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5:18-21)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과연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 즉 온 세상이 정죄 받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는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제기되어 온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일차적으로 성경이 증명해 주고 있으며, 또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 부부가 에덴동산을 떠난 이후로 단 한 번도 그들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보호하시고, 여전히 사랑하고 계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적했으며, 그들의 범죄행위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면에서 쓸어버려야 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할 만큼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범죄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헬라어로는 파라프토마토스인데 이 단어를 영어로는 “one trespass”(NIV) "one judgment"(KJV)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를 단순 번역하면 무단침입을 한다는 것과 판단한다는 것인데, 원어적 의미로는 일정한 선을 넘어가는 것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즉 여기서의 범죄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율법적 의미에서의 범죄가 아니라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약속된 범위를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아담 사이의 약속된 범위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이외의 모든 것은 허용되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단순한 약속이었지만 하나님과 아담 사이의 절대적인 경계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담이 그 선을 넘어섬으로 결국 약속은 깨진 것이고, 그 결과로 정죄를 받게 되고, 이후로 사망이 그들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범죄에 대하여 말할 때 도덕적 개념에서 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도덕적 개념이라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통념과도 같은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국가들이 그들만의 법을 만들고, 또한 그 법의 초안이 율법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들만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도덕적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것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적용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범죄를 말할 때 그는 당연히 성경에 기초해서 설명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도덕적인 문제를 말할 때 율법은 그 범죄의 내용들을 상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이 들어 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합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는 사람들이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합리화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가책을 느끼기도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들어 온 이후로는 모든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비추어 자신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사는 자인지를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예수님께 올 수 있는 것입니까? 주님은 누구를 구원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9:13)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된다면 그는 결코 은혜 안으로 들어 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대상은 바로 자신이 죄임임을 아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죄를 많이 지은 자는 주님이 용서를 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죄의 탕감을 받은 것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가 더하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가 죄인이므로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알고 더욱 은혜를 사모하는 것으로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가 죄인이고,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의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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