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결박(사도행전21:27-36)

조회 수 3849 추천 수 0 2010.06.09 00:18:34

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29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31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2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33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34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 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35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36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고정관념은 항상 극단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율법주의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바울의 이러한 모습을 이단으로 간주하여 바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오늘의 세대에도 사람들은 그들의 고정관념을 버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표준으로 삼고 틀리면 모두가 이단이 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자신의 기준에 모든 것을 맞추다 보니 모든 것이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그들 앞에 메시야로 나타나신 예수님조차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부활하신 예수님조차도 믿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고정관념은 우리의 곁에서 항상 함께 하시고 계신 주님을 실망시킬 뿐 아니라 주님과 전혀 상관없는 인생을 살도록 만듭니다. 우리가 진정 주안에서의 삶을 기대하고 산다면 우리의 내면속에 자리 잡고 있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뜨려야만 합니다. 문제의 근원은 언제나 자신에게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유대인들의 고정관념, 즉 자랑으로 생각하며 도무지 버릴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이 하나님에게 특별히 택함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며, 또 하나는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성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에는 이러한 일들이 결코 위협받아서는 안 되며, 건드려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것들을 최고의 자랑거리이며, 그것들을 지켜 가는 것으로 최고의 만족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의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최소한의 원칙을 정해놓고 지켜 가는 것으로 만족을 얻으며, 살아가는 것도 유대인의 율법주의와 비교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생각이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율법주의적인 정서에도 불구하고 감히 도전장을 내민 자입니다. 당연히 유대인들은 그들의 자랑거리와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바울에 대하여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이라고 느꼈던 그들은 바울을 살려 둘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온 성의 백성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붙들어 성 밖으로 나가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일이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인 후에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시인한 바 있었던 자들이지만 또다시 그리스도를 전하는 바울을 죽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깨달음과 뉘우침은 머리에서만 일어났고, 마음으로부터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동족인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은 큰 의미를 갖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이 일로 인하여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됩니다. 우리의 적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내 가정, 내 교회, 내 민족 속에 언제나 무서운 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가슴에 비수를 던져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내곤 합니다. 그러나 이는 일의 시작일 뿐입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인하여 죽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천부장을 보내 바울을 구출해 내셨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천부장이 이 일에 대하여 전혀 영문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외형적으로는 바울을 결박하고 재판에 자리로 끌고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일이 바울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서와 가이사랴에서 그리고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의 신분은 죄수의 몸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동족인 유대인에게 맞아 죽도록 놔두지 않으시고, 끝까지 복음의 파수꾼으로서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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