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

산상 보훈의 내용에 깊이 심취되면서 하나님 나라와 세상과의 구분을 확실하게 구분짓고 세상과의 단절의 의미를 가장 확실하게 나타내 주고 있는 부분이 바로 본문의 내용이라고 생각됩니다. 보물 곧 물질에 대한 부분을 취급하면서 그 가치와 의미를 점검해 보고 세상에서 살아 나가는 지혜에 대한 언급을 통해 그 길을 제시해 주고 있음을 내용을 통해 살펴 보면서 우리의 인생에 대한 시각을 달리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 무엇을 요구하며 살아 왔고 또한 살아 가는가?
깊은 지성과 함께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생활이 성경의 내용 속에 비춰진 것이 아닌 실제 나 자신의 생활 속에 비춰져야만 하는 중요한 사건임을 재인식하면서 구체적 내용들을 열거하면서 진단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1.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19-24)

모든 인간들이 그러하듯이 우리들 대부분도 물질의 문제를 놓고 많은 갈등을 느끼고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로 우리 중 대부분이 물질의 문제를 두고 근심해 왔었다는 사실이 첫째 이유중 하나이고, 또 하나는 물질을 소유할 때는 마음이 든든하면서도 없을때는 왠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좋은 증거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는 비단 우리 자신 뿐이 아닌 현대인의 모든 속성을 단편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갖가지 개념을 정리해 보면, '땅'에 관하여는 좀이 먹고 녹이 슬며 도둑이 들고 훔치는 곳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소유, 보호의 고민이 뒤따라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하늘'에 관하여는 좀이 먹거나 녹이 슬지도 않으며 도둑질을 못할 뿐만 아니라 안전하다는데 그 강점이 있습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하나님이 부유하시다는 사실과 우리의 물질의 용도가 복음 역사, 생명 역사를 위해 쓰여져야 할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늘에 쌓는다 함은 그 가치의 보존성과 아울러 안전성에 있어서도 큰 의미를 가집니다. 또한 '보물'에 관하여는 물론 물질적 의미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지배적이겠으나 실제로는 그 마음에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느니라'하신 말씀을 통해 우리의 물질관을 좀 더 정리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요 빛으로 표현되는데 이 '눈'을 어디로 돌리고 있는가 하는 것도 우리를 생각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땅을 향하여...,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합니다. 물질 곧 재물에 대한 개념을 정리한다면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에덴에서의 인간은 욕심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에덴이 파괴된 후 인간은 온갖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물질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무리의 인간들이 물질로서 만족을 얻으려하고 또한 죄를 짓는 혼란한 세대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단순한 한 가지의 진리를 열거할 수 있다면, 물질을 쫓으면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고 하나님을 좇으면 두 가지를 모두 소유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소유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물질을 우리의 섬김의 대상 곧 우상으로 대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2. 염려 하지 말라(25-34)

여기에서는 믿는 자 곧 성도들의 물질관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과 재물 중 하나님만을 택한 자들이 어떠한 자세로 세상을 살아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크게 생각해야 할 내용은 첫째 무엇을 염려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현대인들의 삶을 비춰보면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기근으로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됩니다. 곧 빵의 문제는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큰 문제 중 하나일 것입니다. 더불어 입는 것, 주거할 곳 등 우리는 종합적 측면으로 생각해 보면 의, 식, 주 이 세가지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생명과는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이는 모두 생명을 존속케 하기 위한 방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것도 이 단순한 진리에 입각한 것입니다. 이 생명은 결코 육신을 지칭하는 목숨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이 바로 그 모체가 됩니다. 우리는 영생을 소유하기 위해서 현재도 존재합니다. 주님은 절대적으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염려함이 결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염려의 원인이 믿음이 적기 까닭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더 큰 충격을 던져줍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이 염려해 왔었을 것입니다. 이는 모두 믿음의 결핍에서 난 결과임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을 그냥 두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실 것입니다.

우리가 새보다, 들풀보다, 이방인보다야 못하겠는가? 결코 우리는 더 위대한 자 곧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서 수치스러움에 접근할 것이 아니라 좀더 열심히 그분의 왕국과 의를 구하는 생활에 접근할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입니다.

둘째로 생각해야 할 부분은 내일 일에 대한 견해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론 그 꿈의 실현을 위해 정신 없이 뛰어 다니기도 하고 닥치는 대로 일하기도 합니다(수단 방법 가리지도 않고...). 이에 대한 교훈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그 날의 괴로움을 그 날에 족하도록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곧 현재 내게 처해진 입장을 지혜롭게 처신하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인간들은 모두가 불투명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다. 우리들 대부분도 불확실한 인생 속에서 설계도를 그려 놓은 상태에서의 삶이 아닌 만들고 완성시켜 나가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의 내일 일은 우리의 염려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제자 된 삶을 위해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주님께 맡기는 생활이 선행되어야만 합니다. 주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설계도를 따라 지혜롭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결론: 우리의 인생 속에서는 염려하는 생활이 청산되어져야만 합니다. 하나님과 물질을 동시에 섬기는 어리석음도 우리 속에서 몰아 내야만 합니다. 우리의 목표와 생활의 바탕을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고 오직 그분의 왕국과 의를 구축하는 데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잘못된 신앙사고와 생활을 이제는 바로 잡고 생활해 나가야 합니다. 더욱 뜨거운 열정으로 현실을 이겨 나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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