이적을 본 무리들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심지어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의 곁을 떠나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은사는 사역에 힘을 더해 주지만 사역의 근본적인 것은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은사의 한계에 대한 것입니다. 타언어는 복음전도에 아무런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렇다고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대언을 말해야 하는 이유

초대교회에는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성도들이 타언어를 말하는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아마도 당시의 지역적인 상황이 워낙 다양한 민족이 각기 다른 언어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타언어를 말할 수 있도록 함으로서 복음 전도의 효과를 높이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타언어를 말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이 함께 한다는 의미로 보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피차에 타언어만을 말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타언어조차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남들이 알아듣는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교회는 피차에 교제를 나누며 많은 교훈을 나누는 곳입니다. 그러나 서로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대화하고 있다면 아무런 유익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대언은 이 일에 대하여 분명한 교훈을 나눌 수 있는 무기입니다. 올바른 말로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지시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대언은 초신자나 장성한 신자나, 무식한 자나 유식한 자나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더욱 유익한 것입니다. 이 일을 행함에 있어서 타언어의 은사보다 덜 신비롭게 비쳐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효과적인 사역이 될 것입니다.

효과적인 복음을 위하여

우리가 가진 은사의 최종적인 역할은 효과적인 복음사역에 있습니다. 아무리 일 만 마디의 타언어를 말한다 할지라도 복음전도에 영향을 줄 수 없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마디라도 복음을 위해 쓰여지고 있다면 어느 것보다도 유익한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는 마땅히 복음을 전파하며 거듭나지 못한 자를 회개시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일들을 위해서 타언어보다는 예언이 더욱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최종적인 목표를 삼을 수 있는 것은 은사를 많이 받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효과적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힘쓰며, 제자를 양성하여, 그들을 양육하고, 그리스도의 사람을 만들어 시대적인 소명을 감당하도록 하는 것일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자세로 매사에 지혜롭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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