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이 우리에게 주는 것 (로마서10:4)

조회 수 1770 추천 수 0 2010.06.07 23:53:30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끝마침이 되시느니라" (로마서10:4)

율법에 대하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신학자들간에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율법이 폐지되었느냐? 아니면 존속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서부터 심지어는 복음의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아예 구약 성경 전체를 볼 필요조차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말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은 복음적인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구약 성경은 곧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5:39). 그러므로 율법을 이해하고 특성을 알아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할 것입니다.

율법의 본성

어떤 이들은 율법이 폐하여졌다는 사실만으로 경계하는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에 대하여 결코 악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율법 그 자체는 매우 선한 것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의 율법은 완전하여 혼을 회심하게 하며 주의 증거는 확실하여 단순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주의 법규들은 정당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의 명령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하는도다"(시편 19:7,8)"

다윗이 증거하듯이 율법은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익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율법의 이러한 본성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서 상실되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은 더 이상 온전하지 않으며, 의미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며, 신령하기까지 하다고 말합니다.

"그런즉 율법도 거룩하며 명령도 거룩하며 의롭고 선하도다...우리는 율법이 영적인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적이어서 죄 아래 팔렸도다"(로마서 7:12-14)"

율법 자체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그대로 있습니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환경이 변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율법은 주인 노릇을 했지만, 오신 후로는 다시 종의 신분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종(하갈)의 아들이었지만 약속된 아들 이삭이 나기 전까지는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나온 이후로 그의 신분은 다시 종으로 되돌아갔습니다(갈 4:21-31)

이와 같이 율법도 약속된 아들이신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주인 노릇을 했지만, 예수님이 오신 후로는 그의 본래의 위치로 되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율법은 결코 악하지 않으며,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 안내하는 종의 신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율법이 하는 일

율법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율법과 우리와의 관계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아직도 율법은 우리와 관계가 있으며 매사에 삶의 기준이 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다면 우리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의 위치를 가르쳐 주는 유일한 것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죄인 됨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 이는 율법으로는 죄를 알게 됨이니라"(로마서3:2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오히려 율법을 통하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너는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욕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로마서7:7)"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알게 합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알지 못한다면 그리스도를 영접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율법은 죄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므로 우리가 죄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데 더욱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제공합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나니 이는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죄도 없음이니라"(롬 4:15)"

율법은 그 자체가 의로운 까닭에 죄인 된 삶을 사는 우리에게는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까닭에 율법과 우리와의 관계는 언제나 적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손으로 쓴 규례들 곧 우리를 대적하고 반대하는 규례들을 지우시고 그것들을 길에서 취하여 그분의 십자가에 못박으시고(골로새서2:14)"

우리가 율법을 두려워하듯 율법 또한 그의 의를 증거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하나님께 우리의 죄들을 고소하여 우리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도록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신뢰하는 자 모세니라"(요한복음 5:45)"

율법은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의 의로움과는 관계없이 죄인 된 우리들과는 원수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법도 어떤 이에게는 악법이 될 수 있습니다. 가령 얼마 전 미국에서 담배를 마약으로 규정하고, 피해자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이 만들어졌을 때 대다수의 국민들은 좋은 법이라고 찬성하지만 실상 담배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 주는 악법이 된 것입니다. 율법도 분명히 선하고 의로운 것이지만 죄인 된 삶을 사는 우리들은 율법에 의해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정죄합니다.

율법이 하지 못하는 일

율법은 우리를 정죄 함으로 심판에 이르게 하지만 의롭게 하지는 못합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육체는 하나도 없느니라"(갈라디아서2:16하)

"하나님의 눈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갈라디아서3:11)"

심판을 받게 하되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 율법의 변명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능히 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시나니(로마서8:3상)"

율법은 죄 앞에서 강한 자와 같지만 실상은 구원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세계 모든 나라에 법이 있습니다. 그들의 법이 보다 아름다운 사회를 건설해 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실상은 더욱 많은 죄를 생산해냅니다. 심지어 미국이 인간과 인격존중, 곧 인권보호라는 명목으로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남자와 부모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법으로까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실상 이러한 법들이 본래의 목적과 취지에서 벗어나 가정파괴라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과반수 이상의 부부가 이혼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미덕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은 이미 무차별로 외국의 문화를 수입해 오고 있는 한국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법은 오히려 더욱 많은 죄를 양산해 낸다는 사실은 오늘의 현실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며, 삶 속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본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하고 심지어 믿는 이들까지 잡아들이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법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법은 교묘하게 더욱 많은 죄를 짓도록 유도합니다. 또한 죄에 대하여 합리화시키려는데 혈안이 되기도 합니다. 율법에 대한 분명한 사실 한가지를 강조해서 설명하자면 결코 의롭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마쳤다

우리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계속하고 있는 율법, 우리를 심판의 길로 안내하지만 정작 구원에 대하여 아무런 해결을 기대할 수 없는 율법, 이 연약하고 무익한 율법으로부터 벗어나 살리는 법을 찾아 나서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에 종지부를 찍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끝마침이 되시느니라"(로마서 10:4)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율법이 곧 자신에 대하여 말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시면서 죽으심과 함께 율법 또한 죽게 된 것입니다. 정죄만 있는 율법은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 구원할 수 없는 율법은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 구원할 수 없는 율법을 더 이상 이 땅에 두실 이유가 없으셨습니다.

"앞서 나가던 명령은 연약함과 무익함으로 인하여 진실로 폐하여졌으니 이는 율법이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으니 주께서 더 나은 소망을 가져오심은 완전하게 하였음이니 우리가 이 소망을 힘입어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느니라"(히브리서7:18-19)"

율법은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지금도 구원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더욱이 율법의 목적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것에 대한 준비였으므로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 율법은 그 의무를 다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마침이 되실 수 있는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율법은 그의 역할을 모두 끝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새언약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일부 사람들의 오해를 푸시기 위해 결코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완전케 하려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대언자들의 글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성취하러 왔노라"(마태복음 5:17)"

율법이 마쳐지게 되면서 새 언약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그 자체에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율법은 영원한 미완성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고 율법은 완전해 질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율법의 역할은 마쳤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언약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분께서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은즉 첫 언약은 낡은 것으로 만드신 것이니 이제 쇠하고 낡아지는 것은 곧 사라지리라(히브리서8:13)"

옛것(율법)이 없어져 가면서 새 언약은 만들어져 갑니다. 새 언약은 그 동기부터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옛 언약(율법)은 정죄하고 심판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새 언약은 구원을 얻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옛 언약(율법)은 끊임없이 제물을 요구하지만 새 언약은 오직 은혜로 구원 얻음을 원칙으로 합니다.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에베소서2:5)"

율법은 끊임없는 행위가 요구되어지지만 새 언약(복음)은 구원을 선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이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2:8) "

새 언약(복음)의 선물의 범위는 무한하여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세력들을 몰아내고 성령으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합니다(갈 5:22-24). 율법이 연약하여 육신이 죄에 빠지는 것을 지켜 볼 수밖에 없지만 새 언약(복음)은 그곳에서 나오도록 권면할 뿐 아니라 능력으로 나타나 의의 길로 인도합니다.

복음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행복한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완성해 놓으시고 부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분 안에서 누리기만 하면 되는 삶을 보장받았습니다. 제사를 드릴 필요도 없으며, 더 이상 죄로 인해 가책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모든 짐을 내려놓고 오직 주 예수님만 바라보는 복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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