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복음(사도행전26:1-23)

조회 수 3272 추천 수 0 2010.06.09 00:25:57

1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2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3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4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5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6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7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20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21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베스도로부터 재판의 권한을 위임받은 아그립바는 바울에게 변명할 기회를 허락합니다. 바울이 아그립바에게 변론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유대교의 전통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재판을 담당했던 자들은 로마인들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종교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바울이 변명할 기회를 가지고 무죄임을 입증하여도 그들의 정치적인 입장으로 인하여 효과를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보다 분명한 자세로 복음을 설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의 유대교 시절부터 복음을 영접하여 소명을 받게 되기까지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교에 있을 동안에 완벽한 율법주의자였습니다. 또한 그 일에 있어서 앞장서서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가 하나님을 경험한 일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은 종교와 복음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부분입니다. 그는 종교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많은 세월을 훈련시켜 왔지만 복음전도자가 되는 데는 세월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주님을 만나는 순간 영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주님은 그에게 소명을 주셨습니다. 지금도 종교는 우리에게 많은 열심과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바울은 벨릭스와 베스도 앞에서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당시의 배경설명과 자신의 신분 등으로 변호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그립바 앞에서는 복음의 내용으로 변호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인 앞에서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유대인들 앞에서는 그들만의 방법으로 변호를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그립바 왕이 유대인은 아니었으나, 실정을 잘 알고 있는 그에게 복음을 설명한다는 것은 매우 적절한 복음전도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알아듣지 못하는 자에게 막무가내로 전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하십시오.

 

세상에는 많은 종교인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저마다 최선을 다해서 그들만의 신을 섬깁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우상을 섬기며, 심지어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자연을 대상으로 그들만의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있습니다. 또한 어떤 이는 자신을 우상으로 삼고, 도덕적으로나 선행으로 완전한 신의 경지에 이르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의 노력은 가히 눈물겨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들의 희생적인 삶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교를 믿던 바울이 아무리 많은 지식과 열심과 희생적인 삶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는 구원이 그에게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지식과 명예와, 가문들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구원은 열심과 희생과 율법이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이 드리는 십일조, 주일 성수, 작정된 기도, 회중 앞에서의 거룩한 기도, 구제, 전도 등이 자신의 구원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우리를 자칫 종교인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가 내 죄를 씻으시고, 새 생명을 부어 주셨음을 의미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아그립바에게 말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가 증거하고 있는 내용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23)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많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합니다. 영혼을 구원한다고 말하면서 세상의 방법들을 동원시킵니다. 그러나 어느 방법도 기본을 무시하면 탈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을 알리는 일은 십자가와 부활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어느 방법도 이 범위를 떠나서는 온전한 것일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아무런 대가 없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증거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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