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강론(사도행전 28:23-31)

조회 수 2798 추천 수 0 2010.06.09 00:30:50

바울의 선교 여행 과정에 하나님은 매 순간마다 함께 하심으로 지체함이 없었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친히 만나 주셨고, 좌절의 순간에게 위로하심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여 유대인들을 모아놓고,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을 말하며 권했을 때, 믿는 자도 있고, 믿지 않는 자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들어 권면하고, 자기에게 오는 자를 다 영접시키고, 로마에서의 왕성한 복음 사역을 하였고, 또한 오랜 기간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헤쳐온 까닭에 노련한 사역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매우 단순한 사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결코 세상의 학문이나 경륜으로 말하려 하지 않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날이 갈수록 단순한 사역으로 일관하고 있고, 그 결과에 있어서는 엄청난 역사를 일궈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오랜 기간동안 숙원했던 로마에서의 전도를 담대하게 추진하고 있으며,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치고 있을 때, 금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초기에 핍박을 받던 상황과는 대조적인 것입니다.

믿는 자, 믿지 않는 자

바울이 복음을 말하고 있을 때, 유대의 지도자들은 두 패로 나뉘었습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복음은 누구의 귀에나 들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믿는 것은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라야만이 복음을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차려와도 배가 부르면 먹을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가 믿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탕자가 굶주리지 않고 있었다면 아버지께로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넉넉한 생활을 했더라면 그토록 간절히 주님을 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삭개오가 존경받는 처지에 있었다면 예수님을 보기 위해 뽕나무에 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믿음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고침 받기를 두려워하는 자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백성들을 향해서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여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고 말합니다. 즉 그들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우리의 상식을 벗어납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풀 때 어느 정도 이해관계가 성립되어야 베풉니다. 많은 이들이 구제의 명목으로 많은 성금을 내놓지만 실제로 그 속에는 그들의 이름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숨어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이 하신 일은 어떤 이해관계가 있어서 되어진 것도 아니고, 또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시기 위한 것도 아닌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요구했지만(신 23:21, 겔 20:40), 주님은 구원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거져 주신 것입니다(마 10:8, 엡 1:6).
사람들이 복음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하여 눈과 귀를 막아 놓습니다. 우리가 들을 귀를 가지고 그 소식을 접한다면 엄청난 일을 경험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 말은 복음을 알지 못하는 백성에게 하고 있는 말입니다. 이 말은 복음을 알지 못하는 백성에게 하고 있는 말이 아닙니다. 복음을 알고 있다고 하는 자들이 전통과 유전에 빠져서 복음을 듣지 아니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막 7:7). 우리가 이 고리를 끊지 않는 한 구원이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담대히 전하라

우리의 전해야 할 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복음입니다. 그 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주제는 도덕과 윤리, 전통을 가르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좀 더 철학적이고, 많은 세상 지식을 전하는 기관이 되고 만 것입니다. 복음만을 말한다면 육적으로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예수를 가르치는 일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일에 보다 담대하게 증거하시길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129 베드로의 설교Ⅰ(사도행전2:14-36) [2] 이진천 2010-06-09
128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사도행전 13:21-23)| [1] 이진천 2010-06-09
» 바울의 강론(사도행전 28:23-31) 이진천 2010-06-09
126 바울이 로마에 도착함 (사도행전 28:11-22) 이진천 2010-06-09
125 바울의 로마 여행 3 (사도행전 28:1-10) [1] 이진천 2010-06-09
124 바울의 로마 여행 2(사도행전 27:9-26)| [1] 이진천 2010-06-09
123 바울의 로마여행 1(사도행전27:1-8)| [1] 이진천 2010-06-09
122 복음에 미친 자 바울(사도행전26:24-32)| 이진천 2010-06-09
121 종교와 복음(사도행전26:1-23)| [1] 이진천 2010-06-09
120 베스도와 아그립바(사도행전25:13-27)| 이진천 2010-06-09
119 베스도의 재판(사도행전25:1-12)| [1] 이진천 2010-06-09
118 바울의 변론(사도행전24:10-27)| 이진천 2010-06-09
117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고소(사도행전24:1-9)| [1] 이진천 2010-06-09
116 바울을 호송함(사도행전23:31-35)| [1] 이진천 2010-06-09
115 유대인의 음모(사도행전23:12-30)| 이진천 2010-06-09
114 공회 앞에 선 바울(사도행전23:1-11)| [1] 이진천 2010-06-09
113 바울의 간증 2 (사도행전22:17-30)| 이진천 2010-06-09
112 바울의 간증 (사도행전22:2-22:16)| [1] 이진천 2010-06-09
111 변명할 기회를 얻음(사도행전21:37-22:1)| [1] 이진천 2010-06-09
110 바울의 결박(사도행전21:27-36)| 이진천 2010-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