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고별설교(사도행전 20:17-21)

조회 수 2859 추천 수 0 2010.06.09 00:14:12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을 밀레도로 청하여 마지막 고별설교를 합니다. 그는 짧은 도보 여행을 통하여 그들을 만나는 것이 마지막이 될 것임을 알았습니다. 또한 자신이 없는 동안에 소아시아에 있는 바울을 대적하는 무리들로 인하여 많은 유혹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고별설교를 통하여 가르침을 굳게 하고, 자신의 행위를 본 받아 절대로 현혹되지 않기를 부탁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크게 세 가지로 고별 설교를 하고 있었는데 3년 동안 에베소에서 보낸 일(18-21)과 앞일에 대한 각오(22-27)와 부탁과 모범적인 행위(28-35)로 구분하여 말했습니다. 위의 본문은 그가 에베소에서 사역을 하는 동안 행했던 일에 관한 생각을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역의 충성 여부는 권위에 있지 않습니다. 권위는 결코 우리가 추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진정한 권위는 겸손과 눈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자였습니다. 그는 과거에 자신의 수하에 사람을 거느린 적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에베소 성도들에 대하여 겸손과 눈물로 대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제 아무리 능력이 있는 자라도 하나님 앞에서 우매한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역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가지고 성도를 대할 수 없습니다. 겸손하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행위이며,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애통해 하며 성도의 문제해결을 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낮아짐을 추구하고 시인하는 행위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할 수 있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시험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세상과 원수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역자들은 원수 된 자들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하는 자가 없으면 믿는 자도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의 열정적인 사역 까닭에 더욱 많은 환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수 없이 매 맞고, 감옥에 갇히고, 죽임을 당하는 상황 속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주를 섬기는 일을 계속했고, 변치 않는 믿음으로 성도들을 도리어 위로하고 사역을

지속했습니다. 시험 당함을 오히려 감사할 줄 아는 자세로 사는 모범을 바울은 우리에게 수차례에 걸쳐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당하는 각종 미혹과 환난에 대하여 경건의 생활을 잃지 않는 자세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유익하다고 생각되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전에 내가 말을 해야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려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대체적으로 전할 때를 놓쳐버리곤 합니다. 복음은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빌립은 광야에서도 이디오피아 내시를 만나 세례(침례)를 주었고, 유대인들의 본거지인 예루살렘의 성전 안에서 바울은 그들이 죽인 예수님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이들이 분위기와 장소를 생각하고 있었다면 복음은 전해질 수 없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는 담대함이 요구됩니다. 복음은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의 입을 열어 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신앙의 기본은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또한 우리가 복음을 증거 한다는 것도 이 일에 대하여 증거 합니다. 복음은 세상의 학문을 논한 것이 아닙니다. 이 일은 영의 세계에 관한 것으로 우리의 생각으로 이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복음을 우리의 시각에 맞춰 생각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면 복음은 더욱 난해해져서 결국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바로 이해하고 있다면 자신의 죄인 됨을 더욱 자각하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큰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 만족이 있으며, 우리의 입을 열어 말해야 할 것도 세상의 초등학문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얻도록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증거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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