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눅15:11-32)

조회 수 682 추천 수 0 2014.07.28 18:48:33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사복음서 중 오직 누가복음에만 기록된 이 '돌아온 아들(탕자)의 비유'는 죄인을 찾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비유의 말씀에 관하여 많이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의 삶을 사는 자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방탕하다가 되돌아오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고 있기 때문인데, 사실 이 비유의 말씀은 더욱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의 첫 번째 부분(11-24절)은 잃었던 것을 다시 찾는데 대한 기쁨을 말하고 있으며 두 번째 부분(25-32절) 대조적으로 맏아들의 냉혹한 태도를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둘째 아들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많은 재산을 상속 받고 자신의 생각을 따라 살았지만 결국에는 구걸하는, 즉 거지의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그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한 때는 많은 친구들을 두고 세상의 모든 행복을 소유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가 모든 것을 잃게 되었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 땅에 기근까지 있어서 그가 돼지들이 먹는 곡식껍질로 배를 채우고자 하여도 아무도 그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한 때는 같이 어울렸을 친구들이었지만 재산이 탕진된 지금은 오히려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배고픔으로 인하여 아버지에게 돌아가기로 마음을 정합니다. 그것은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하고 어려운 결정이었음이 분명하지만 탁월한 선택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어디에도 그를 일으켜 줄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모습은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진정한 회개는 절망적인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그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는 기다림과 용서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 대하여 어떠한 것도 묻지 않고 그를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가 그에게 입히고 그의 손에 반지를 끼우고 그의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여기로 끌어와 잡으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혔다고 하는 것은 아들의 죄를 탕감해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아들로서의 모든 권리가 여전히 유효한 것임을 공표하는 것이며, 반지는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이를 아들에게 주었다고 하는 것은 곧 자신의 권한을 아들에게 위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을 신는다고 하는 것은 그가 자유인의 권리를 회복하게 되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종들은 맨발로 다녔는데, 이 둘째 아들은 먼 나라에 가서 다른 사람의 종의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그가 아버지께로 돌아와서는 다시 자유인으로서 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반드시 죄에게 종노릇을 하게 되는 반면에 하나님 안에서는 완전한 자유자가 됨을 의미한다. 이 세 가지(옷, 가락지, 신)는 필요성 때문에 제공된 것이라기보다는 아들을 존귀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맏아들의 모습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이미 많은 상속이 주어졌고, 맏아들로서 누릴 수 있는 많은 권한도 주어졌지만 자신의 동생이 되돌아오고 그 동생을 반기는 아버지의 모습이 못마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당연히 아버지와 더불어 동생을 반겨야하는 것이 옳은 것이지만 그는 오히려 아버지에게 불만을 나타냄으로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그는 재산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조차도 독차지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결과들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맏아들을 주목해야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영적인 특권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것은 간직하려고만 했지, 나누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행동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마음 안에서 몰아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고,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일을 저지르고 말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로 일컬어지는 이 비유의 말씀은 아버지의 곁을 떠났던 둘째 아들의 이야기만을 다룬 내용이 아닙니다. 이 일들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이며,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지가 담겨져 있는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러한 뜻을 헤아려 보다 지혜롭고 능력 있게 세상 속을 살아가면 서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더욱 수고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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