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 손이 오그라든 사람(눅6:6-11)

조회 수 2760 추천 수 0 2010.10.01 10:19:21

 

다른 안식일에도 그분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셨는데 거기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더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분을 고소할 구실을 찾기 위해 그분께서 안식일에 고치려 하시는지 보려고 그분을 지켜보거늘 그분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서 한가운데로 나와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서 앞으로 나오니라.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를 묻겠노라.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율법에 맞느냐, 악을 행하는 것이 맞느냐?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 맞느냐, 멸하는 것이 맞느냐? 하시며 그들 모두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앞으로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의 손이 다른 손과 같이 온전하게 회복되니라. 그들이 노기가 가득하여 자기들이 예수님에게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니라. (눅6:6~11)

 

수종병이 있는 어떤 남자(눅14:1-6)를 고치시는 장면에서 그가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끌려 왔는지를 알 수 없지만 여기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예수님을 고소할 구실을 얻기 위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끌려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에 대하여 시험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시험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지에 대한 것을 확인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의도가 강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생활을 곤경에 빠지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까지 명예와 권세, 그리고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그들의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로 여겨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행동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을 수 없게 합니다. 그들은 비록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 쥐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일지라도 자신의 삶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거부하고자 하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들이었지만 그들의 내면은 욕심으로 가득 찬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생각은 마귀로부터 온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마귀는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한 바가 있습니다(마4:1-11). 그 시험의 목적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로서, 또한 성경에 기록된 구속의 목적을 이행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죽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친히 어린양이 되셔서 희생 제물로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사람들 앞에 그분의 능력을 보이고, 다른 방법으로 사역을 완수하도록 요구합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에게 경배하면 모든 왕국과 세상을 주겠다고 말하면서 성경이 기록된 방법을 따르지 못하도록 시험합니다. 이것은 모든 세대에 걸쳐서 마귀가 끊임없이 계속하고 있는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마귀의 사역을 대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마귀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마귀들이 사람들 앞에 나타나서 어떠한 일들을 방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걸어가야 하는 길들을 막고, 형통한 삶을 방해하며, 질병을 주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하고, 때로는 환상이나 꿈속에서 괴롭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결코 그렇게 어리석은 방법들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마귀들은 이미 그 방법이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 사역에 대하여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욥의 이야기는 그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께 욥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과는 오히려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서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습니다(욥42:1-6). 이후로도 종종 마귀는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일들을 주도했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오히려 더욱 큰 믿음으로 주님께 다가서는 모습들을 목격해야만 했습니다. 그의 전략은 더 이상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스스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이미 예수님을 시험하는 방법들을 통해 보았듯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부분 세상을 사랑하도록 만드는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날 교회 안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가르쳐지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성경대로 가르치는 많은 교회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은 복음이 형통하고, 건강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에 이용되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거리에 붙여진 교회 홍보물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사람들에게 교회가 마치 그들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소개합니다. 그것은 어찌보면 마귀가 사용했던 전략과 배우 비슷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도 예수님에게 세상을 영광을 주겠다고 유혹하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유대인들 가운데 가장 성경을 잘 알고 있고, 또한 사람들에게 가장 율법에 충실한 사람들로 인정받고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그들이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그들의 구원자가 되실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오히려 그분을 시험하려고 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돌이켜 보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동일한 모습들이 존재합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적이 누구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 가장한 거짓 전도자들입니다. 그들은 바르게 가르치는 것을 견제하고, 바른 성경을 가지는 것을 방해하며, 심지어 바른 교리들에 대하여 정면으로 대적합니다. 심지어 성경의 기준도 없이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 이단으로 정죄하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행합니다. 그들은 현대판 서기관들이요, 바리새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오른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두고 사람들에게 질문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율법에 맞느냐, 악을 행하는 것이 맞느냐?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 맞느냐, 멸하는 것이 맞느냐?‘고 질문하십니다. 이 질문은 서기관들과 바래새인의 문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단순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가장 중요한 원칙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최종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을 사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방법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요약하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말하면서 선을 행하는 일을 주저합니다. 오히려 가정을 등지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정죄하며, 자신의 의를 과시하려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일에 대하여 관심이 없고, 심지어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비판하고, 실족시키는 일에 대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신이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성실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의 생활만으로 그들의 신앙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예수님께 인정받을 수 없었던 자들이었습니다. 실제로 교회 안에서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자신이 구원을 받고,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다면 관연 선한 일들을 위해 수고하고 있는지,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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