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연못의 38년된 병자(요5:1-9)

조회 수 3515 추천 수 0 2010.06.25 19:01:36

 

이 일 후에 유대인들의 명절이 있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이제 예루살렘의 양 시장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연못이 있는데 거기에 주랑 다섯 개가 있고 그 안에 허약한 자, 눈먼 자, 다리 저는 자, 몸이 오그라든 자들의 큰 무리가 누워 물이 움직이는 것을 기다리더라. 이는 어떤 때에 천사가 연못에 내려와 물을 휘저었고 물을 휘저은 뒤에 누구든지 먼저 들어가는 자는 무슨 병에 걸렸든지 온전하게 되었기 때문이더라. 거기에 삼십팔 년 동안 병약함을 지닌 어떤 사람이 있더라. 예수님께서 그가 누운 것을 보실 때에 그가 이제 그런 상태로 오랫동안 있은 줄 아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게 되고자 하느냐? 하시니 그 허약한 사람이 그분께 대답하되, 선생님이여, 물을 휘저을 때에 나를 연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나보다 먼저 내려가나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온전하게 되어 자기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바로 그 날은 안식일이더라. (요5:1~9)

 

베데스다 연못을 보면서 어느 민족이나 기적, 혹은 표적을 바라는 마음은 같은 것이라는 점을 보게 됩니다. 그 연못은 매우 평범한 것이었지만 연못의 주변에는 각색 병든 자들이 누워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어떤 때에 천사가 연못에 내려와 물을 휘저었고 물을 휘저은 뒤에 누구든지 먼저 들어가는 자는 무슨 병에 걸렸든지 온전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한 병자가 38년이라는 세월을 머물러 있었던 것을 보면 실제로 병이 나아서 돌아간 사람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기적이 없다면 사람들은 외면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38년 된 병자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나아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좌절했을 것입니다. 그의 고백을 보면 그는 스스로 거동을 하기 힘든 사람으로 보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연못에 갈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물을 휘저을 때에 나를 연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나보다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낳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간절했지만 현실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편에서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고통의 시간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이 땅을 사는 동안 평생 동안 겪어야 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우리의 손을 잡아주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도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들과 같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손을 잡아주기 이전에 먼저 자신이 살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의지할 수 없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병자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묻습니다. “네가 온전하게 되고자 하느냐?” 이 질문에 대하여 그는 큰 기대감 없이 대답합니다. “선생님이여, 물을 휘저을 때에 나를 연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나보다 먼저 내려가나이다” 그는 아마도 예수님께서 천사들이 베데스다 연못의 물을 휘저을 때에 자신을 데려가 줄 것으로 생각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이 있고난 후 병자는 온전하게 되어 자기 자리를 들고 걸어갑니다. 38년 된 병자에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자신이 도저히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상황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38년 된 병자는 다만 베데스다 연못에 넣어주기를 기대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연못에 갈 필요 없이 즉시로 고쳐주셨던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것이기도 하며, 놀라운 은혜가 그에게 주어진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 안에서 예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삶을 조금만 도와주시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할 때도 그들의 일상에서 현재를 극복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난 주님께서는 우리의 근본 문제를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근본 문제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와 대화하시는 장면을 통해서 잘 드러나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아직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네가 온전하게 되었으니 더 심한 것이 네게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요5:14)고 하십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38년 된 병자를 통해서 죄 문제를 해결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 근본문제이기도 하며, 예수님께서 반드시 치유하고자 하셨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작은 사건들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 즉 죄 문제를 먼저 해결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일임을 기억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유대인들의 반응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는 장면을 보고는 유대인의 절기, 즉 안식일을 어겼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이일로 예수님을 핍박하여 죽이고자 결심합니다(요5:16). 그들은 여전히 율법의 행위에서 벗어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그들의 왕, 즉 메시야이신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그들은 알아야만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반응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순간부터 그분을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동방의 박사들로부터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오셨음을 듣고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분께 가서 경배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헤롯을 도와 그분을 죽이려는 일에 동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경배한 이들은 박사들과 목자들, 그리고 한나와 같이 기도하는 노인뿐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들은 처음부터 메시야가 그들 가운데 오지 않기를 바랬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변화를 더 두려워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후에도 그들이 예수님을 거절했던 사건은 너무도 많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의 현장마다 있었고, 그것을 은폐하거나 오히려 악용하여 예수님을 마치 마귀의 조종을 받는 사악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생애동안 그분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들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실 메시야라는 사실에 대하여 받아들일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이토록 거부하는데는 그들 앞에 다가 올 엄청난 변화를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변화는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분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마귀의 자녀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삶의 모든 방식들이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와 상관없이 살아야 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조차도 육신을 즐겁게 하는 것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더욱 펑성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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