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고의 귀를 회복시켜 주심(요18:10-11)

조회 수 2663 추천 수 0 2010.10.16 09:32:49

 

 

보라, 예수님과 함께 있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손을 내밀어 칼을 빼서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의 귀를 베니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잡는 자는 다 칼로 망하리라. (마26:51~52)

 

그분 주위의 사람들이 뒤따를 일을 알고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하더라. 그 중의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의 오른쪽 귀를 베니 예수님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것까지도 허락하라, 하시고 그의 귀에 손을 대사 그를 낫게 하시더라. (눅22:49~51)

 

그때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으므로 그것을 뽑아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의 오른쪽 귀를 벴는데 그 종의 이름은 말고더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네 칼을 칼집에 꽂으라.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18:10~11)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완성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이 일들은 이미 성경을 통해서 예언되어진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수차례에 걸쳐서 제자들에게 말했지만 그들은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이는 오히려 그럴 수 없노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오고 있었고, 제자들도 이 사실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제사장은 가룟 유다를 매수하고 종을 보내 예수님을 잡아 오도록 합니다.

 

베드로는 지금의 상황이 매우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는 이전부터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의 꿈은 결코 잘 못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고, 이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모든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꿈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에서 멈춰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다는 것은 곧 그의 꿈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을 막기 위해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종이었던 말고를 향해서 칼로 내리쳤습니다. 그의 의도는 단순히 겁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를 죽이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칼은 말고의 귀를 베는 것으로 그칩니다. 그가 칼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난 자였다면 당연히 대제사장의 종이었던 말고를 죽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칼솜씨는 목적과는 달리 귀를 자르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베드로는 스스로가 예수님을 경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지켜드리겠다는 의욕은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준비해 본 적이 없이 다만 예수님만 따라다녔을 뿐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모습은 마치 아무런 준비 없이 주님의 일꾼이 되겠다고 나서는 자들의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폭력이나 시위, 즉 무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행동을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그들의 대하여 순종하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딤전2:2). 예수님께서는 천사들을 동원하여 대적하는 자들을 멸망시킬 수도 있는 분이시지만 오히려 순한 어린 양이 되셔서 십자가 위에서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모습만 보면 매우 우스꽝스런 제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칼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자가 예수님을 지키겠다고 칼을 휘두르고, 죽이지도 못하고 귀만 자르는 모습을 통하여 주님의 종으로서 준비가 되지 않고, 주님께 충성을 하겠다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먼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3년 반에 걸친 오랜 시간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그분의 말씀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뜻을 이해하고 있었다면 칼을 휘두르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육신적으로 예수님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형편없는 칼솜씨를 가지고 있었고, 대책 없이 말고의 귀를 베는 일을 저질렀을 분입니다. 그는 침착하게 대응하고 계시는 예수님과는 달리 분노로 가득해서 분별력을 잃고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많은 사역자들을 통해서 목격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일을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정작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자신의 욕망을 채울 도구로 생각할 뿐입니다. 오늘날 사역자들 가운데 명예와 물질, 심지어 권세욕으로 가득한 이들을 보십시오. 결코 많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들의 입으로 예수님의 종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의 뜻에 역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예수님을 곁에 두고 있지만 그분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나중에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날만을 생각하며 꿈꾸는 자와 같습니다. 그들에게 다가 오는 것은 영적인 실패와 좌절의 순간들입니다. 그것은 이미 베드로가 경험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칼을 사용한 베드로를 책망하십니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잡는 자는 다 칼로 망하리라”(마26:52) 이 말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증명된 진리입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결국에는 모두가 망하게 됩니다. 교회사를 통해 보면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세력이 막강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다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오히려 “무엇보다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중보와 감사를 드리되 왕들과 권위를 가진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딤전2:1-2)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권력자들의 부당함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간구함으로서 그 처분은 하나님께 맡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 의해 귀가 베어진 말고의 귀를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베푸신 마지막 기적입니다. 그 마지막 기적이 예수님을 잡기 위해 온 대제사장의 종이라는 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대적자, 즉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온 자를 사랑으로 품으시는 모습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에 대하여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교훈은 특정한 대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사람에 대하여 사랑할 것을 명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기적으로 말고의 귀를 고치심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향을 바로 세우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무기는 베드로의 손에 있었던 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엡6:17). 이 말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오직 그분의 뜻을 다라서 사는 것이 모든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경거망동한 행동이 있은 직후에 바로 이 싸움의 방법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의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결론은 “오 내 [아버지]여,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26:39)라는 말로 요약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혼은 매우 괴롭습니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 두렵듯이 예수님께서도 죽음 앞에서 괴로워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뜻을 이루는데 있어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일을 하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포함한 모든 제자들을 향해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는 말씀으로 결론을 내셨습니다. 실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혹은 사역자로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언제나 묵상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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