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눅10:30-37).

조회 수 4375 추천 수 0 2010.06.07 19:14:36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나매 그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상처를 입혀 반쯤 죽이고 떠나갔느니라.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오다가 그를 보고는 다른 쪽으로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 사람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바라보고는 다른 쪽으로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을 하다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는 불쌍히 여겨 그에게 가서 기름과 포도즙을 그의 상처에 붓고 상처를 싸매며 자기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고 그 이튿날 떠날 때에 이 데나리온을 꺼내 주인에게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당신이 얼마를 더 쓰든지 내가 다시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느니라. 이제 너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었다고 생각하느냐? 하시니 그가 이르되, 긍휼을 베푼 자니이다, 하매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눅10:30~37)

우리는 이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일을 해야 한다는 단순한 교훈으로 끝마치려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등장하는 강도, 제사장, 레위인, 여관주인이라는 사람들 등장시킨 사실을 생각하면 결코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말씀이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이기 때문입니다(눅10:25). 지금 이 비유의 주인이자 핵심적인 인물은 사마리아인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따라 살았던 제사장과 레위 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강도를 만나 상처를 입고 반쯤 죽어 있는 어떤 사람을 보고는 다른 쪽으로 지나가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단순히 매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행동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코 율법의 가르침을 따라 시체를 만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자들이기 때문입니다(레21:11,민6:6). 그들의 행동은 오히려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오늘날에도 매우 흔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경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며, 선한 일들을 두고도 행하지 않는 경솔한 이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성경의 단어 하나를 두고 서로 논쟁을 일삼기 좋아하며, 사람들이 분쟁하는 것을 매우 즐거워하고, 성경의 이름으로는 어떠한 무례함도 용서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모든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외식으로 그쳐서 주님으로부터 크게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그들에게 어떠한 교훈을 주시고자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인의 각가지 행동들을 소개하면서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사마리아인은 어떠한 자였습니까? 우리가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相從)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요4:9). 이 말의 의미는 사마리아 인에 대하여 이방인과 같이 취급을 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자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사마리아인들 스스로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난 자들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사마리아인의 행동을 소개하면서 그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결국 이 가르침의 진정한 의미는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제사장과 레위 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율법을 알고 가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율법사 자신은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하여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네 대답이 옳도다. 이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눅10:27~28). 예수님의 사마리아인에 대한 비유는 결국 그가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다만 그는 머리로만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삶을 통하여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지식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는 결코 천국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지식만 있고 행함이 없다면 그는 결국 주님과 원수의 관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쉬운 예로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는 동안 누가 주님의 원수였습니까? 누가 주님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으며, 또한 그 죽음에 대하여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성경을 잘 아는 자들이었고, 또한 그것을 가르치는 자들이었으며, 스스로 이 일에 대하여 지도자라고 일컬어졌던 자들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메시아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의 입으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던 자들이었지만 정작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달아 죽였던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먼저 하나님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많은 가르침을 통해서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두려워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단순히 공포에 떨면서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는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 앞에서 최소한 자신의 존재를 낮추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명령을 따라서 순종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내게 불리하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순전히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에는 언제나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니까요.

우리가 또 하나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은 이웃에 대한 우리의 자세입니다.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보듯이 주님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또는 그의 신앙 환경이 얼마나 좋은 조건에 있는지, 또한 얼마나 인격적인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그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를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주님은 매우 명확하게 답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하여 어려운 이웃을 모른 척 했던 염소에 대하여는 영원한 형벌에, 보살폈던 양에 대하여는 영원한 생명에 거하게 하시면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어떠한 생애를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보는 결론은 매우 단순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이 이웃을 돌아보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이 영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믿음의 성지 예루살렘에서 죄악의 땅을 향하는 사람이 강도를 만난 사실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품 안에서 벗어났을 때 사탄(강도)의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사마리아인)의 돌보심과 치료하심을 통하여 회복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이웃을 사랑함으로 돌보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그것이야말로 주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생애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난다면 주저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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