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면서부터 소경인 자(요9:1-41)

조회 수 2924 추천 수 0 2010.06.19 10:45:27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때에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시매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 여쭈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누가 죄를 지었기에 그가 눈먼 자로 태어났나이까? 이 사람이니이까, 그의 부모이니이까? 하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나 죄를 짓지 아니하였으며 다만 이것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고자 함이니라. 낮일 때에 내가 반드시 나를 보내신 분의 일들을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면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다,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그분께서 땅에 침을 뱉고 침으로 진흙을 이겨 그 눈먼 사람의 눈에 진흙을 바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가서 실로암 못에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내어졌다는 뜻이라.) 그러므로 그가 자기 길로 가서 씻고 보게 되어 왔더라. (요9:1~7)

 

예수님께서는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의 눈을 고쳐주십니다. 이 기적은 요한복음 9장 전체에 걸쳐서 소개될 정도로 매우 의미 있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적으로 보자면 단순히 한 사람의 눈을 고쳐주는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성경을 통하여 매우 큰 의미의 내용들을 말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고쳐주시는 과정에서 제자들과의 대화는 바로 이 기적을 통하여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시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먼저 눈먼 사람을 보면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하고 있는 질문을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께 “선생님이여, 누가 죄를 지었기에 그가 눈먼 자로 태어났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즉 소경에게 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소경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제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나 죄를 짓지 아니하였으며 다만 이것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고자 함이니라”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에게 처한 모든 환경이 죄 문제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하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의 이러한 생각들은 오늘날 기복신앙을 가진 자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했을 때, 복을 받게 될 것이며, 죄를 짓게 된다면 심판을 받아 고난 중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난과 질병이 오는 것은 경건한 생활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문제에 대하여 결코 동의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닥친 어려운 환경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일들을 드러내시기 위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을 고치시는데 있어서 땅에 침을 뱉고, 진흙을 이겨, 눈먼 사람의 눈에 진흙을 바르시고는 실로암 못에서 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소경이 그길로 가서 씻고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에 관하여는 많은 의견들이 있지만 주님께서는 그 어떤 의미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소경이 눈을 떴다는 사실 뿐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은 각각 다른 시선으로 예수님을 바라고복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소경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사람들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를 묻습니다. 그에 대하여 소경의 대답은 한결 같이 자신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다만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었고 지금 보나이다”(요9:15)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전에는 소경이었고, 이제는 예수님을 통하여 눈을 뜨고 있을 뿐입니다. 어떠한 말로 그 자신의 상태를 설명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가 알고 있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소경이었던 과거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현재의 상태를 말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있어서도 이러한 일들은 하나의 원칙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사망의 상태에 놓여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사실에 대하여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소경이 전에는 소경이었고, 그분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는 눈을 뜰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전에는 죽을 몸이었다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즉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구원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소경을 고치시는 기적을 통하여 교훈하시고자 했던 대상은 바리새인과 유대인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실제적인 소경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들은 두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즉 메시야이신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정상적으로 보였지만 영적으로는 소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소경은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은 전에는 볼 수 없었지만 지금을 볼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능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회유를 당하고, 심지어 협박을 받았지만 그는 자신이 과거에 소경이었으며, 지금은 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자신 앞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보지 못합니다. 다만 자신의 눈을 고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히려 그가 빛 가운데 사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빛 가운데 사는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사는 자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은 영적 소경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일만을 생각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비방하며, 심지어 목숩까지 위협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유대인지도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종교적 위치와 신념을 위해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들을 모의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백성들을 선동하여 그들까지도 자신들의 의지대로 행동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많은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유대인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의 목적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눈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마음의 문을 닫아 놓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께서 죽게 될 것이고, 삼 일만에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더라면 그토록 열광적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르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기적은 보고 있었지만 그분의 가르침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겉으로는 눈을 뜨고 보는 자들이었지만 실제로는 주님의 마음을 보지 못하는 소경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빛 가운데 사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그 대답은 매우 단순합니다. 그것은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주님의 관점은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소경이며, 앞을 보지 못하는 자는 빛 가운데 사는 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진정한 눈은 육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눈으로 보고 있다고, 단순히 시력이 좋다고 그를 빛 가운데 사는 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눈은 마음을 따라 움직입니다. 마음이 사악한 것들을 사모하면 그들은 언제나 악한 것들만을 바라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마음을 가진 자는 주님의 일들을 바르게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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