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결박(사도행전21:27-36)|

조회 수 2846 추천 수 0 2010.06.09 00:18:34

사람들에게 있어서 고정관념은 항상 극단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율법주의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바울의 이러한 모습을 이단으로 간주하여 바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오늘의 세대에도 사람들은 그들의 고정관념을 버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표준으로 삼고 틀리면 모두가 이단이 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자신의 기준에 모든 것을 맞추다 보니 모든 것이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그들 앞에 메시야로 나타나신 예수님조차도 분별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고, 부활하신 예수님조차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고정관념은 우리의 곁에서 항상 함께 하시고 계신 주님을 실망시킬 뿐 아니라 주님과 전혀 상관없는 인생을 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주안에서의 삶을 기대하고 산다면 우리의 내면 속에 자리잡고 있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뜨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근원은 언제나 자신에게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유대인들의 자랑거리들

유대인들의 고정관념, 즉 자랑으로 생각하며 도무지 버릴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이 하나님에게 특별히 택함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며, 또 하나는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성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에는 이러한 일들이 결코 위협받아서는 안되며, 건드려져서도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것들을 최고의 자랑거리이며, 그것들을 지켜 가는 것으로 최고의 만족을 얻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최소한의 원칙을 정해놓고 지켜 가는 것으로 만족을 얻으며, 살아가는 것도 유대인의 율법주의와 비교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생각이 머무르기를 원치 않습니다.

위협받는 바울

바울은 유대인들의 율법주의적인 정서에도 불구하고 감히 도전장을 내민 자입니다. 당연히 유대인들은 그들의 자랑거리와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바울에 대하여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이라고 느꼈던 그들은 바울을 살려 둘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온 성의 백성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붙들어 성 밖으로 나가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일이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인 후에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시인한 바 있었던 자들이지만 또다시 그리스도를 전하는 바울을 죽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깨달음과 뉘우침은 머리에서만 일어났고, 마음으로부터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동족인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은 큰 의미를 갖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이 일로 인하여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됩니다. 우리의 적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내 가정, 내 교회, 내 민족 속에 언제나 무서운 적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가슴에 비수를 던져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내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일의 시작일 뿐입니다.

구출되는 바울

바울이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인하여 죽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천부장을 보내 바울을 구출해 내셨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천부장은 이 일에 대하여 전혀 영문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외형적으로는 바울을 결박하고 재판에 자리로 끌고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일이 바울을 살리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서와 가이사랴에서 그리고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그의 신분은 죄수의 몸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동족인 유대인에게 맞아 죽도록 놔두지 않으시고, 끝까지 복음의 파수꾼으로서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만드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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